황룡사지 발굴 40주년 학회서

남동신 서울대 교수 견해 밝혀

 경주 황룡사지 구층목탑이 있던 자리. 불교신문 자료사진

경주 황룡사지 발굴 40주년을 맞아 호국불교의 상징인 황룡사를 통해 호국(護國)의 의미가 불교가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가 아닌 세속권력이 불교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護法]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견해가 제기됐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최맹식)가 20일 경주화백컨벤션센터에서 개최한 황룡사지 발굴조사 4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에서 남동신 서울대 교수는 이같이 밝혔다. 

남 교수는 ‘신라 중고기 불교정책과 황룡사의 불교사적 의의’를 주제로 한 발표에서 황룡사 건립의 의미와 위상에 대해 살펴봤다. 황룡사는 553년(진흥왕 14)에 창건된 신라 최대 규모 사찰이다. 월성 동쪽에 왕궁을 새로 지었는데 이곳에 황룡이 나타나면서 사찰로 삼았다고 한다. 장육존상이 모셔지고, 645년(선덕여왕 14) 구층목탑이 조영(造營)된 황룡사는 백고좌회와 팔관회가 시행된 곳이기도 하다.

남 교수는 백고좌회 때 설한 <인왕반야바라밀경> ‘호국품’을 토대로 호국의 의미를 호법으로 보고, 국왕이 교단을 외호하라는 뜻을 담고 있다고 말했다. 경전에서 부처님은 “각각 100구의 불상, 보살상, 나한상을 청하고 100개의 높다란 사자좌에 100명의 법사를 청해 100개의 등과 향, 꽃으로 공양한 뒤 <인왕경>을 설하면 백부(百部)의 귀신들이 국토를 지켜줄 것”이라고 설하고 있다. 그는 “백고좌법회가 시행된 진평왕 재위기간에는 고구려의 침공이 이어졌던 시기였고, 선덕왕은 병을 앓고 있었다”며 “질병, 자연재해로부터 국토를 수호하려면 국왕이 불교를 보호해야 하며, 그런 호법차원에서 개최한 백고좌법회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자장율사 당시 교단의 중심사찰인 황룡사에서는 전쟁 희생자의 명복을 빌기 위한 팔관회와 외적의 침입을 물리치려는 원력을 담아 백고좌회가 열렸고, 외침을 막기 위한 구층목탑이 건립됐다”며 호법을 통해 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뜻에서 불사가 진행됐음을 조명했다.

이밖에도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1976~1983년까지 8년 동안 시행된 황룡사지 발굴조사 성과를 재조명하고, 한·중·일 연구자들의 동아시아 고대 사찰 비교연구에 대한 발표가 진행됐다. 김동현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의 ‘경주고적발굴조사단 설립과 황룡사지 발굴조사’에 대한 기조강연을 시작으로, 주보돈 경북대 교수가 ‘황룡사 창건과 신라 중고기 황룡사의 위상’에 대해 , 이은석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연구원이 ‘황룡사 건립과 신라왕경의 조성’을, 최태선 중앙승가대 교수가 ‘신라 사찰의 가람구조와 황룡사 가람배치’를 살펴봤다. 또 티엔요우치엔(田有前) 중국 섬서성고고연구원 연구원이 ‘당대 장안불교사원과 신라불교사원 구조배치의 비교’를, 치엔궈샹(錢國詳) 중국사회과학원 고고연구소 연구원이 ‘중국고대사원의 목탑과 황룡사구층목탑 비교’를 주제로 발표했으며 하코자키 카즈히사(箱崎和久) 일본 나라문화재연구소 연구실장이 ‘일본 고대사원조영에서의 신라의 영향관계’를 살펴봤다.

한편 경주 황룡사지 발굴 40주년을 기념한 행사가 이어졌다. 21일부터 25일까지 진행된 사진전 ‘황룡사지 1976-1983’에서는 황룡사지 발굴조사 당시 촬영된 100여 장의 사진을 새롭게 공개됐다. 25일에는 국내학술대회를 열고 황룡사 연구에 대한 최근 성과를 공개하고, 아울러 황룡사지 유구보호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불교신문3243호/2016년10월2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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