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이 머무신 8개 도시 <32> - 천상을 닮은 도시, 바이살리②

천상을 닮은 화려하고 아름다운 도시 바이살리를 덮친 전대미문의 재앙은 많은 백성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계속된 가뭄으로 연못과 우물은 바닥을 드러냈고, 곡식은 싹을 틔우기도 전에 말라버렸으며 굶주림과 목마름에 지친 사람들은 하나 둘 죽어갔다. 거리엔 시체들이 쌓였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문을 걸어 잠근 채 두려움에 떨었다. 그렇게 방치된 시신들이 썩어가면서 온갖 전염병이 도시를 휩쓸자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속절없는 죽음을 맞았다. 악귀가 바이살리를 점령했다는 소문이 빠르게 퍼져나갔고 민심은 거칠고 흉흉해졌다. 이에 바이살리를 다스리던 릿차위족 왕자들은 재난과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완전한 지혜를 성취한 성자를 도시에 초청하여 그의 위신력으로 재앙을 물리쳐보자고 의견을 모았다. 그리하여 바이살리와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이웃도시 라자가하(왕사성)에 머물고 계신 부처님을 초청하기 위해 사신단이 파견되었다.

 

부처님께서 바이살리에

첫 발을 딛는 순간

해가 쨍쨍하던 하늘에

천둥과 번개가 치더니

시원한 빗줄기가 쏟아지고

 

가뭄이 끝났음을 알려주는

반가운 단비에 백성들은

창문과 대문을 활짝 열고 나와

환호성을 지르며

눈물을 흘리는데

릿차위족 왕자들은

절세 미녀를 차지하기 위해

앞 다퉈 청혼을 한다 

 

바이살리로 향한 부처님과 제자들

라자가하에 도착한 바이살리의 사신단은 먼저 빔비사라 왕을 만나 부처님을 바이살리에 초청하는 것을 허락해달라고 간청하였다. 빔비사라 왕은 부처님께서 라자가하를 떠나는 것을 결코 원치 않으나 간절하게 도움을 청하는 사신단을 외면할 수도 없었다. 고민하던 그는 부처님께서 선택하실 문제라며 결정을 미뤘다. 이에 사신단은 직접 부처님을 찾아가 예배를 올리고 바이살리에 와 주실 것을 부탁드렸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라자가하를 떠나 다른 도시에 가기 위해서는 빔비사라 왕의 허락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다. 빔비사라 왕의 체면을 충분히 살려주면서도 바이살리의 재앙을 외면할 수 없다는 마음을 정중하게 전한 것이다. 부처님의 말씀을 전해들은 빔비사라 왕은 더 이상 결정을 미룰 수가 없었다.

마침내 빔비사라 왕의 허락이 떨어지자 부처님과 제자들은 채비를 마치고 사신단과 함께 바이살리로 향했다. 죽림정사에서 바이살리가 보이는 강가에 이르기까지는 닷새가 걸렸다. 빔비사라 왕은 직접 부처님과 500명의 스님들을 전송하였고 먹는 것과 잠자리가 불편하지 않도록 세심하게 준비를 하였다. 빔비사라의 배려 속에서 마침내 부처님은 제자들과 함께 바이살리가 보이는 강가에 이르렀다. 마가다 왕국의 영토인 강기슭에는 빔비사라 왕이 배웅을 위해 나와 있었고 바이살리의 영토인 강 건너 편에는 릿차위족 왕자들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빔비사라 왕과 마가다의 백성들, 릿차위족 왕자들과 바이살리의 백성들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강을 건너신 부처님께서 바이살리에 첫 발을 딛는 순간, 거짓말처럼 해가 쨍쨍하던 하늘에 천둥과 번개가 치더니 시원한 빗줄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길고 길었던 가뭄이 끝났음을 알려주는 반가운 단비를 만난 바이살리의 백성들은 창문과 대문을 활짝 열고 거리로 뛰어나와 환호성을 지르며 눈물을 흘렸다. 강 너머에서 그 기적 같은 광경을 지켜보던 빔비사라 왕과 마가다의 백성들은 부처님의 놀라운 위신력에 감탄하고 감동하여 예배를 올리며 고개를 숙였다.

바이살리에 생명을 불어넣어준 비는 무려 사흘 동안이나 계속해서 쏟아졌다. 말라붙었던 연못과 우물에는 맑은 물이 가득 채워졌고, 바닥을 드러냈던 작은 강줄기들마다 깨끗한 물이 경쾌한 소리를 내며 흘렀다. 거리를 메웠던 부패한 시체들과 각종 오물들은 빗줄기와 함께 강물에 떠내려갔고 흙먼지가 자욱하던 논밭에는 파란 새싹이 돋았다. 또한 부처님과 제자들이 머물 숲의 나무들도 그늘을 만들어줄 푸른 잎을 드리우기 시작했다.

사흘 후 비가 그치자 바이살리에는 싱그러운 생명의 기운이 감돌았다. 하지만 부처님께서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 동안 가뭄과 전염병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고 살기 위해 양심을 잃고 이기적으로 행동했던 사람들도 여전히 많았다. 이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진정으로 재앙을 극복했다고 할 수 없었다. 이에 부처님께서는 자신의 발우에 물을 가득 채운 뒤 이를 아난존자에게 주며 말씀하셨다.

