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이 농후하면 도심(道心)이 옅어지나니”

시비에 옳은 것만 강조하면 엄격

정이 지나쳐 애착하면 수행 장애 

수행자라면 분별심 없는 평정심을…

‘냉정하다’ 또는 ‘인자하다’는 말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습니다. 냉정(冷靜)이란 ‘생각이나 행동이 감정에 좌우되지 않고 침착’한 것을 이릅니다. 자비가 필요한 분은 힘껏 보듬을 수 있으나, 번뇌의 손길은 맞잡지 않으려는 것이 일반적인 수행자의 자세입니다. 그리고 싫거나 좋아하는 분별심도 경계하는데 그것은 물건이나 환경뿐 아니라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보기에 따라서 냉정하거나 인자하게 비춰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다정도 병’이라 하듯이 정이 과도하면 이런저런 인연에 얽히고설켜 그 사이에서 갈등하는 상황도 생길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시시비비를 따져할 경우 침착하게 대응해 실수를 범하지 않으려 할 것입니다. 감정을 자제하며 합리적으로 처신하더라도 정에 메이는 순간 본질이 흐려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의(正義)’를 다룰 때는 아무래도 냉정하고 과감한 결단이 요구됩니다.

일반적으로 ‘정의(正義)’란 ‘개인 간의 올바른 도리 또는 사회를 구성하고 유지하는 공정한 도리’입니다. 개인뿐 아니라 사회를 유지하는 동력 가운데 하나로써 ‘정의’는 공동의 구호지만, 각자가 생각하는 개념은 다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의리’, ‘도리’ 따위에 어긋나는 ‘불의(不義)’의 규정이 시대나 상황에 따라 차이가 나기 때문입니다.

고대에서는 ‘불의’를 열가지의 큰 죄인 십악(十惡) 가운데 하나로 여겼으며, 이를 어기면 처벌이 따랐습니다. 일률적인 강제성을 지니는 법의 속성 때문인데 ‘불의’의 내용 가운데 ‘상(喪) 중에 상복을 벗고 길복(吉服, 삼년상을 마친 뒤에 입는 보통 옷)을 입거나 개가(改嫁)한 행위’ 등도 포함돼 있습니다. ‘의(義)’를 저버리고 ‘인(仁)’에 어긋난 행위(本止以義相從 背爲乖仁 故曰不義)라서 그렇다지만 요즈음 세태로 본다면 엄하게 다뤄야 할 죄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입니다. 법이 시대상황을 담아내는 것이라면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국가 경영이나 단체 운영에서 추구하는 가치 실현을 위해 명확한 기준을 세울 때는 누구나 예측가능하고 공정하며 지속적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서 ‘의(義)’의 기준과 실현방법은 그것과 다를 수 있습니다.

군대와 가족을 예로 든다면 소동파보다 먼저 활동한 제갈량은 사적인 정보다 법의 공정한 집행을 위해, 아끼던 마속을 군율 위반으로 처형하였습니다(泣斬馬謖). 그러나 부모는 약속을 어긴 자녀에게 올바른 가치관 정립을 위해 훈육하더라도 군대와 같이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일상에서 소소한 원칙과 기준을 따져야 할 때 소동파의 글을 떠 올리곤 하는데, 그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상을 줄 수도 있고 안 줄 수도 있을 때 상을 주는 것은 인이 지나친 것이요, 벌을 내릴 수도 안 내릴 수도 있을 때 벌을 내리는 것은 의가 지나친 것이다. 지나치게 인을 베푸는 것은 군자가 못할 바 아니지만 의가 지나치면 잔인한 사람이 된다(過乎義 則流而入於忍人).”

‘바르다’의 ‘의(義)’를 지나치게 중시하면 엄격하게 변해갈 것이라는 일련의 과정이 머릿속에 그려지면서 우려되는 것은, 불의에 맞서는 정의가 아니라 정해진 규칙만 우선시하는 것입니다. 일상에서 옳고 그름의 기준은 있어야겠지만 무조건 그런 잣대로 모든 것을 재단하기는 어려운 현실이라서 그렇습니다.

때로는 그른 줄 알면서도 해야 하고, 옳은 줄 알면서도 못하는 우리에게 기계적인 정의보다 따뜻한 인정이 더 많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살맛나는 세상을 만들기도 하지만 수행에 있어서는 장애가 되기도 합니다. 그것이 자비(慈悲)가 아닌 세속적인 정이라면 ‘출가(出家)’의 본질이 흐려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출가자가 ‘인정’이 풍부해 ‘애정’이 되고 ‘애착’으로 이어져 번뇌하는 것을 경계하고자 <초발심자경문>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인정이 농후하면 도심이 옅어지니 냉정히 하여 돌아보지 말라(人情濃厚道心疎 冷却人情永不顧).”

[불교신문3235호/2016년9월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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