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시인’ 김용택을 만나다

울고 들어온 너에게

김용택 지음/ 창비

현실은 늘 불안하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집에 왔을 때, 

누군가 반겨주는 것이 

삶의 힘이 아니겠는가

김용택 시인은…1948년 전북 임실 섬진강가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선생님으로 살았다. 1982년 창작과비평사 21인 신작시집에 ‘섬진강 1’ 등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 시집으로 <섬진강> <강 같은 세월> <그리운 것들은 산 뒤에 있다> 등을 펴냈으며 <콩, 너는 죽었다> 등 동시집을 출간했다. 김수영문학상, 소월시문학상, 윤동주 문학대상 등을 수상했다.

섬진강 상류에 자리한 전북 임실 ‘김용택 문학관’을 지난 5일 찾았다. 최근 시집 <울고 들어온 너에게>를 발간한 김용택 시인을 만나기 위해서다. 낮은 돌담으로 쌓은 옛집에 들어서니 귀가 즐겁다. 박자를 타고 흐르는 물소리가 가장 먼저 반긴다. ‘이곳에 살면 누구든 시를 쓰지 않을수 없겠다’ 생각하며 문학관으로 들어섰다.

- 시집을 읽으면서 참 따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집 제목 <울고 들어온 너에게>처럼 세상에 위안을 주는 시가 많다. ‘따뜻한 아랫목에 앉아 엉덩이 밑으로 두 손 넣고 엉덩이를 들었다 놨다 되작거리다보면 손도 마음도 따뜻해진다. 그러면 나는 꽝꽝 언 들을 헤매다 들어온 네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싼다.’(‘울고 들어온 너에게’ 전문) 꽝꽝 언 들은 무엇을 말하고, 어떤 마음을 적은 것인가.

김용택(이하 김) “삶을 돌아보면 참 만만치 않구나 생각을 한다. 모두가 어머어마한 삶을 살고 있다. 밖에서 돈을 벌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고 사는가. 현실은 늘 불안하고 초조하다. 그렇게 하루를 먹고 살기 위한 현장에서 보내고 집에 왔을 때, 누군가가 반겨주는 것이 삶의 힘이 아니겠는가.

우리 세대, 아버지 세대는 참 힘들게 살았다. 일제강점기에서 살아남아야 했고, 전쟁과 근대화 과정에서 온갖 어려움을 다 겪었다. 그리고 민주화 과정에서 적지 않은 곤욕도 치렀다. 지금의 사회는 외롭고, 불안하다. 숨가쁘게 살아온 사람들에게, 어릴 때 집에 오면 아버지가 꽁꽁 언 볼을 감싸주던 따뜻한 손길을 생각하며, 우리도 그런 존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숨가쁘게 사는 우리들이다. 그런데 잠시 바쁜 걸음을 멈추고 삶을 돌아보는 것이 결국 시가 아닐까.”

- ‘내가/ 저기 꽃이 피었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았다./ 내가 저기 꽃이 지고 있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너는 누구냐고 물었다./ 너는 누구냐고 물었다./ 나는 꽃을 보라고/ 다시 말했다.’(‘시인’ 전문) 이 시를 읽으면서 불교에서 말하는 견월망지(見月忘指, 달을 보지않고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다)라는 말이 생각난다.

 “조용한 섬진강 변 마을에 살다보니 주로 접하는 것이 산, 물, 나비, 꽃, 풀 이런 것들이다. 하지만 어느 것도 항상 같은 모양이 아니다. 매번 모양도 느낌도 바뀐다. 가끔 사람들이 찾아오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내가 접하는 자연에 대해 자주 말하게 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저 꽃 좀 봐’라고 하면 내 얼굴이나 손을 본다. 견월망지를 생각하고 쓴 시가 아니라, 써 놓고 보니 견월망지와 비슷하더라. 그래서 불교 가르침을 잘못 쓰는게 아닌가 몇 번 고민했는데, 주변에서 좋다고 해서 같이 실었다. 불교의 가르침도 결국 삶에서 나온 것이 아니겠는가.” 

- ‘강물을/ 거스르고/ 때로 따랐다./ 물살이 센 곳에/ 박힌 돌이 되었다./ 밀리기 싫다./ 물이 부서진 곳으로/ 달빛들이 모여든다.’(‘달빛’ 전문) 돌은 나, 강물은 거친 사회가 아닐까 한다. 한편으로 그 강물에 내 삶이 있다는 메시지도 느껴진다. 거스르고 따른 경험을 소개해 달라.

 “내가 근무한 학교를 가려면 섬진강을 거슬러 50분 정도 걸어가야 한다. 그런데 강을 거슬러 오르는 길은 왠지 모르게 힘들다. 반대로 퇴근하면 강물을 따라 집으로 온다. 그때는 마음이 편했다. 시의 모티브는 거기서 따 왔다. 그런데 생각해 보자. 우리의 삶은 결국 물속에 박혀 있는 돌처럼, 밀리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자기의 자리를 잡는 것이 아닐까. 때론 거역하고 때론 순응하면서 산다. 종교 정치 사회 등등 여러 분야의 복잡한 상황을 맞닥뜨리지만, 내 중심을 잡지 못하면 순간에 돌(삶)은 밀리고 만다. 참 억척스러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곳, 바로 돌에 물이 부서지는 곳에 달빛이 가장 아름답게 비춰진다. 열심히,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처럼.