 

복을 가져다주는 ‘보배경’ 탄생

“아난다야, 릿차위족 왕자들과 함께 이 발우에 담긴 깨끗한 물을 거리마다 뿌리며 내가 알려주는 경전을 외워 암송하도록 하라.”

부처님께서 아난존자에게 알려주신 경전은 불법승, 이 세 가지가 진정한 보배이며 이 불변의 진실로 말미암아 모든 존재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자비롭고 아름다운 내용의 <보배경>이었다. 아난존자는 일주일 동안 릿차위족 왕자들과 바이살리의 거리 구석구석을 함께 누비며 부처님의 말씀을 충실하게 실천하였다. 그러자 목마름이나 굶주림, 전염병으로 죽는 환자들이 사라졌고, 도시 전체를 에워쌌던 악취와 죽음의 그림자도 서서히 사라졌다. 또한 이기적인 행동을 했던 사람들은 경전을 듣자 저절로 반성의 마음이 생겨났고, 공포와 두려움에 질려있던 사람들의 마음에는 평온이 찾아왔다. 마침내 재앙이 모두 사라진 것이다.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놀라운 기적을 만들어냈던 이 사건을 계기로 바이살리의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에 감화되었으며 교단에 귀의를 하게 되었다. 그 중에는 자이나교의 충실한 신도였던 바이살리의 총사령관 시하 장군도 있었다. 또한 릿차위족 왕자들은 부처님에 대한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담아 사원을 새로 지어 교단에 기증하였다. 하지만 릿차위족 왕자들 외에도 부처님이 머무실 정원을 교단에 기증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 주인공은 바로 바이살리가 자랑하는 최고의 미녀, 암바팔리이다.

 

버려진 고아소녀, 절세미녀가 되고

암바팔리의 보시가 유명해진 것은 그녀의 신분이 왕족이나 귀족도 아니고, 평범하고 부유한 평민도 아니라 릿차위족 왕자들을 상대하는 고급 기녀였기 때문이다. 암바팔리는 태어나자마자 부모에게 버림을 받은 고아였다. 어느 날 망고나무 아래 버려진 갓난아기를 발견한 정원사는 아기를 집으로 데려왔다. 그리고 ‘망고나무’를 의미하는 ‘암바’라는 말을 붙여 아기에게 ‘암바팔리’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친 딸처럼 정성껏 길렀다. 덕분에 암바팔리는 한 점의 그늘도 없이 무럭무럭 자라났다.

사랑스러운 소녀에서 아름다운 처녀가 된 암바팔리의 미모는 활짝 피어난 꽃보다 화사하였고 바이살리 보다 눈이 부실 정도였다. 암바팔리의 매력은 비단 예쁜 얼굴만이 아니었다. 그녀의 말투는 나긋나긋하면서도 속삭이는 것 같았고, 노래를 부를 때면 청아한 목소리가 사람들을 매혹시켰다. 또한 가녀린 어깨와 요염한 허리를 움직여 춤을 추면 여자들조차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그러니 남자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절세미녀 암바팔리에 대한 소문은 망고나무 정원을 넘어 입에서 입으로 퍼져나갔고 릿차위족 왕자들에게까지 전해졌다.

 

왕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어느 날 릿차위족 왕자들은 암바팔리의 얼굴을 보기 위해 사이좋게 수레를 몰고 망고나무 정원에 도착하였다. 왕자들을 맞이한 정원사는 암바팔리를 불렀다. 인사를 올리는 암바팔리를 본 순간, 왕자들은 그녀의 상냥한 미소와 우아한 몸짓에 말을 잃었다. 미인을 만나볼 생각에 싱글벙글했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진 것은 오히려 왕자들이었다. 암바팔리를 만나자마자 왕자들의 마음속에는 오직 한 가지 생각밖에 없었다. 그것은 바로 반드시 그녀를 차지하고 싶다는 강력한 욕망이었다.

정신을 차린 왕자들은 앞 다투어 정원사에게 암바팔리를 자신의 아내로 줄 것을 청했다. 쟁쟁한 구혼자들로 돌변한 왕자들 앞에서 정원사는 쉽게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상대는 다른 사람도 아니고 바이살리를 다스리는 왕자들이었다. 어느 한 사람을 고른다면 다른 왕자들의 원한을 살 것이 분명하였다. 정원사가 대답을 망설이자 분위기는 점점 험악해졌다. 왕자들끼리 자신이야말로 암바팔리를 아내로 맞을 자격이 있다며 다투기 시작한 것이다. 고민에 빠진 정원사는 선택권을 암바팔리에게 주기로 했다.

“암바팔리야, 저분들은 바이살리를 다스리는 릿차위족 왕자들이다. 현명하고 지혜롭기로 소문난 릿차위족 왕자들의 화목이 오늘 나의 정원에서 산산조각 나게 될 줄은 몰랐다. 바이살리에서 최고의 남편감으로 손꼽히는 릿차위족 왕자들이 지금 너를 아내로 맞고자 하여 저렇게 큰 목소리로 사납게 다툼을 벌이고 있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기쁘고 뿌듯하지만 나는 차마 결정을 내릴 수가 없구나. 어느 한 사람을 선택하면 다른 왕자들의 원한을 사게 될 것이요, 너의 마음을 모른 채 선택을 한다면 앞으로 남은 많은 날 동안 네가 불행할 것이다.”

[불교신문3233호/2016년9월1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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