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정사 첫 ‘황혼기출가학교’ 현장

7박8일간 승가·행자체험

평균60대 ‘행자’ 58명 입교

부처되기, 적멸보궁 참배…

소등청규 어겨 108참회도 

월정사 황혼기 출가학교 나흘째 되는 날. 60여명의 ‘행자’들이 지난 11일 월정사 대웅전에서 저녁예불을 올리는 모습. 7박8일간 하루도 빠짐없이 예경을 올렸다. 

“몸은 쇠약해가고, 우아했던 기품과 정열은 떠나버렸어요. 한때 힘차게 박동하던 내 심장자리에 이젠 돌덩이가 자리잡았네요. 하지만 아세요? 제 늙어버린 몸뚱이 안에도 열여섯 꽃다운 처녀가 살고 있음을. 그리고 이따금씩 쪼그라든 제 심장이 쿵쿵대기도 한다는 것을….” 

어두컴컴한 가을밤, 적요한 법당에 비구니 서현스님이 잔잔한 음률을 타고서 내 마음을 향해 말을 건다. “너무나도 빨리 가버렸네요. 내가 꿈꾸며 맹세했던 영원한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무서운 진리를 이젠 받아들여야 할 때가 온 것 같아요….” 스님의 낮은 음성은 어느덧 가슴을 후벼 파고 들어와 꼭 나에게 하는 소리로 다가왔다. 

지난 11일 저녁 평창 월정사 대법륜전. 평균나이 65세가 넘는 남녀 58명의 ‘행자’가 마주앉았다. 제4교구본사 월정사(주지 정념스님)가 올해 처음 문 연 ‘황혼기 출가학교’ 1기생들이다. 남행자와 여행자가 각각 두 행렬로 길게 늘어앉아 마주보는 가운데 108배가 시작됐다. 이른바 ‘서로 부처되기’다. “이 시간 여러분 모두 부처입니다. 내 앞에 있는 도반 역시 이 순간 가장 소중한 부처님입니다.” 

인생의 황혼기에 누군가를 향해 극진한 마음으로 절을 올릴 일도 없고, 게다가 절을 받을 일도 많지 않았던 이들은 온 정성을 쏟으며 1배1배 이어갔다. 내 마누라, 우리 영감, 내 아들, 우리 딸, 사랑스런 손자들…, 그리고 잊고 살았던 내 엄마 아빠…. 그들의 이름과 얼굴을 마음으로 부르고 어루만지면서 올리는 108배다. 절을 하는 사람도, 합장으로 절을 받는 사람도 어느새 터진 눈물이 목주름까지 흐른다. 

아들 딸 잘 키워 사회로 내보냈더니 느닷없이 우울증이 찾아와 무기력증에 끙끙 앓았던 황해연(52)씨는 흐느낌 끝에 폭포수같은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인생 황혼기라 보기엔 아직 젊지만 주말부부에 홀로 마음의 병을 키우다 최근 조계사불교대학을 다니며 조금씩 회복됐다”며 “108배 하는 내내 노부모님 생각에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며 했다. 

“아이고 보살님, 다리 아프실텐데”라고 108배를 만류하는 도반도 있고, “내가 좋아서 하는긴데 말리지 마소”라고 단호하게 답하고 자신보다 훨씬 ‘어린’ 도반을 향해 기꺼이 108배를 올리는 이도 있었다. “진부에서 오신 부처님 괜찮으셔요?” 행사 실무소임을 맡은 월정사의 학인 지우스님은 인연이 있는 어르신을 지칭하도 했다. 막바지 100배가 가까워지면서 분위기는 서서히 밝아졌고, ‘행자’들의 얼굴에도 개운함이 감돌았다. 

“진부에서 오신 부처님?”

닷새째 되는 날 이름 아침. 예불과 공양을 마치고 선재길을 포행하는 모습.

