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록이던 벼이삭이 노르스름해지는 것을 보니 짓궂은 날씨와 기후에도 벼는 제몫을 묵묵히 해내고 있구나, 대견한 마음이 든다. 산자락의 단풍도 그러하듯 익어간다는 것은 자기만의 빛깔로 깊이 곰삭는 일인가 보다. 얼마 전 복지관 관계자들과 지역의 한 요양시설을 방문했다. 들어가는 입구부터 시선이 닿는 곳마다 세심한 배려와 정성이 보이고 천정의 자연채광마저 은은히 비춰져 요양원이라기보다 쾌적한 주택처럼 느껴져 일행들도 이구동성으로 감탄을 했다.

시설 원장님은 어떤 분일까 궁금했는데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 비결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저는 이곳을 부모님 계시는 집이라 생각하지, 요양병원이라 여기지 않아요. 부모님 계신 공간이니 아름답고 편안하게 꾸며 드리고 싶은 것은 당연하지요. 그러니 무엇을 원하실까? 뭘 해드릴까? 항상 염두에 둡니다.” 진심이 느껴지는 그의 말을 들으며 부처님을 모시는 아난의 얼굴이 떠올랐다. 원장님은 정말 100여 명의 어머니 아버지를 봉양하는 자식과 같았다. 

곁에서 어르신을 돌보는 한 간병인에게 힘들지 않느냐 물었더니 잔잔한 웃음이 돌아왔다. “이 일을 하면서 철이 드는 것 같아요. 어르신을 돌보면서 배우는게 많습니다. 내 부모라면 어떻게 대할까? 먼 훗날 제가 누워있을 때 어떻게 보살펴주면 편할까? 이런 생각을 하면 손길에 저절로 정성이 들어가요.” 

찬찬히 둘러보고 나오는 걸음이 바람처럼 가볍다. 오후 햇살이 비치는 자리에 휴식처가 돼주고 있는 나무에 눈길이 갔다. 몇몇 사람들이 나무 아래서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환자 가족이 기증한 나무인데 철마다 풍성한 꽃을 피워 ‘철순이’라고 이름지었단다. 무심히 보면 그저 흔한 나무지만 이름을 붙여주니 모든 사람들에게 의미가 되고 누군가를 기다리고 만나는 약속장소와 이정표 역할을 하고 있었다. 가을이 소리없이 숲의 깊은 곳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다. 가을산을 보면서 그 깊은 속으로 들어가 나의 빛깔로 물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자리를 떠났다.

[불교신문3241호/2016년10월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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