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기석이라는 시인이 쓴 ‘백년 후에 없는 것들’이라는 시가 있다. 특별한 내용은 아니고 자신이 알고 있는 저명한 문인들 500명의 이름을 가나다라 순으로 나열하고 제목을 붙여놓은 것이다. 여기에는 김남조 고은 신경림 도종환 정호승 김용택 문정희 문태준 등 그야말로 우리나라 문단의 대표문인들의 이름이 망라되어 있다. 시인의 의도는 이분들이 아무리 유명하다한들 백년 뒤까지 살아 있겠느냐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얼마 전 어떤 시인의 빈소에서 이 시가 화제에 오른 것이다. 그 자리에는 제법 문명이 높은 분도 함께 있었는데 그 분은 그 시에 자기 이름이 빠진 것이 못내 섭섭한 눈치였다. 딴은 그렇기도 했다. 그는 당연히 이름이 거명될 만한 분이었다. 그렇지만 백년 후에 죽고 없을 존재라면 거기에 이름이 들어가면 어떻고 빠지면 또 어떤가. 그런 것에 집착하는 것이야말로 웃기는 일이 아닌가.

우리는 평생을 이렇게 부질없는 것들에 매달려서 살아간다. 하지만 그토록 좋아하는 돈과 명예와 권력은 뜬구름에 불과하다. 청춘도 사랑도 세월 앞에서는 흘러가는 물과 같다. 여성들이 그렇게 집착하는 명품 백이나 옷도 금방 쓰레기감이다. 부모형제나 다정한 친구와는 언젠가 헤어져야 한다. 아니 그토록 애지중지 보살펴온 자기 자신과도 결별해야 한다. 집착하고 매달린다한들 백년이 가겠는가, 천년이 가겠는가.

태국 남부지방 차이야 라는 도시에 수안목이라는 절이 있다. 그 절 선방 앞에는 해골이 하나 전시돼 있는데 설명은 이렇다. ‘1930년 미스 타일랜드 실물’ 아무리 잘났다고 해도 끝내 저렇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무슨 대단한 진리가 아니라 이러한 ‘삶의 무상성’이다. 이를 알고 나면 용서 못할 일이 없고, 싸움으로 밤을 지새울 이유가 없다. 부처님이 제행무상(諸行無常)을 가르치고 자장법사가 고골관(枯骨觀)을 닦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가. 문득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다른 분들은 어떤지 모르겠다.

[불교신문3236호/2016년10월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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