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계인사 13명 모여 2년간 ‘법성게’ 토론

스님과 철학자 

도법스님·윤구병 지음 정리 이광이/ 레디앙


도법스님 윤구병 교수 스승삼아 철저 분석

신비함 모호함 아닌 현실의 문제 제시 결론

한국불교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하나의 경전을 꼽는다면 누구나 <화엄경>을 들 것이다. 한국불교의 사상 정신 문화 사찰배치 등 화엄경이 스며들지 않은 곳은 없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불교를 규정하는 선(禪) 역시 ‘화엄’에 그 뿌리를 두고 있으며 한국의 내로라하는 강백들이 가장 많이 번역한 경전도 ‘화엄’이다. ‘화엄경’은 80권에 이를 정도로 내용이 방대하다. 이 방대한 내용의 핵심을 210자 시(詩)로 압축한 것이 <법성게>다. 신라 화엄종의 개조이며 원효와 더불어 화엄사상을 한국불교 주류로 작동시킨 주인공인 의상대사의 작품이다. 

의상스님이 중국에 있을 때 지었는데 중국불교계도 인정할 정도로 화엄사상의 정수를 정확하게 드러냈다는 평을 받았다. 그 내용이 얼마나 간결하고 핵심을 관통했는지 화엄경 내용을 정리한 책을 불에 태웠더니 다 타고 210자만 남았더라는 설화가 전해온다.  

법성게는 불교의례로 불자들 생활 깊이 들어와 있다. 영가를 보내는 49재에 마지막 순서가 법성게 독송이다. 49재를 마치고 법당에서 나와 영가의 위패와 옷을 태우는 소대(燒臺)까지 가며 읊는 ‘전송곡’이 바로 법성게인 것이다. 영가 천도의식인 49재 마지막을 법성게로 장식한다는 것은 법성게 210자만 들어도 천도가 된다는 뜻이 담겨있다.  

그러면 ‘법성게’는 무슨 내용을 담고 있는가? 그토록 중요하고 불자들의 의식 깊이 들어있으며 죽은 영가도 천도할 정도로 영험있는 법성게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스님과 철학자>는 법성게 210자가 무슨 뜻인지를 놓고 스터디한 내용을 정리한 책이다. 내용을 설명해주고 함께 고민하는 좌장은 도법스님과 윤구병 전 충북대 교수다. 도법스님은 화엄을 법당 안이 아닌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로 삼고자 실상사에 화엄학림을 세워 공부하고 연구자를 양성했으며 ‘붓다로 살자’를 통해 좋은 세상 만들기를 실천하고 있는 대표적인 ‘화엄행자’다. 

윤구병 교수는 젊을 적에는 출가를 꿈꾸었으며 충북대 교수직을 15년만에 그만두고 부안에서 ‘교육공동체’를 설립한 ‘실천하는 지식인’이다. 두 분의 스승을 모시고 11명의 제자들이 모여 공부를 시작했는데 공부 모임 이름이 ‘불한당’이다. ‘땀을 흘리지 않는 자’ 즉 출가자를 지칭하는 이름이었지만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남에게 기대어 놀고 먹는 자’로 비하된 그 불한당이 아니고 ‘불경을 알기 쉬운 한글로 풀어보자는 모임’이라고 한다. 2013년 가을에 조계사에서 처음 모여 격주 수요일 서너시간 공부를 하고 있는데 첫 번째 교재가 ‘법성게’였다. 2년 간 공부한 녹음을 풀었는데 30만자에 달했다. 이를 간추려 책으로 펴낸 것이다. 

불교가 부처가 되는 것이 아닌 부처로 살기 위한 구체적인 삶의 지침을 주는 종교라는 사실을 경전 공부를 통해 체득하는 공부 모임 ‘불한당’이 법성게를 토론한 책을 펴냈다. 불한당 회원들 모습.

한 구절 한 구절을 읽고 스님과 윤 교수가 설명하면 학생들이 질문하고 의문이 생겨 질문하면 ‘두 스승’이 답하는 식으로 9장에 나눠 펴냈다. 학생이라고 하지만 모두 사회에서 이력을 쌓은 한 분야의 전문가들이다. 전직 신문기자, 전통음식연구가, 청와대 행정관 출신 교수, 출판전문가 등 만만치 않은 이력의 소유자들이다. 그래서 학생이라는 ‘자’들의 질문이 아주 날카롭고 간간히 드러나는 이들의 인문 철학 과학 실력이 보통이 아니다. 그 중에서 기자와 공무원을 지내고 30만자에 달하는 토론내용을 정리한, 이 책의 실질적인 저자 이광이 작가의 실력이 으뜸이다. 글이 쉽고 핵심을 잘 정리하면서도 현장에 함께 있는 듯 생생하다.

이 책 즉 <법성게> 토론에서 가장 중요한 물음이면서 관통하는 주제는 ‘법성’(法性)이 무엇이냐이다. 첫 구절 ‘법성원융무이상’(法性圓融無二相)의 법성이 법성게의 뜻을 이해하는데 선결요건이다. 그래서 ‘법의 성품’ 혹은 ‘존재의 본질’이라고 하는 법성이 무엇인가를 놓고 토론이 문을 열고 답을 찾아간다. 됨됨이를 일컫는 ‘바탕’ ‘결’ ‘나의 참모습’ 등 다양한 해석이 나왔는데 도법스님은 의상이 말한 오척신(五尺身)으로 설명했다. 오척의 몸 즉 사람이다. 

도법스님은 “오척의 몸이 법성이라고 한다면 법성게는 매우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삶의 문제를 다루는 내용이라고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학생’이 “스님 말씀 들어보니 장엄하고 웅대한 화엄사상을 초고밀도로 압축한 210자 <법성게>가 다루는 법성이 신비하고 오묘한 어떤 것이 아니라, 바로 나라는 당면한 존재에 대한 것이네요. 우리가 살면서 문득 문득 던지는 질문, 나는 누구인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부처님의 말씀이라는 생각도 듭니다”라고 호응한다. 

‘하나’(一)와 ‘둘(二)’도 꽤 오랫동안 ‘논쟁’했다. 철학자인 윤 교수는 이를 ‘있는 것’과 ‘없는 것’으로 풀었다. 있는 것은 오직 하나로만 존재한다. 둘은 ‘이’ 하나와 ‘다른’ 하나가 합쳐지는 것인데 하나는 절대적이다. 그래서 오직 하나일 뿐이다. 기독교는 이 절대적인 하나에다 님을 붙인다. 그러면 둘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있는 것이 아닌 없는 것에서 나온다는 것이 윤 교수의 해석이다. 윤 교수는 “법성게는 처음부터 끝까지 있다와 없다, 이다와 아니다에 관한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상(相)과 성(性)도 꽤 깊이 논의하고 열띠게 토론한 주제다. 이처럼 ‘불한당’ 들은 법성게 단어 한 자 한 자 해부해서 뜯어보며 퍼즐을 맞추듯 답을 찾아갔다. 

<법성게> 2년간의 토론 성과 혹은 결론은 도법스님의 말 속에 담겨있다. “오척신을 법성이라고 하면 내가 곧 우주, 우주가 곧 나이므로 존재 자체가 거룩함 완성 불가사의 심오함 영원 무한함 등 최고의 의미를 갖는다. 아울러 지금 여기에 있는 존재 자체를 떠나서 거룩한 것이 특별히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드러내게 된다. 이것이 대승불교의 대단히 뛰어나고 진화된 통찰이다.” 

[불교신문3239호/2016년10월1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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