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총스님 한가위 특별 법문

혜총스님 

총본산성역화불사추진위원회

상임부위원장 겸 모연위원장

추석을 보름여 앞둔 지난 1일 서울 법안정사에서 열린 음력 8월 초하루법회에서 혜총스님은 추석의 의미를 일깨우고 “스스로가 부족함을 알아 하루하루 부처님의 가르침 속에서 깨어있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신재호 기자 air501@ibulgyo.com

 

어찌할 수 없는 일에도

태연함을 유지할 수 있는

내면의 힘 키우는 일이야말로

생활 속의 도(道)이자

깨어있는 삶입니다

조계종단에서 범종단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총본산성역화불사에 조계사를 비롯해 수많은 사찰에서 십시일반 동참하고 있습니다. 법안정사 불자님들도 많은 정성을 보태주었습니다.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추석이 얼마남지 않았습니다. 추석은 은혜라는 각별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것은 관계 지어진 모든 존재에 대한 은혜입니다. 칠월칠석이 살아있는 이와의 만남, 즉 인연의 의미를 떠올리는 날이라면 백중과 추석은 그 범위가 더 넓어져 죽은 이까지도 공덕을 함께 나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니 추석이 얼마나 소중한 명절인지 다시금 되새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洛陽城東桃李花

飛來飛去落誰家

洛陽女兒惜顔色

行逢落花長歎息

낙양성 동쪽에 핀 복사꽃 오얏꽃

바람에 흩날려 뉘 집에 떨어지는가

낙양 여자들 고운 얼굴 아까운지

만나는 여자마다 지는 꽃에 탄식하구나

 

今年落花顔色改

明年花開復誰在

已見松栢爲薪

更聞桑田變成海

올해 꽃이 떨어지면 얼굴빛 바뀌리니

명년에 꽃이 피면 누가 또 남아 있으리

송백 꺾여 땔나무 되는 것 보았고

뽕나무밭이 변해 푸른바다 된다 들었네

 

古人無復洛城東

今人還對落花風

年年歲歲花相似

歲歲年年人不同

낙양성 동쪽 옛사람 어디 가고

사람들은 여전히 꽃잎 지는 바람을 맞네

해마다 해마다 같은 꽃 피건마는

해마다 해마다 사람들은 같지가 않네 

이 시는 당나라 시인 유희이(劉希夷)가 백발의 늙은이를 대신해 슬픔을 노래한 ‘대비백두옹(代悲白頭翁)’이란 시입니다. 이 시에는 시인에 관한 슬픈 이야기가 전합니다.

이 시를 들은 저자의 외삼촌인 송지문(宋之問)이 시구 가운데 ‘연년세세화상사 세세연년인부동’의 구절을 보고 절창(絶唱)이라 탄복하며 자신에게 달라고 요구하자 유희이는 처음에는 허락하였다가 결국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화가 난 송지문이 하인을 시켜 흙주머니로 유희이를 압살하고 맙니다. 그때 유희이는 30세도 채 안되었다고 합니다.

이 시도 인생의 무상함을 노래하고 있지만 한 구절 시구 때문에 생을 하직한 시인의 삶에서도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게 됩니다. 무상의 가르침이란 몸도 마음도 내 것이 아님을 아는 일입니다. 이 시인이 불교의 가르침인 제행무상의 도리를 체득했다면 목숨을 버렸을까요? 또 시 한 구절 때문에 조카를 죽인 외삼촌도 일찍 부처님 법을 만났다면 악업을 짓지 않았을 것입니다.

