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가 된 엿장수

이정범 지음/ 동쪽나라


깨달음 얻고 중생교화 위해

산문 나선 효봉선사의 삶…

승랍 무관하게 ‘깨우침’ 따져 

방장 추대하던 대중의 하심은 

한국불교가 배워야 할 교훈

고승들의 이야기를 전기소설로 연작하고 있는 이정범 작가를 지난 9월26일 광주에서 만났다. 이 작가는 “효봉선사의 이야기는 매우 극적이며, 우리가 생각해야 할 많은 가르침을 담고 있다”고 말했다.

“판사 하다가 때려치고 엿장수를 했다는 스님 이야기를 듣고 너무 신기하고, 그 스님이 누군지 알고 싶었어요. 그보다 더 극적인 삶이 있을까. 언젠가는 효봉스님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고 싶었어요.” 이정범 작가가 효봉선사의 전기를 소설로 펴냈다. <붓다가 된 엿장수>다. 지난 9월26일 광주에서 이 작가를 만났다. 첫 작품으로 보조국사 지눌스님의 전기소설을 펴냈던 이 작가는 고승들의 삶을 소설로 담는 일을 평생의 작업으로 서원했다고 말한다.

“효봉스님의 이야기를 처음 들은 것은 30년 전이에요. 불교계 잡지인 <법륜>지에 다녔는데, 당시 잡지를 발행하던 분이 전국신도회장이던 박완일 선생이었어요. 박 선생은 한때 효봉스님 상좌로 출가했던 분이라 종종 효봉스님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들을 수 있었어요. 또 효봉스님 제자였던 고은 선생님과도 그때 인연이 됐어요. 당시는 원고를 청탁하고, 원고를 받고, 원고료를 드리고. 적어도 한달에 세 번 이상을 필자와 만나야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효봉스님에 대한 일화를 전해 듣곤 했죠.”

저자가 효봉스님의 삶에서 특히 주목하는 점은 일제강점기 판사로 재직하면서의 고뇌와 출가 후 금강산 유점사에서의 수행이다. 당시 법원은 “죄가 있으면 벌을 받는다”는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다. 죄가 없더라도 조선인이라서 벌을 받고, 죄가 있어도 일본인이라서 벌을 받지 않았다. 민사 재판의 경우 원고 피고가 모두 한국인일 때만 한국인 판검사가 재판을 맡았고, 한국인 판사는 일본인을 판결하지 못했다.

“1921년 8월14일 아침, 법원에 출근해 신문을 읽던 이찬형은 온몸이 굳어지는 느낌이었다. 동아일보에 ‘박상진 사형 집행’이란 제목으로 실린 2단짜리 기사 때문이었다. 독립지사 박상진과 김한종을 대구형무소에서 동시에 사형시켰는데, 박상진이 사형 집행 13분만에 절명했다는 내용이었다.” 

박상진은 양정의숙을 졸업하고 1910년 판사 시험에 합격한 인재였다. 하지만 한일강제병합이 되자 “일제가 지배하는 권력기관에 종사하느니 그들을 몰아내고 독립국가를 이루겠다”며 미련없이 판사직을 버리고 만주로 건너갔다. 그 일로 충격을 받은 이찬형(효봉스님)은 1923년 독립군가를 낭독하던 김천복에게 사형선고를 내리면서 다시 한번 심한 고뇌에 빠진다. 그리고 무작정 발길을 서울로 옮겼다.

“시장을 배회하던 그는 얼마 후 지나가던 엿장수를 발견했다. 군데군데 헤어진 곳을 꿰맨 누더기 옷을 입은 채 가위를 흔들고 있는 사내였다.” 그리고 이찬형은 말쑥한 양복을 벗어던지고 엿장수가 됐다.

이정범 작가는 일제강점기 고뇌하는 지식인의 모습을 이찬형을 통해 볼 수 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여러 구차한 이유로 친일을 변명하는 지식인이 하나 둘 늘어나던 시기, 이찬형은 법관의 옷을 벗어던지고, 엿장수의 누더기를 입었다. 그 엿장수를 한 노스님이 불러 세웠다. “행색이 엿장수지, 엿장수는 아니지요?” 출가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효봉스님에게 가장 존경스런 점은 금강산에서의 수행입니다. ‘절구통 수좌’라는 별명처럼, 치열한 수행 끝에 대오각성하고 출가 10년 만에 가야총림의 방장으로 추대됐다는 점이에요. 무문관에서 1년6개월간의 치열한 수행, 그리고 깨달음을 얻자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산문을 나서는 모습, 승랍이나 나이와 무관하게 깨우침의 정도를 따져 방장으로 추대하던 대중의 하심은 지금 한국불교가 배워야 할 교훈이지요.”

효봉스님은 1888년 평안남도 양덕군에서 태어나 일본 와세다대 법학부를 졸업하고 판사가 됐다. 38세에 금강산 신계사 보운암에서 석두스님을 은사로 출가했으며, 조계종 종정을 역임했다. 1966년 10월15일(음 9월2일)입적. 이 책은 월간 <송광>지에 지난 2년간 연재된 것으로, 효봉선사 열반 50주기를 맞아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고은 시인은 이 책에 대해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나를 마치 호랑이 목청으로 꾸짖어 깨우시던 때가 어제인 듯 선연하다. 나나 법정수좌가 진작에 할 일이었다”며 저자의 노고에 감사의 뜻을 전하며 추천사를 썼다.

[불교신문3241호/2016년10월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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