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양이의 법문

중현스님 지음/ 아름다운 인연

나는 꿀 묻은 숟가락에서

꿀이 흘러내리지 않을 때까지

한참동안 숟가락을 들고 있었다

기다림 끝에 꿀이 모두 흘러내리자

숟가락에는 꿀이 남지 않았다

그리고 생각한다

불공평한 세상을 사랑할 줄

아는 마음이 바로 인욕이란 걸

깨달음은 결코 특별한 곳에 있지 않다. 선사들은 길을 가다가 돌맹이 부딪치는 소리에, 물소리에 크게 깨우치기도 했다. 월간 <송광사> 편집장으로 활동하는 화순 용암사 주지 중현스님은 “평범한 일상에서 귀한 깨달음을 마주친다”며 일상에서 발견한 이야기들은 잔잔한 에세이로 담았다. <길고양이의 법문>이다.

“상처가 가렵다고 긁으면 상처는 더 깊어지기 마련이듯, 세월호는 마음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 이들의 상처를 무자비하게 후벼 팠다. 마음의 감옥에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쓰는 이들의 마음에 더욱더 무거운 빗장을 걸어 버린 것이다…왠지 입이 심심해서 꿀 한 숟가락을 작은 찻장에 덜어 먹었다. 그날은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꿀 묻은 숟가락에서 더 이상 꿀이 흘러내리지 않을 때까지 한참동안 숟가락을 들고 있었다.”

습관적으로 꿀을 뜨고 나면, 숟가락에 묻은 꿀이 아까워 입으로 가져간다. 그런데 스님은 그날따라 한참 동안 숟가락에서 꿀이 흘러내리는 것을 지켜만 봤다. 꿀이 모두 흘러내리고 나자 신기하게도 숟가락에는 거의 꿀이 남아 있지 않았다. 스님은 순간 ‘인욕은 이성적인 성찰과 자기통제를 거쳐 나온다’는 가르침을 떠 올린다. 그리고 생각한다. 불공평한 세상을 사랑할 줄 아는 마음이 바로 인욕이라는 것을. “인욕은 차가운 분노이자, 따뜻한 슬픔이다.”

중현스님이 이 책에서 소재로 삼은 것은 ‘환승역’ ‘율포 가는 길’ ‘게으른 자의 다구세트’ 등이다. 멀리 떨어진 소재가 아니라 누구나 몇 차례 겪는 일이다. 길고양이도 그런 소재의 하나다.

“길고양이들이 보고 싶다. 그들에게 어떤 기대도 믿음도 가지지 않건만 길고양이들이 그립다. 길고양이는 결코 내가 바라는 대로 행동하지도 않고, 내 품에 안기는 것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내 것이라는 허울뿐인 소유욕도 가질 수 없다. 어떤 기대도 바람도 없는 그 순수한 헌신과 봉사가 바로 사랑이다.”

스님은 자기 마음 내키는대로 찾아오기를 반복하는 길고양이를 보며 “지혜를 닦는 수행은 오로지 고독 속에 있을 때 가능하다”는 생각을 한다. 한발 나아가 순수한 사랑이란 누군가를 의식하거나 목적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집착이 사라진 자리라는 것을 깨닫는다.

한편 한편의 글을 통해 스님은 ‘나를 돌아보는 습관’을 가져보라고 권한다. 무의미하게 지나가는 시간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라는 가르침이다. 마음을 깊이 성찰할 때, 소소한 일상에서 나를 깨닫는 눈부신 여정이 펼쳐지지 않겠는가. 스님은 “인생이란 자신을 찾아 에둘러 돌아가는 멀고도 먼 여행길”이라며 “기나긴 사랑의 끝에서 자신을 만날 수 있다면 그것이 곧 행복”이라고 말한다.

중현스님은 고려대장경 전산화 작업에 프로그래머로 참여했다가 송광사에서 보성스님을 은사로 출가, 송광사 강원을 졸업했다. 현재 용암사 주지로 있으며, 월간 <송광사> 편집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불교신문3233호/2016년9월1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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