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의 깃발 꽂고 복지·문화·청소년포교 활발발

안동청소년센터 장관상 ‘단골’

사찰음식축제 사생대회 ‘인기’

각성스님 ‘화엄사상’…대중정진

고운사 주지 호성스님은 ‘10년이면 강산도 바뀐다’는 말을 실감케 했다. 스님은 그저 “전생에 고운사에 빚이 많았나봐”라고 하지만, 복지와 문화포교를 짬지게 구상하고 실천해낸 능력자다. 

올해로 10년째 조계종 제16교구본사 고운사 주지를 맡고 있는 호성스님은 그 흔한 자가용도 없다. 대중교통이 그다지 좋지도 않은 산골짜기에 고운사가 있지만 스님은 택시를 타거나 급한 용무라도 생기면 신도들 차량을 얻어 탄다. 물론 운전면허도 따지 않았다. 스님은 “운전기사를 두고 살 형편도 아니고, 솔직히 사는데 그다지 불편하지 않다”며 빙긋 웃었다. 고운사는 언뜻 보아도 도량규모가 타 본사에 비해 비교적 작고, 경북 의성이란 고장 자체가 ‘강원남도’라 불릴 정도로 개발이 더디다보니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다. 아니 지금까지는 그랬다. 

호성스님이 내다보는 앞으로 10년, 더 나아가 향후 100년은 분명히 달라진다. 상주-영덕간 고속도로가 조만간 뚫리고, 안동에 KTX가 들어오면 서울서 1시간반이면 고운사에 닿는다. 경북도청이 들어선 안동신도시에 ‘고운사 포교당’이 문을 열고 고운사 앞 1000여 평 부지에 펼쳐지게 될 불교문화힐링도량 ‘최치원문학관’이 개관하면 그야말로 ‘고운사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지난 4일 만난 호성스님은 아랫마을 어르신들을 부처님처럼 모시고, 지역 청소년들이 마음껏 뛰놀수 있도록 도량을 개방하고 아이들 눈높이에 맞는 서비스를 선사하는가 하면, 대중 스님들 외호하는데도 여념이 없었다. 

태풍 매미가 한반도를 강타했던 지난 2003년 9월. 수백년간 고운사를 지켜온 소나무 300여 그루도 맥없이 쓰러졌다. 호성스님은 당시 고운사 총무였다. 손쓸 겨를도 없이 망연자실해 있는데 풍수전문가가 고운사를 찾아와서 한다는 말이, “고운사는 이제 운이 다 됐다.” 절망스런 말만 내뱉고 풍수거사는 돌아갔다. 호성스님은 주지 스님에게 허락을 득한 뒤, 엉키고 설킨 소나무를 크레인으로 당겨 올려서 전부 수습했다. 스님은 부러지고 쓰러진 소나무로 3000여개의 찻상을 만들어 고운사를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죄다 나눠줬다. 별것 아닌 다상이지만, 불자들은 귀한 가보가 생겼다며 좋아했다. 그 찻상을 받아간 이들은 오늘날 고운사의 신도가 됐고 후원자가 됐다. 스님이 주지로 와서 시작한 크고 작은 불사(佛事)의 동력이 됐다. 

호성스님이 가장 먼저 시작한 ‘불사’는 청소년 포교. 어려운 아이들에게 직접 찾아가 장학금도 주고 처음 주지로 부임해서 이듬해부터는 ‘천년솔향 백일장 문화예술제’란 타이틀로 청소년 문화제를 열었다. 사찰에서 하는 청소년 행사가 자칫 어른 눈높이에서 치러지는 경우가 많은데 비해, 호성스님은 오롯이 아이들만을 위한 축제로 굳혀갔다. “나이 들어서야 절에 오면 좋아하시지만, 아이들은 오히려 절에 오면 갑갑하다고 하더군요. 여기저기 출입금지 푯말에다 큰소리로 말하거나 뛰어다니지도 못하게 하잖아요. 그러니 절에 오고 싶겠어요?” 스님은 1년 365일 가운데 하루이틀은 아이들에게 절을 그냥 내줘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저기 음료수와 과자를 쌓아놓고 먹으면서 신나게 놀라고 서비스도 잘 해주고, 마음대로 떠들고 끼를 발산할 수 있는 멍석도 펴 놓았다. “청소년 백일장 때는 하다못해 법당의식도 생략합니다. 애들 축제날 무슨 의식이야? 초창기에는 아이들이 비빔밥을 하도 많이 남기길래, 돈까스를 튀겨줬어요. 절에서 웬 돈까스냐고 욕도 많이 먹었지요. 그런 추억이 있으면 10년 20년 후에라도 다시 절을 찾게 된다니까. 그게 중하지, 뭣이 중해요? 하하하.” 

호성스님이 절에서 돈까스를 주면서까지 아이들을 끌어모으는 이유는 따로 있다. 스물다섯에 뒤늦게 불연(佛緣)을 맺은 스님으로선 조금 더 일찍 불법을 만나게끔 돕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내가 나를 관조해봐도, 조금더 일찍 부처님법을 만나서 출가를 했더라면, 아니 출가까지는 아니어도 불교학생회라도 다니거나 어느 이름모를 절에서라도 마음 열어 불연을 맺었더라면 내 인생이 조금 더 열리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작용하는 것이죠.” 

