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이 머무신 8개 도시 <30> - 왐사국의 수도, 코삼비⑥

부처님이 떠나신 것을 알게 된

코삼비 신도들은 계속하여

분쟁을 일삼은 스님들에게

크게 분노

 

그날 이후 스님들을 만나도

합장을 하지도 않고

공양을 올리는 것도

법문을 청하는 것도

모두 거부하고

분열을 주도하던 스님들은

사람들의 싸늘한

시선과 태도에 당황

마침내 목소리가 잦아들고…

코삼비에서 안거를 지내는 동안 한 스님의 사소한 실수에서 비롯된 승가의 분열은 점점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분열을 일으킨 스님들은 자신들만이 옳다는 논리에만 빠져 몸싸움까지 하였다. 그 모습을 지켜본 신도들은 실망하였고, 중립적인 입장의 많은 스님들은 부끄러움에 고개를 숙였다. 이에 부처님께서는 두 번이나 법문을 설하며 중재를 위해 노력하셨으나 분열을 일으킨 스님들은 이조차 거부한 채 자신들이 알아서 해결하겠노라며 큰 소리를 쳤다. 이에 부처님께서는 마지막으로 브라흐마닷따 왕과 디가부 왕자의 비유를 들어 법문을 설하셨다.

원한은 원한으로 쉬어지지 않아

카시 왕국의 브라흐마닷따 왕은 코살라국을 정복하였다. 코살라의 왕과 왕비는 걸인으로 변장을 한 뒤 바라나시의 옹기장이 집으로 도망을 쳐서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였다. 얼마 후 코살라 왕비는 아들을 출산하였는데 그가 바로 ‘디가부’였다. 부부는 어떻게 하면 아들 디가부를 잘 지킬 수 있을지 고민한 끝에 나이가 차자 그를 바라나시 성 밖으로 나가 살도록 하였다. 행여 자신들이 발각된다 하더라도 브라흐마닷따 왕이 디가부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면 무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코살라 왕과 왕비의 생각은 옳았다. 이들은 결국 브라흐마닷따 왕의 심복에게 정체를 들켰고 공개적으로 사지가 잘리는 처형을 당하게 되었다. 밧줄에 묶여 끌려 다니고 있는 부모님의 모습을 목격한 디가부는 생각할 틈도 없이 달려갔다. 그때 아들을 발견한 코살라 왕은 고개를 저으며 천천히 말했다.

“사랑하는 디가부야, 길게도 짧게도 보지 말거라. 사랑하는 디가부야, 원한은 원한으로 쉬어지지 않는다. 사랑하는 디가부야, 원한은 원한을 여읨으로써 쉬어진다.”

형을 집행하던 병사들은 코살라 왕이 갑자기 이렇게 말하자 그가 고통과 공포 때문에 헛소리를 한다고 생각하였고 지체 없이 칼을 휘둘러 코살라 왕과 왕비를 처형하였다. 그리고 사지를 잘라 사방으로 던져버렸다. 디가부는 소리 없이 통곡하며 부모님의 마지막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았고, 아버지의 유언을 한 마디도 빠짐없이 가슴에 새겼다.

그날 밤, 디가부는 좋은 술을 넉넉하게 마련하여 형장을 지키는 병사들에게 나눠주었다. 병사들은 상냥한 얼굴로 다가오는 디가부의 친절을 마다하지 않았고 얼마 후 모두 술에 취해 쓰러졌다. 병사들이 모두 쓰러진 것을 확인한 디가부는 사방으로 흩어진 부모님의 시신을 가지런히 수습하였다. 그리고 부모님의 시신을 올려놓은 장작더미 주위를 세 번 돌고 난 후 불을 붙여 화장을 하였다.

 

진정한 용서와 화해가 평화 첩경

조촐하게 장례를 치른 디가부는 바로 다음 날, 바라나시 왕궁의 코끼리 사육사를 찾아가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얼마 후 디가부는 코끼리를 능숙하게 다루게 되었고 사육사는 이내 그에게 코끼리 우리를 관리하는 일을 맡겼다. 코끼리 관리인이 된 디가부는 왕궁 출입이 자유로워졌다. 그러자 그는 매일 아침 일찍 코끼리 우리 앞에서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를 불렀다. 아침마다 왕궁에 울려 퍼지는 디가부의 아름다운 연주와 노래는 코끼리 뿐 아니라 브라흐마닷따 왕의 귀에도 들어가게 되었다.

디가부를 본 브라흐마닷따 왕은 그의 연주와 목소리 그리고 총명함에 매료되어 자신의 시종으로 삼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디가부는 브라흐마닷따 왕이 가장 신임하는 시종이 되었다. 어느 날 브라흐마닷따 왕이 신하들과 함께 사냥에 나서자 왕의 곁에서 수레를 몰던 디가부는 일부러 멀리 떨어진 한적한 숲으로 향했다. 숲에 도착하자 피로를 느낀 브라흐마닷따 왕은 디가부의 무릎을 베고 곤히 잠이 들었다. 아무 의심 없이 단잠에 빠진 브라흐마닷따 왕의 얼굴을 보자 디가부의 마음 깊은 곳에 있던 원한이 솟구쳤다. 부모님의 처참한 죽음이 눈앞에 떠오르는 것 같았다. 디가부는 허리에 차고 있던 칼을 뽑아들었다. 부모님의 원수를 갚기에 지금보다 더 적절한 기회는 없어 보였다. 그 순간, 디가부의 머릿속에 아버지의 유언이 떠올랐다.

