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주스님, 인생 80년 출가 65년을 회고하다

귀일심원 요익중생(歸一心源 饒益衆生). 마음의 근본을 깨닫고 일체중생을 이롭게 하라는 말로, 원효스님이 즐겨 인용하던 말이다. 지구촌공생회를 설립해 세계에 나눔과 평화의 정신을 전하고 있는 월주스님이 지남으로 삼는 말이기도 하다. 스님은 말한다. 세간을 떠난 수행은 토끼에게서 뿔을 구하는 것과 같다고.

“불법재세간(佛法在世間) 불이세간각(不離世間覺) 이세멱보리(離世覓菩提) 흡여구토각(恰如求兎角) 불법은 세간 가운데 있으니, 세간을 떠나서 깨닫지 못하네. 세간을 떠나서 깨달음을 찾는다면, 마치 토끼뿔을 구하는 것과 같다.”

<화엄경>에 나오는 이 말을 월주스님은 “토끼에게서 뿔을 찾고, 거북에게서 털을 찾지 말 듯, 세간에서 불법의 대의를 찾으라”고 강조하며 “앉아서 성불할 수 없고, 진리는 세간에서 실현해야 한다는 가르침은 나의 화두이며 삶의 지침이다. 앞으로도 이웃과 인류의 행복, 평화를 위해 역할을 마다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지난 26일 조계종 제17교구본사 금산사에서 월주스님의 회고록 <토끼뿔 거북털>과 법문집 <세간과 출세간이 둘이 아니다> 그리고 <화보집> 발간을 알리는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회고록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과 대답이 한시간 넘게 이어졌다.

회고록 <토끼뿔 거북털>은 월주스님이 출가에서 현재에 이르는 삶의 기록이며, 해방 이후 조계종의 성립과 발전 과정을 담은 책이다. 회고의 시작은 1980년 10•27법란이다. 당시 개운사에 머물던 스님이 아침에 총무원에 가려고 나서는데 보안사 직원들이 스님을 막아섰다. 그리고 지프차에 태워 어디론가 데리고 갔다. 보안사 서빙고 분실이었다.

“모든 것은 치밀한 시나리오였다. 신군부의 합동수사단은 10•27법난 이전부터 불교계를 정화한다는 구실을 내세워 종단 지도부를 와해하려고 했다. 강압에 의해 모든 권한을 넘겼지만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은사께 받은 이뭣고 화두가 유일한 대안이었다. 조사 23일째인 11월18일, 조사 내용을 발설하지 않고 향후 2년간 모든 공직을 맡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고 나왔다. 이 시나리오에 따라 조계종 스님과 불교계 인사 153명이 연행됐고, 군경 합동 32,000여 명이 전국 사찰 및 암자 5700여 곳을 군홧발로 짓밟았다. 자주 개혁을 앞세운 조계종의 봄은 6개월 만에 어이없이 그렇게 끝났다.”

왜 정권이 불교를 이처럼 짓밟았을까. 원인은 광주민주화운동에서 시작된다. 광주에서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하자 총무원장이던 월주스님은 광주로 향했다. 그리고 ‘광주 사태 희생자 영가’ 위패를 모시고 천도재를 봉행하고, 시민을 위한 위로금을 전달했다. 밉보인 것이다. 게다가 “전두환 장군을 대통령으로 추대한다”는 성명 요구를 몇차례 거절했다.

월주스님은 이날 간담회에서 “10•27법난에 대한 진상조사는 아직도 명확히 이뤄지지 않았다. 법난으로 인해 불교의 자주성 회복과 개혁은 1994년 개혁종단이 들어설 때까지 미뤄져야 했다”며 아쉬움을 전했다.

기자들의 여러 질문에 대해 스님의 답은 명확했다. “중생과 공생하면서 고통을 같이 나누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 인류이며, 그 안에 불법이 있다”는 것이다. 또 “자유민주주의는 지금까지의 정치방식 가운데 가장 나은 제도이다. 하지만 중도적 입장에서 나눔과 재분배를 실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런 스님의 생각은 <토끼뿔 거북털>에도 잘 정리돼 있다.

월주스님은 1998년 경기도 광주에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해 나눔의집을 설립했다. 그 이전부터 갈곳없이 방황하던 ‘위안부 할머니’를 위해 주택을 구입해 보살폈지만, “혐오시설” 운운하는 주민들로 인해 몇 차례 집을 옮겨야 했다. 결국 민가가 거의 없는 광주의 한 곳에 땅을 구입해 나눔의집을 건립하게 됐다. 스님은 최근 정부가 일본과 위안부 문제에 대한 협의를 한 것에 대해 “아직 해결되지 못한 문제”라고 못박았다.

“현 정부가 역대 어느 정부보다 일본을 향해 위안부 문제 해결을 강하게 주장했다. 하지만 아베 정권은 이에 응하지 않았다. 지난해 이 문제에 대해 양국간 논의가 있었지만, 많은 위안부 할머니들이 배상을 거부하고 있다는 점에서 위안부 문제는 해결된 것이 아니라 진행과정이라고 봐야 한다.”