예전에 한 스님과 대화를 나누는데, 한 신도가 찾아왔다. 많은 사람처럼 고민을 상담하러 온 것이다. 스님은 한참 이야기를 나누더니 ‘버리면 될 것인데 뭘 그리 고민하노’ 한마디 했다. 나처럼 정년퇴임을 한 사람들은 버리는 것이 어렵지 않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이 ‘놔버리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놔지지 않기 때문에 삶이다. 항상 놓고 싶지만 놓을 수 없는 고뇌. 그것이 삶이다. 그래서 부처님도 인생은 그 자체가 고(苦)라고 하지 않았나. 물살에 따라 밀리면 편할 수 있겠지만, 자기의 자리를 지켜야만 하는 것이 삶이라고 생각한다. 그 삶에 달빛이 아름답게 물드면, 그것이 행복이고 아름다운 삶이 아닐까.”

-‘새 길 없다./ 생각해보면/ 어제도 갔던 길이다./ 다만,/ 이 생각이 처음이다./ 말하자면,/ 피해갔던 진실을/ 만났을 뿐이다.’(‘처음’ 전문) 이 시를 읽으면서 우리 사회의 복잡한 현실이 생각났다. 혼란스럽고 대립적이다. 이러한 우리 사회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치유할 방법은 무엇인가.

김 “왜 우리가 힘들까. 원인에 대해 나는 존중 받지 못하는 사회를 원인으로 본다.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교육받으면서 우리 사회는 상대를 존중하는 것을 가르치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괴롭고 힘들고, 대립을 하게 된다. 예를 들어 전라도에 살면서 새누리당을 지지하면 많은 사람들에게 외면받기 쉽다. 왜 전라도 사람은 민주당이나 국민의당을 지지해야 하는가. 더 나아가 나와 다른 사람이라고 하면 싸움이나 시비의 대상이 된다. 적대적 관계가 바로 형성된다. 정치 뿐 아니라 종교, 사회 등 각종 현상에서 나와 다르면 남이라 치부하고 상대의 가치를 존중하지 않는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이런 직업을 갖고, 이런 생각이나 가치관으로 살아야 ‘남들에게 우러름을 받는다’고 교육받았다. 판검사나 의사를 선호하고, 농사짓는 사람은 무시했다. 다른 가치와 생활을 존중하지 못하다보니 대립하고 적대시 한다. 싸워서 새로운 생각을 창조해야 하는데, 싸우면 상대를 몰살시키려고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저 나무를 한번 보라. 나뭇가지는 자기 맘대로 울타리를 넘나든다. 그런데 우리는 넘지 못할 경계를 곳곳에 치고 산다. 나와 다른 것을 찾지 말고, 나와 같은 것을 찾으려는 노력을 한다면, 상대에 대한 배려의 마음과 존중하는 마음이 생길 것이다. 또 우리가 후세들에게 존중하는 방법을 가르쳐야 그런 병폐가 근본적으로 치유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 가장 시급한 문제는 정치가 아니라 경제 민주화다. 골목 상권까지 마구잡이로 침범하는 경제를 민주화하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는 없다. 정치는 경제가 바르게 되면 따라간다.”

-‘아침이다./ 눈을 떴다./ 귀뚜라미가 운다./ 팔을 베고 모로 누워/ 귀뚜라미 울음소리를/ 가만히 듣는다. 그러다가/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가만히 눈을 떠 보았다./ 한번 그래 보았다.’(‘한번’ 전문) 이번 시집의 특징은 전과 다르게 짧은 시가 많다는 점 같다. 하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다. 이 시도 그렇다.

 “시를 크게 보면 낭송하는 시가 있고, 사색하게 만드는 시가 있다. 정년 퇴임 후 전주에서 살다가 8년만에 다시 섬진강변으로 내려왔다. 첫날, 잠을 자다가 새벽에 잠시 깼는데 귀뚜라미 소리가 들렸다. 눈을 한번 뜨고 감아봤다. 그러면서 ‘이게 뭘까’ 생각했다. 불교에서 ‘이뭐꼬’ 화두를 들 듯, 그냥 이게 뭘까 했다.

다른 일화인데 한 분이 불상의 수인을 찍어 전시회를 연다며 시를 한편 부탁해 왔다. ‘두 손이 가만히 있으니/ 세상이 다 고요하구나’라고 써서 보냈더니 많은 스님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정말 좋다고. 사실 생각하면 손 때문에 지금 모든 괴로움이 생기지 않았나. 인간이 손을 사용하면서 모든 지구의 문제가 생겨났고, 손을 잘못 써서 사회 문제가 생긴다.”

- 사찰에서 차수를 하고 걸으라고 하는 것도 그런 의미로 해석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손을 가만히 두라는 말, 의미가 있다. 여러 좋은 말씀에 감사드린다. 끝으로 독자들에게 한 마디 전해달라.

 “종교가 특별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 삶의 길을 성인이 제시한 것이라는 생각이다. 나는 종교를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풀 물소리 산 꽃 등을 보면 나와 사는게 다르지 않구나 생각이 든다. 깜빡하고 꺼지는 불빛처럼, 인생도 잠깐 즐기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 우리는 너무 소란스럽게 산다. 마음이 허하다보니 자꾸 무언가를 소유하려고 한다. 그럴 때 하늘 한번 보라고 하고 싶다. 티 하나 없이 깨끗한 하늘을 보면 너무 행복하다. 그것이 삶이 아닐까.”

나는/ 어느날이라는 말이 좋다.// 어느날 나는 태어났고/ 어느날 당신도 만났으니까// 그리고/ 오늘도 어느날이니까// 나의 시는/ 어느날의 일이고/ 어느날에 썼다.(‘어느날’ 전문)

[불교신문3241호/2016년10월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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