‘나’라는 생각이나 ‘내 것’이라는 생각은 반드시 고통을 가져오는데도, 변화하는 것들을 자신의 것으로 잡아두려고 애쓰는 모습이 정말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강 건너 불구경’처럼 재미있는 일은 없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강 건너 불’은 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내가 그렇게 집착하는 것들도 모두 무상한 것으로 본래 내 것이 아님을 확실히 안다면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고 우리의 인생이 보다 편하고 재미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어느 해보다 맹렬하던 무더위도 어느새 아침저녁으로 부는 솔바람이 소매 끝을 스치면서 저만치 물러가니 가을입니다. 형형색색으로 여름철 산하를 수놓았던 꽃들이 지고 어느 틈엔가 국화가 주인공이 되어 계절을 뽐내고 있습니다. 이렇게 한 해가 감을 느낄 때 문득 세월의 무상함 속에 잠시나마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올해를 시작하면서 금년만은 뜻 깊고 보람된 한 해를 보내리라 다짐하면서 찬란한 계획을 세우고 희망과 포부를 앞세우며 출발했는데…. 불자님들께서는 연초 계획했던 인생 농사에 어느 정도나 만족하고 계시는지요? 만일 연초에 계획했던 일들이 마음먹은대로 제대로 진행되지 않아 괴로워하고 있다면 지금이라도 괴로움이 반복되지 않도록 처음 마음으로 다시 시작할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이미 지나간 과거에 매달려 후회하는 건 우리 인생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주자가 지은 권학문에 보면 이런 시가 있습니다.

少年易老學難成

一寸光陰不可輕

未覺池塘春草夢

階前悟葉已秋聲

소년은 늙기 쉽고 학문은 이루기 어려우니

순간의 세월을 헛되이 보내지 마라.

연못가 봄풀은 아직 꿈에서 깨지도 않았는데

섬돌 앞 오동잎은 이미 가을소리를 내는구나 

배움에도 때가 있으니 젊은 시절 부지런히 공부에 힘쓰라는 뜻을 담고 있지만 세상 사람들이 새겨두어야 할 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세월의 무상함은 계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육신에도 어김없이 적용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아시다시피 원효스님은 <발심수행장>에서 “이 몸은 반드시 끝마침이 있는데 다음 생은 어찌 할꼬. 급하고 급하지 아니한가?” 하면서 우리들이 깨어나기를 간절히 발원하셨습니다.

불교의 핵심은 지금 이 순간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지난 과거나 오지 않은 헛된 미래를 그리지 말고, 처음 마음먹었던 순간을 잊지 않고 처음 그대로 이어가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지금 이 순간이 바로 처음 마음먹었던 때와 같도록 유지할 수 있으면 그 사람은 성공할 수밖에 없습니다.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時便正覺), 처음 마음이 그대로 깨달음의 순간이니 세월을 탓하지 말고 순간순간을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부디 발보리심(發菩提心)하실 것을 권합니다.

현재 깨어있는 마음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삶과 만나는 일입니다. 어찌할 수 없는 일에도 태연함을 유지할 수 있는 내면의 힘을 키우는 일이야말로 생활 속의 도요, 깨어있는 삶입니다.

우리는 빗자루로 마당을 쓸면서 짧은 구절 하나 외우려고 많은 세월을 애쓴 주리반특가의 감동적인 수행이야기를 알고 있습니다. 스스로가 부족함을 알아 하루하루 부처님의 가르침 속에서 깨어있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일확천금이나 행운에 목매지 말고 하루하루 순간순간마다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바로 수행입니다.

가을이 가고나면 또 겨울이 오고, 또 새해가 옵니다. 계절이 끝없이 가고 오듯이 우리의 삶도 죽음이 없습니다. 죽음이 없는 무상의 도리를 알아야 합니다. 부모님이나 선망조상님들께서 우리들에게 내린 가장 큰 가르침도 바로 죽음이 없는 무상의 도리가 아닌가 합니다.

<사십이장경>에 보면 “무릇 사람들이 천지의 귀신을 섬길지라도, 그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고 했고, <유행경>에는 “아난다여, 조상을 공경하고 제사 모시기를 소홀하지 않는다면 영원히 번영할지언정, 결코 쇠망하는 일이 없으리라”고 했습니다.

지난 여름 무더위 아래 지극정성으로 기도에 동참하신 사부대중 모두의 선망조상 천도공덕이 참으로 크다 하겠습니다. 추석 한가위에도 조상을 잘 모셔서 그 공덕으로 현재의 부모와 7대의 조상과 6종의 권속들이 모두 삼악도의 고통에서 해탈하고 동참재자 소구소원을 모두 성취하시고 가정마다 행복이 가득하시길 축원드립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불교신문3232호/2016년9월1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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