스님은 강원도 치악산 아랫마을에서 살았다. “내가 깡촌(?)에 살아봐서 알아요. 서울에 이렇다할 친인척도 없는 아이들은 지금도 서울에 갈 일이 없어요. 문화적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고 눈뜨면 산이고 여기서 노는게 전부인 것이죠. 그들을 위해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다 하는 겁니다.” 스님은 몇해 전까지만도 의성과 안동지역 아이들 손잡고 서울에 와서 1박2일간 국회의사당이나 방송국도 견학하고 인사동도 투어 했다. 아이들을 향한 호성스님의 마음은 이렇듯 소박하지만 진정성이 짙게 깔려 있다. 고운사가 직접 운영하는 안동청소년문화센터가 해를 거듭할수록 신뢰를 받고 최근 우수운영시설로 교육부장관상을 두차례나 거머쥔 것도 불교복지계의 보기드문 예다.

바야흐로 ‘고운사 시대’를 앞두고 이를 응원하고 지지하는 버팀목은 다름아닌 고운사에 인접해 살아가는 주민들이다. 사하촌 주민들은 언뜻 보면 사찰과 평화롭게 지내는 듯 하지만, 사찰 인근에 건물불사를 하거나 행사를 치를 때 적잖은 민원을 넣는 게 요즘 현실이다. 고운사는 매년 5월 고추를 다 심고 어르신들이 한시름 놓을 때 즈음 사찰 입구 요양원 뜨락에서 마을잔치를 연다. 일방적으로 날짜를 정해두면 농삿일과 맞물려 불참자가 생기고, 절에서 음식까지 준비해서 어르신들을 모시면 번거롭기도 하고 마음이 편치 않을수도 있다. 호성스님은 그래서 아예 절밖에서 잔치를 열고, 마을이장에게 후원금을 지원, 직접 음식을 준비해서 드시게끔 한다. 어르신들은 자기집 잔치인 것처럼 신바람나게 음식을 준비하고 심지어 고운사 스님들을 초청해서 감사를 표한다. 

지역 아이들과 마을 어르신들 ‘민심’을 꽉 잡아안고 스님은 매년 부처님오신날 조계종사회복지재단이 주최하는 ‘난치병어린이 돕기 3000배 정진행사’를 치른다. 불교수행과 복지포교가 뒤섞여 지역의 남녀노소가 동참하고, 천주교 신부님도 기꺼이 참석하는 지역축제나 다름없다. 매년 1000만원 이상이 모여진다. 1개 교구본사로선 적지않은 액수다. 2011년 문을 연 고운사 사찰음식연구소는 발효음식을 개발하고 연구하는 최초의 전문연구소다. 매년 열리고 있는 사찰음식문화제도 내년부터는 서양음식과 맞붙어 대결도 하고 비교세미나도 열어 보다 깊이있는 자리로 만들어나갈 계획이다. 

“포교도 중하지만, 주지로서 대중을 외호하는 것 역시 가장 중요한 임무지요. 각성스님을 모시고 10년째 화엄강좌를 여는 것은 승가가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는 제 소신의 발현이고, 매번 100여 명 이상의 스님들이 동참해주시는 것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10년간 화엄경을 정진했다면 부처님 일대기는 제대로 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말사 주지를 살아본 경험도 없고 총무원에서 부실장을 해본적도 없었던 스님이지만, 호성스님은 매일 새벽예불을 올리고 전 대중과 함께 좌선을 한다. 하루동안 해야 할 일의 밑그림을 그리고 전체를 아우르고 쉼없이 되새긴다. ‘무엇이 스님을 움직이는가’ 라는 질문에 스님이 답한 ‘선정(禪定)의 힘’이자 ‘지혜’다.

“부르지도 않은 벌들이 몰려와서 토종꿀을 만들고, 조성도 안한 뜨락에 야생화가 만발해요. 이제 곧 하늘에서 꽃비가 내리고 우리 고운사도 확 달라질 겁니다. 나는 내세울게 없잖아요. 그저 모든 것이 부처님이고 화엄세상임을 알 뿐입니다.” 

결혼식 국제세미나 문화축전까지…

‘최치원문학관’ 내년 개관 

신라의 대학자 고운 최치원은 쌍계사와 해인사 등을 전전하다 말년 20여 년을 고운사에서 살았다. 고운사가 내년 10월 완공을 목표로 설립하고 있는 ‘최치원 문학관’은 단순히 고운선생의 넋을 기리는 공간만이 아니다. 불교인문학을 활성화시키고 젊은 문학인을 양성할 뿐만아니라, 문학관 전체를 공원화시켜 결혼식이나 국제세미나, 문학축전 등 다양한 행사를 여법하게 치를 수 있도록 구비했다. 1000여 평에 달하는 시설공간과 수만평에 걸친 공원으로 조성되는 복합문화공간이다. 천년고찰을 방불케 하는 아름다운 조경은 물론, 비로자나부처님을 모신 법계도를 조성했고, 삼보일배 등 다양한 정진프로그램을 실시할 수 있는 명상길도 만든다. 부처님이 앉아 있지 않은 부처님 좌대를 야외에 조성함으로써, 흥미롭고 의미있는 ‘포토존’도 생긴다. 모두 다 호성스님의 아이디어다. “일본에서 유행하는 새로운 유형의 사찰참배 코스인 ‘시코쿠 순례길’과 같은 문화프로그램도 구상하고 있다”는 호성스님은 “농림축산식품부가 추진하는 활기찬농촌프로젝트에 우리 의성군이 선정되는 바람에 앞으로 고운사가 구심 역할을 하게 될 것 같다”며 흐뭇해했다. 

[불교신문3243호/2016년10월26일자]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