스님은 또 오도송과 임종게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했다. 수행자들이 치열하게 수행하다가 깨달음을 오도송으로 읊는 것에 대해서는 인정해야 하지만, 때로 후손이 억지로 임종게를 만들어 발표하는 것은 “하지 말아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월주스님은 “스님이 모두 수행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 행정을 하기도 하고, 때로 수행도 한다. 하지만 부처님 말씀을 따라 치열하게 살다가 가면 된다. 이를 후손들이 억지로 꾸미거나 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최근 사회적 논란이 되고 있는 현안에 대한 질문에도 스님은 답을 피하지 않았다. “세월호 사건은 매우 슬픈 일이다.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제도를 보완하고, 유가족의 마음을 치유해야 한다.” “백남기 사건에 대해 정부가 책임있는 보상을 하고 재발방지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또 시위 진압과정에서 불법이 있었으면 처벌해야 한다.”

스님의 가르침은, 그리고 삶은 항상 중생과 유린되지 않았다. 그리고 80세가 넘은 지금도 그 마음은 변함이 없다. “내 삶을 돌아보면 아직도 부족하고, 더 노력해야 할 부분이 많다. 광덕스님은 도심포교에 열정을 바쳤고, 법정스님은 아름다운 글로 세인들의 마음을 교육했다. 저마다 자신의 소질과 관심이 다르다. 수행자들도 자신의 소질대로 열심히 살면된다. 그것이 수행이다.”

<토끼뿔 거북털>은 제 1부 정화와 개혁을 비롯해 제2부 출가와 절차탁마에서는 출가 후 26세 나이에 본사인 금산사 주지로 온 이유와 원력을, 제3부에서는 정화운동에서 베트남전 파병, <우리말 불교성전> 간행의 뒷이야기, 부처님오신날 공휴일 제정 운동 등 한국불교 역사를 기록했다.

또 제4부에서는 1994년 종단개혁의 과정과 종단개혁을 위해 월주스님이 시행한 여러 정책에 대한 회고를 담았다, 그리고 제5부 깨달음의 사회화 운동, 제6부 지구촌공생회와 나눔의집을 다뤘으며, 제7부 인연에서는 스님이 그동안 만난 다양한 인물과의 인연을 소개했다.

월주스님의 회고록은 아직 미완성이다. 스님은 못다한 이야기와 더 하고 싶은 일을 하고나서 “다시 회고록을 만들겠다”며 이날 사부대중에게 인사말을 전했다.


출가란 보리심을 발하여
‘낡은 고집’ 떠나는 것이다

“출가의 진리는 가족을 떠나고 산중에 들어가는 형식이 아니라 보리심을 발하여 낡은 고집을 떠남이다. 만해스님의 유미힐소설경 강의에 나오는 말입니다. 보리심이 무엇입니까.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하려는 마음입니다. 법회 때마다 부르는 사홍서원의 첫 구절, 중생을 다 건지오리다하는 그 마음입니다.”

월주스님이 조계종 총무원장 재직 이후 각종 법회나 행사장에서 했던 대중법문이 한권의 책으로 묶여 나왔다. ‘깨달음의 사회화 운동’으로 대변되는, 불교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강조했던 스님은 불교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각 법회 현장에서 무엇이 불교의 대의이며, 자비심인가를 법문을 통해 밝혔다.

<세간과 출세간이 둘이 아니다>는 다양한 경전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혼탁하고 어지러운 이 시대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길을 제시하는 법문을 담았다. 상좌들이 정리한 월주스님의 법문은 크게 4가지로 분류돼 있다. 첫째는 영원히 사는 길이란 무엇인가. 불교의 가르침과 인연의 소중함을 전하고 있다. 둘째로 보현행이 곧 깨달음이라는 가르침이다. “새의 양 날개처럼 지혜와 자비가 원만해야 한다”는 스님은 중생을 알면 부처를 볼수 있다고 강조한다. 또 부처님의 가르침을 많은 국민들이 알고 실천할 때 진정한 평화와 통일이 다가올 것이라고 법문한다.

셋째는 나눔. “자비가 부처님이며, 사랑이 곧 하나님”이라며 우리나라 뿐 아니라 지구촌의 아픔을 같이 나눠야 할 공업중생을 자각해야 한다고 법문한다. 넷째는 ‘불법은 세간에 있다’는 말로 불자들이 세상을 위해 무엇을 회향하며 살 것인지 길을 제시한다.

“마실 물이 없어 고통받는 이들에게 우물을 파주고 완공식을 할 때, 그 나라의 지도자들과 관계자, 수많은 주민들이 참석합니다. 그렇게 구름처럼 모여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모습, 교실이 없어서 천막을 치고 공부하던 아이들에게 학교를 지어주고 나서 방문했을 때 아이들과 선생님들, 마을 주민들의 환한 웃음과 행복한 표정을 보면 나 역시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월주스님은 이런 모습을 인과의 법칙을 설명한다. 약간의 물질을 나눔으로써 내게 오는 행복과 복덕, 그리고 그로 인한 건강을 생각해 보라는 지적이다. “좋은 인연을 짓는 것은 최상의 복이다.” 법문집에서 수차례 반복하는 월주스님의 가르침이다.
 

■ 월주스님은

1935년 정읍서 출생해 유학을 공부한 스님은 1950년 서울 중동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진학하던 해 한국전쟁을 만났다. 1954년 법주사에서 금오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스님은 1961년 26세의 나이로 금산사 주지와 전북 종무원장 소임을 맡았다. 1970년 조계종 총무원장 교무부장과 총무부장을 걸쳐 1980년 제 17대 조계종 총무원장에 선출됐지만, 10•27 법난으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1994년 개혁종단이 들어서면서 제28대 총무원장에 취임해 깨달음의 사회화 운동을 펼쳤으며, 퇴임 이후 실업극복국민공동위원회 공동위원장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으며, 지구촌공생회를 설립해 저소득국가 지원사업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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