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자 신임을 얻은 데와닷따, 부처님 자리를 넘보다

든든한 후원자와 도시

죽림정사에 버금가는 사원들

그를 따르는 수백 명의 스님들이

곁에 있자 데와닷따의 마음에는

오만의 씨앗이 자라기 시작한다 

자신을 따르는 500명의 비구

아자타삿투 왕자를 앞세우고

죽림정사에 온 데와닷따는

부처님께 예배를 올린 뒤

당당하게 말했다 

“부처님께서는 이제

나이가 많이 드셨습니다…” 

바이살리는 부처님이 가장 사랑한 도시 중 하나였다. 바이살리는 부처님과 동시대를 살면서 강력한 교단을 형성했던 자이나교의 교조 니간타나타푸타의 고향이기도 했다. 부처님께서 바이살리와 첫 인연을 맺은 것은 전대미문의 가뭄이라는 혹독한 재앙 때문이었다. 릿차위족 왕자들의 초청을 받은 부처님께서 바이살리에 첫 발을 내딛었을 때, 비가 쏟아졌고 가뭄은 끝이 났다. 단번에 가뭄을 해결한 부처님께서는 아난존자와 릿차위족 왕자들에게 <보배경>을 가르쳐주며 재앙을 완전히 물리치셨다. 또한 바이살리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녀 암바팔리와 중생의 고통을 함께 나누며 부처님의 제자들과 법거량에서 승리한 유마거사의 고향이기도 했다. 이처럼 바이살리와 부처님의 인연은 특별했다. 그래서 였을까. 부처님께서는 열반에 들기 전 쿠시나가로 향하는 길에 바이살리를 거쳐 가며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여래가 바이살리를 보는 것도 이것이 마지막이로구나!”

선정으로 신통을 성취한 데와닷따 

부처님께서 열반의 땅, 쿠시나가로 향하시기 전 교단은 심각한 분열의 위기를 겪는다. 교단의 분열은 코삼비에서와 마찬가지로 승가 내부에 의해 진행되었다. 교단을 분열시킨 인물은 다름 아닌 부처님의 사촌이자 처남이며 아난존자의 친형인 데와닷따로, 그는 선정 수행으로 이름을 날린 비구이기도 했다. 

깨달음을 성취한 부처님께서 카필라바스투(카필라왓투)를 방문하신 이후 석가족의 왕자들이 한꺼번에 출가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데와닷따도 함께 출가를 하였다. 본디 총명하고 지혜가 빼어났던 데와닷따는 교단에도 잘 적응하였고 부처님의 가르침도 빠르게 배워나갔다. 그는 마침내 선정의 정상에 올랐고 갖가지 신통을 자유자재로 보여줄 수 있는 위치에 이르렀다. 

부처님께서는 궁극적으로 윤회를 벗어나는 길을 설하셨지만 그 길을 닦는 과정에서 얻는 선정과 신통도 부정하거나 천시하지 않았다. 다만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신통을 이용하는 것을 엄격히 금하셨고 이런 능력은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것이며, 윤회에서 벗어나는 길에 들어서는데 필요한 보조적인 역할을 한다고 말씀하셨다. 신통제일로 명성을 떨친 목건련 존자 또한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대중 앞에서 신통을 드러내는 것을 늘 절제하였다. 그리하여 목건련 존자는 아라한 과를 성취하였고, 훗날 외도들의 폭력으로 육신의 죽음을 맞이할 것을 알면서도 신통을 사용하지 않았다. 

왕자의 마음을 사로잡다 

만약 데와닷따도 그가 성취한 선정과 신통을 바탕으로 정성을 다하여 아라한 과를 얻기 위해 노력했다면 윤회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데와닷따는 어느 순간 수행 자체보다는 수행을 통해 얻은 능력에 만족하였고 대중 앞에서 신통을 발휘하여 찬사를 얻는 것을 즐기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보시와 명성에 심취하여 점점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멀어져갔다. 

데와닷따가 선정 수행을 한창 닦고 있을 때, 그는 진실로 신실한 비구였다. 탁월한 지혜와 부지런한 노력으로 신통을 성취하였기에 사리불 존자는 대중 앞에서 데와닷따를 칭찬하기도 하였다. 데와닷따는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수행을 통해 얻은 거짓 없는 신통력과 부처님의 혈통이라는 특징, 왕족 특유의 우아한 몸가짐과 빼어난 외모, 사교적인 성품과 유창한 언변 덕분에 그의 주변에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다. 더 큰 명성을 원하는 데와닷따에게 가장 큰 관심과 존경을 보인 인물은 바로 아자타삿투 왕자였다.