서현스님의 낭독문에도 희망이 보인다. “지금 당장 술을 다 마셔 지금 상황이 달라진다면 세상의 모든 술을 다 마시겠습니다. 지금 당장 어딘가에 화를 내고 누구와 싸워서 지금 상황이 달라진다면 백만 대군과도 싸움을 하겠습니다. 지금 당장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당신이 가진 시련이 달라지거나 변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하늘을 보고 웃어보세요. 그렇게 웃으며 차근히 하나씩 그 매듭을 풀어보세요. 너무 엉켜있다면 시간이 조금 더 걸릴 뿐이지 절대로 매듭이 풀리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눈물이 채 마르기도 전에 이번엔 스님의 개사(改詞) 실력에 웃음을 참을 수 없게 된다. “100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좋은날 좋은시에 간다고 전해라~~. 150세에 저 세상에서 또 데리러 오거든 나는 이미 극락세계 와있다고 전해라~~.” 

인터넷에서 황혼기 출가학교 정보를 찾아내서 멀리 대전서 버스타고 왔다는 장영희(76)씨는 108배를 무사히 ‘완주’하고, “부처님 만나러 가는 길은 한번도 힘든 적이 없었다”며 “우리 아들이 뭐하러 거기까지 가서 고생하느냐 했지만 날마다 행복하고 젊어지는 것 같다”며 환하게 웃었다. 그녀는 월정사 전나무숲에서 주웠다며 주장자를 닮은 지팡이에 의존해서 도량을 걸어다녔다. 

다음날 아침, 아침예불을 마치고 오대산 숲길 가운데 가장 완만하고 편안한 선재길을 포행했다. 월정사와 상원사를 잇는 산길이다. 12년째 단기출가학교로 유명한 월정사의 프로그램에서 이처럼 자유로운 포행은 그동안 없었다. 차수를 하고 줄을 맞춰 걸음걸이 자세를 반듯하게 해야 하는데, 황혼기 출가학교라서 예외다. 

날씨가 부쩍 추워진데다 허리와 다리가 불편한 행자님들이 적지 않기에 되도록 편하게 걷고 움직이도록 ‘허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도법사 서현스님은 “매일밤 여행자님들이 소등(消燈)시간을 준수하지 않아 오늘 오후엔 어쩔 수 없이 108참회를 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스님은 “아무래도 어머님들이라 서로 이야기꽃을 피우시는 것 같아 이해는 하지만…”이라며 빙그레 웃었다. 

마주앉아 108배를 하면서 ‘서로 부처되기’ 프로그램에 임하는 ‘남행자’들.

“7박8일 직장(집안일)에서 탈출했더니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는 유명주(58)씨는 “행자체험이 아무리 힘들다고 해도 가족들 식사 챙기고 집안일 하는 것에 비하면 여기서 주는 밥 먹으며 호사를 누린다”며 환하게 웃었다. 울산서 강원도 산골까지 출가학교를 위해 망설임없이 왔다는 이상태(65)씨는 “중년들을 위한 이같은 프로그램이 많아져야 하고, 접근성이 높은 도심포교당에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이 있으면 참 좋을 것 같다”고 했다. 

군포에서 온 포교사 신근배(60)씨는 “불교공부를 오래 해왔지만 승가체험을 하는 것 같아 흥미롭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스님보다 더 스님 같아서” 이른바 ‘짝퉁 스님’이라는 다소 거친 별칭을 얻은 ‘삭발행자’도 있었고, 평생 수행을 해오다 죽기 전에 출가를 꼭 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갖고 참여한 이도 있었다. 

이들은 모두 ‘월정사 황혼기 출가학교’ 1기생이란 자부심을 안고 7박8일(10.8~15) 동안 적멸보궁을 참배하고 수좌 스님들의 강좌를 듣고 마음공부를 이어갔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유언장도 써보고 스님들의 지도로 참선도 했다. 3km에 육박하는 ‘월정사 전나무숲길 삼보일배’는 우려가 많았지만 다리와 허리통증보다 더 큰 환희심으로 원만하게 성취했다. 

‘황혼기 출가학교’를 졸업한 이들은 다시 ‘청춘’을 되찾은 듯 행복해했다.

[불교신문3241호/2016년10월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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