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에 있으면서 가장 설레는 순간은 신입생들을 맞이하는 입학식일 것이다. 중학생 티를 벗어내고 고등학교에 입학한 아이들. 그래도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크게 학업에 매달리지 않고 학교생활을 즐겼을 아이들이 이제 대학이라는 커다란 문을 열기 위해 치열한 경쟁에 내몰리게 되는 상황에 직면하는 순간이다. 반가움과 함께 마음 한편에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광주 정광고 교법사인 나는 학생들에게 첫 시간에 이런 말을 꼭 한다. 너희들 힘든 고등학교 시절에서 종교시간 만큼은 자신을 돌아다보고 지친 몸과 맘을 이완할 수 있는 삶의 윤활유 같은 시간이 되게 해주겠다고. 학생들은 딱딱한 수업교실에서 벗어나 종교교실에 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하는 것 같다. 참 순수하고 여리다. 그 조그만 것에도 행복감을 느끼는 아이들이 마냥 고마울 따름이다. 그런데 나에겐 설렘과는 다른 긴장감을 동반한 만남의 순간이 있다. 방학이 끝나고 처음으로 갖는 수업시간이다. 나에게 일종의 트라우마가 생긴 건 어떤 여학생의 죽음이 계기가 되었다.
 
10여년이 조금 지난 일이다. 수업시간에 참 착하고 순수해 보이고 무엇보다 사경대회에서도 입상하여 기억에 남던 아이가 여름방학이 끝나고 개학한 종교수업 첫 시간에 보이지 않은 것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었다. 담임에게 자세히 물어보았더니 집안환경이 불우했단다. 특히 부모간의 불화가 잦았던 환경에서 그날도 부모님이 싸우는 걸 보고서 옥상에 올라가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난 그날 이후 얼마간 크나큰 무력감을 느꼈다. 그 아이가 높은 건물 옥상에 올라가 떨어지기 직전에 떠올렸을 지도 모를 많은 사람 가운데 나는 과연 그 아이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아무리 현실이 힘들더라도 교법사를 생각하면 그래도 힘든 삶을 헤쳐 나갈 용기를 줄 사람이 되어주지 못했던 것일까.
 
불교의 조석예불 때 독송하는 행선축원에 ‘문아명자면삼도 견아형자득해탈’이라는 구절이 있다. 교법사는 학교에서 교법사 이름 석 자를 들으면 삼도(지옥 아귀 축생)에서 벗어나고 교법사 얼굴을 보면 해탈까진 아니더라도 기쁨과 즐거움을 안겨다 주어야 하는 존재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난 그날 이후로 한참동안 자괴감에 빠져 힘든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통계에 의하면 2010년 한국의 청소년 자살률은 청소년 10만 명 당 9.4명으로 OECD평균인 6.5명보다 높은 수치를 기록하였다. 청소년 사망원인의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는 건 자살이다. 살아있는 모든 생명을 귀중히 여기라는 부처님의 말씀을 따르는 불자들. 아직은 어려서 방황하며 힘들어하는 청소년들부터 챙겨야 하는 게 나의 갈 길이리라.  

[불교신문3240호/2016년10월1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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