빔비사라 왕과 베데히 왕비 사이에서 태어난 아자타삿투는 데와닷따가 보여준 신통력에 큰 감명을 받아 그의 제자가 되었다. 빔비사라 왕과 베데히 왕비는 부처님과 삼보에 귀의한 신실한 불자였으나 아자타삿투는 부처님을 뵙기도 전에 데와닷따에게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당시 아자타삿투는 아직 소년이었고 데와닷따는 부처님의 제자이며 교단에 속한 수행자였으므로 이것이 문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왕자의 스승이라는 신분은 데와닷따를 더욱 우쭐하게 만들었고 장차 빔비사라 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를 아자타삿투가 보여준 열성적인 지지와 무조건적인 믿음은 아직 깨달음을 얻지 못한 젊은 스님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기에 충분하였다. 

가야시사에 세워진 새로운 사원 

아자타삿투는 데와닷따를 위해 라자가하에서 서남쪽으로 조금 떨어진 ‘가야시사’에 커다란 정사를 지어주었다. 코끼리의 머리를 닮은 ‘브라하묘니’ 산 아래 위치한 가야시사는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성취한 붓다가야에서 가까운 작은 도시였다. 사원을 기증받은 데와닷따는 그를 따르는 500명의 비구 스님과 함께 그곳에서 지내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아자타삿투는 매일 수레 500대를 동원하여 데와닷따와 그를 따르는 스님들께 공양을 올렸다. 또한 자신의 권세를 이용하여 가야시사의 시민들에게 데와닷따의 제자가 될 것을 강요하였다. 아자타삿투가 날마다 올리는 공양은 진귀하고 맛있는 음식들로 가득하였다. 덕분에 데와닷따와 그를 따르는 스님들은 탁발이나 공양을 조금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갓 출가하여 탁발에 어려움을 겪는 수행자들은 이를 보면서 부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부처님이 계신대도 많은 스님들과 대중들, 아자타삿투 왕자까지 데와닷따를 따르는 것을 보면서 혼란스러워하기도 했다. 일부 비구 스님들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아신 부처님께서는 감당하기 힘든 공양과 명성은 수행자에게 타오르는 불처럼 큰 재앙이 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럼에도 데와닷따의 무리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스님들은 점점 늘어갔다. 데와닷따를 추종하는 스님들이 많아질수록 아자타삿투는 더욱 스승을 존경하였다. 

아자타삿투의 마음을 사로잡은 데와닷따는 그를 완전히 자신의 편으로 만들기 위해 그에게 출생의 비밀을 알려주었다. 아자타삿투가 태어났을 때 빔비사라 왕은 장차 그가 자신을 죽이게 될 것이라는 예언을 듣고 갓난아기였던 그를 제거하려고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천만다행으로 왕자는 목숨을 건졌다. 이에 빔비사라 왕은 자신의 행동을 크게 후회하며 반성하였고 그 후 아자타삿투를 더욱 애지중지 키웠다. 데와닷따는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빔비사라 왕이 그를 죽이려 한 적이 있었다는 이야기만 들려주었고, 아자타삿투의 마음에 아버지를 향한 증오심이 가득하게 만들었다. 빔비사라 왕에 대한 증오심이 커질수록 아자타삿투는 데와닷따에게 의지하게 되었고 그때마다 데와닷따는 왕자에게 아버지를 죽이고 왕위를 차지하라고 속삭였다. 결국 아자타삿투는 데와닷따의 꼬임에 넘어가 빔비사라 왕을 유폐시키고 스스로 왕위에 오르기에 이른다. 

처님께 교단을 청하다

든든한 후원자와 오로지 자신을 섬기는 도시, 죽림정사에 버금가는 크고 쾌적한 사원과 그를 따르는 수백 명의 스님들까지 곁에 있자 데와닷따의 마음에는 오만의 씨앗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부처님께 교단 전체를 넘겨받아서 자신이 후계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 생각을 품은 순간, 데와닷따가 선정을 닦아 얻은 신통이 모두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같은 순간, 선정에 들어있던 목건련 존자는 데와닷따가 신통을 잃어버린 것을 알아차렸다. 

목건련 존자는 즉시 부처님께 데와닷따의 신통이 사라졌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다른 이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말 것을 당부하셨다. 만약 데와닷따의 신통이 사라진 것을 대중이나 아자타삿투 왕자가 알게 된다면 그는 단박에 신뢰를 잃어버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부처님께서는 데와닷따의 허물이 저절로 드러나게 될 날이 멀지 않았음을 아셨기에 데와닷따의 신통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비구들이 그를 공격하는 허물을 짓지 않게 하기 위해 이 사실을 알리지 않은 것이었다. 

얼마 후, 자신을 따르는 500명의 비구들과 아자타삿투 왕자를 앞세우고 죽림정사를 찾아온 데와닷따는 부처님 앞에 나아가 예배를 올린 뒤 당당하게 말했다.

“부처님께서는 이제 나이가 많이 드셨습니다. 그러니 선정에 드셔서 아무런 걱정도 하지 마시고 편히 지내시기 바랍니다. 비구 스님들과 재가 불자들 그리고 교단은 제가 알아서 잘 거느리겠습니다.”

[불교신문3243호/2016년10월26일자] 

글 조민기 삽화 견동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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