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속의 큰별 명성

남지심 지음/ 불광출판사

운문사 강주 취임 이후

46년간 강의를 이어오며

비구니 스님 표상으로

살아온 명성스님의 삶…

 

매사에 진실되게 살라는

즉사이진(卽事而眞) 좌우명

최대 비구니 교육기관 ‘건립’

운문사로 들어가는 초입길에는 잘 가꾸어진 소나무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그 길을 따라 운문사로 들어서면 수백년 수령의 은행나무가 넓은 그늘을 만들고 나그네를 맞는다. 누가 이 산을 가꾸었을까. 사찰과 스님이 없었다면 이 자연의 멋진 모습을 우리는 감상할 수 있었을까. 지난 20일 청도 운문사를 찾았다. 회주 명성스님의 출판기념행사가 열린 운문사에는 그동안 운문사승가대학을 거쳐 간 200여 명의 스님들이 함께 하고 있었다.

 

“책에서 구름속의 큰 별이라고 했는데, 작은 반딧불 같은 존재를 너무 찬사한 것 같아 부끄럽습니다. 그동안 평생을 학인들 지도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남을 가르치고자 하면 자신부터 가르쳐야 한다고 했어요. 뛰어난 스승은 말을 하며, 훌륭한 스승은 모범을 보이고, 위대한 스승은 감화를 준다고 했는데, 나는 어느 정도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보잘 것 없는 인생을 드러냈습니다. 부족한 것은 여러분의 삶으로 채워주시기 바랍니다.” 운문사 회주 명성스님은 겸손한 인사말로 출간의 소회를 대중에게 전했다.

소설가 남지심 씨가 쓴 <구름속의 큰별, 명성>은 소설의 형식을 빌린 명성스님의 전기다. 어린 딸을 두고 출가한 아버지 관응스님의 이야기에서 시작해 출가 인연과 호거산 운문사에 머물면서 이룬 업적을 이야기체로 정리했다. 무엇보다 일제강점기 이후 근현대 비구니 역사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자료적 가치도 높다.

명성스님이 속명은 전임호다. 유학자였던 부친은 ‘임호’가 태어난 직후 출가수행자의 길로 들어섰다. 이어 성장한 임호 역시 스물세살 되던 해, 해인사로 길을 떠났다. “관응스님에게는 자랑스러운 후배 도반을 얻는 일이었고, 어머니에게는 청천 하늘에 날벼락을 맞는 일이었다”고 저자는 기술한다.

지난 20일 열린 ‘평전소설’ <구름속의 큰별 명성>봉정식에서 후학에게 꽃다발을 전달받는 명성스님.박광호 대구·경북지사장 daegu@ibulgyo.com

“탕.탕.탕. 가까이에서 총성이 들려왔다. 전 행자는 깜짝 놀라며 눈을 떴다. 빨치산이 총을 쏜 것 같았다. 깜깜한 어둠속이긴 하지만 일어날 시간이었다. 다른 스님들은 아직 잠자리에 들어 있지만, 전 행자는 하루를 시작해야 할 시간이었다. 별빛이 없는 공양간은 바깥보다 더 어두웠다. 호롱불을 붙이고 삶은 보리쌀을 담아 놓은 소쿠리를 찾았다. 그런데 그 보리쌀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지난밤에 공비가 다녀간 것이 틀림없었다.”

대중이 아침을 거를 것을 염려한 명성스님은 어둠속에서 밭으로 가 감자를 캤다. 관세음보살을 염불하며 무서움을 떨치고자 했다. 그렇게 아침을 짓고, 점심 공양까지 준비를 마치면 큰절 해인사로 갔다. 국일암에서 해인사로 오고가는 길에 공부한 것을 암기하면서….

1970년 40세 때 명성스님이 운문사 강원에 강주로 왔을 당시만 해도 강원 교육은 서당에서 훈장이 가르치는 방법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명성스님은 주입식 교육의 틀을 깨고 모든 수업을 논강식 교육 방법으로 바꾸었다. 또한 절집 공부만으로는 안 된다고 여기고 외학(外典)과의 연계성을 강조했다. 미술, 외국어, 심리학, 철학, 유학, 다도, 꽃꽂이, 피아노, 서예 등을 교과목에 넣었다. 그 당시 경상북도 산골에서 이런 교육을 한다는 것은 시대를 앞서 간 획기적인 일이었다. 승가교육 현장에서는 이를 매우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 들였다.

이후 운문사에서 머물면서 39동의 건물을 신축하고, 10동의 건물을 보수하며 운문사를 국내 최대의 비구니 교육기관으로 탈바꿈시켰다. 지난 40년간 운문사를 거쳐간 비구니 스님이 2000명을 넘는다.

“50대 후반, 명성스님이 권선에 나섰다. 강원도에서 시작해 경기도, 서울, 충청도에 이어 부산까지 순례를 하며 추운 겨울을 권선 순례로 보냈다. 그렇게 권선을 마치고 돌아온 다음날 저녁, 어금니 두 개가 빠졌다. 결국 이듬해인 1989년 청풍료 공사가 계획대로 진행됐고, 사미니반, 사집반 학인들이 넓고 쾌적한 공간으로 이사해 공부를 할 수 있었다.”

명성스님은 일을 시작하면 끝까지 마무리하는 성격이다. 늘 하는 말, “일은 1%의 지시와 99%의 확인”이라는 것처럼 즉사이진(卽事而眞, 매사에 진실되게 살라)의 가르침을 담고 산 스님이다.

이날 법회에서 ‘깜짝 동영상’이 방송됐다. 지난 봄 명성스님이 학인 스님들과 독일과 유럽을 순회할 때, 한 학인 스님이 휴대전화 동영상으로 촬영한 내용이었다. 영상에서 스님은 ‘금강산’을 선창하고 있었다.

자[불교신문3235호/2016년9월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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