디가부는 아버지의 유언을 되새기며 세 번이나 칼을 뽑았다 내려놓기를 반복하였다. 바로 그 때 브라흐마닷따 왕이 가위에 눌린 사람처럼 식은땀을 흘리며 일어났다.

“어찌하여 그리 놀라고 두려운 얼굴을 하십니까?”

디가부가 묻자 브라흐마닷따 왕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방금 꿈속에서 코살라 왕의 아들이 나를 죽이려고 하였다. 나는 두려움에 깜짝 놀라 몸을 떨며 잠에서 깨어났다.”

브라흐마닷따 왕의 이야기를 들은 디가부는 자신이 코살라 왕의 아들이며 조금 전 그를 세 번이나 죽이려 했던 것을 고백하였다. 브라흐마닷따 왕은 경악하며 디가부에게 살려달라고 애원하였다. 그러자 디가부는 오히려 브라흐마닷따 왕에게 자신을 살려줄 것을 청했다. 두 사람은 서로의 목숨을 살려주기로 약조를 한 후 왕궁으로 돌아왔다. 궁으로 돌아온 브라흐마닷따 왕은 신하들 앞에서 디가부가 코살라 왕의 아들이자 생명의 은인임을 밝힌 뒤 더 이상 피를 흘리는 보복은 없을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브라흐마닷따 왕은 문득 코살라 왕이 죽기 전 남겼다는 유언에 대하여 궁금한 마음이 들었다. 그는 디가부를 불러 코살라 왕이 남긴 유언이 어떤 의미인지를 물었다. 그러자 디가부가 말했다.

“아버님께서는 원한은 원한을 여읨으로써 쉬어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대왕께서 저의 부모님을 죽였다고 하여 제가 지금 이 자리에서 대왕의 목숨을 빼앗는다면 대왕을 따르는 사람들이 또 저를 죽이고자 할 것입니다. 또한 제가 그들에게 목숨을 잃는다면 저를 아끼는 사람들이 대왕의 사람들을 죽이고자 할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대왕께서 저의 목숨을 살려주시고, 제가 대왕의 목숨을 살려드림으로써 원한을 여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디가부의 이야기를 들은 브라흐마닷따 왕은 그의 자비와 지혜에 감동하여 코살라 국을 돌려주고 그를 자신의 사위로 삼았다. 디가부가 원한을 원한으로 갚지 않음으로써 카시 왕국와 코살라 왕국은 평화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부처님은 코삼비를 떠나 홀로 안거

원한을 내려놓은 디가부 왕자의 이야기를 마친 부처님은 마지막으로 분쟁 중인 스님들에게 인내와 자비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설한 뒤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하지만 분쟁 중인 스님들은 조금도 반성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조용히 아무도 모르게 홀로 사원을 떠나 안락하고 평화로운 숲을 찾아가셨다. 그 숲에는 무리를 떠나 혼자 지내고 있는 코끼리 왕과 원숭이가 있었다. 코삼비를 떠난 부처님은 그곳에서 남은 안거를 보내셨다.

부처님이 안거를 지내시는 동안 원숭이는 날마다 과일과 열매를 따서 공양을 올렸고, 코끼리 왕은 부처님이 머무시는 자리의 잡초들을 제거하고 날마다 부처님이 드실 물과 발을 씻을 물을 올렸다. 코삼비의 사원에서 스님들이 쓸데없는 논쟁과 언쟁으로 교단을 분열시키는 동안 부처님은 홀로 원숭이와 코끼리 왕의 공양을 받으며 평온하게 안거를 마치셨다. 이윽고 안거를 끝낸 부처님은 코삼비가 아닌 스라바스티의 기원정사로 향하셨다.

한편 부처님이 떠나신 것을 알게 된 코삼비의 신도들은 계속하여 분쟁을 일삼은 스님들에게 크게 분노하였다. 그 날 이후 신도들은 스님들을 보아도 합장을 하지 않았고 공양을 올리는 것과 법문을 청하는 것을 모두 거부하였다. 분열을 주도하던 스님들은 사람들의 싸늘한 시선과 태도에 당황하였고 마침내 목소리가 잦아들고 행동이 조심스러워졌다. 냉정한 분위기에 위축된 스님들은 더 이상 코삼비에 머물 수가 없었다. 서로를 공격하던 스님들은 한 자리에 모여 한 마음 한 뜻으로 기원정사에 계신 부처님께 가서 논쟁이 끝났음을 말씀드리기로 의견을 모았다.

분열을 주도한 스님들이 기원정사에 도착하자 모든 스님들과 신도들의 시선이 그들을 향했다. 사람들의 시선은 담담하고 고요했으나 견디기 힘들 정도로 따가웠다. 스님들은 고개를 떨군 채 떨어진 자리에 앉았다. 이윽고 부처님께서 설법을 마치시자 분열을 주도한 스님들은 부처님 앞에 엎드려 자신들의 허물을 인정하고 참회하며 진심으로 반성하였다. 스님들의 철저한 참회와 함께 분열되었던 승가는 다시 화합으로 마무리 될 수 있었다. 이는 코삼비 신도들이 지혜로운 냉정함으로 스님들을 향해 따끔한 일침을 놓은 결과이기도 했다.

[불교신문3229호/2016년8월3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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