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가 되어 하루를 보낸다 /물이 꿈을 꾸고 /물이 예감한다 /물속에서 /나의 식이요법은 날로 발전한다 /물과 공기를 구분하지 않고 /사물과 사건을 나누지 않는다.” (이장욱 시인, <물고기 연습> 중에서)

마음은 원래부터 사람에게 있는 본능일까. 일부러 지어 가지는 것일까. 마음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모르는 이국을 떠올리는 것처럼 뿌옇고 흐리다. 헤르타 뮐러의 소설 제목 <마음짐승>처럼 사람의 마음이란 길들여지지 않은 짐승처럼 불확실하며 두렵고 혼란하다. 시를 쓰면 쓸수록, 언어와 정서들을 파헤칠수록 더욱 어려워지는 것이 사람의 마음인 듯하다.

게다가 마음은 활물(活物)이라 계속해서 움직이고 변화한다. 하나의 형태와 고정된 형식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과 맥락에 따라 계속해서 달라지는 것이 감정이고 마음이다. 그렇기에 비슷한 범주의 마음일지라도 어떤 맥락 속에 놓이느냐에 따라, 몇 만 가지의 새로운 감정들이 생겨나게 된다. 같은 기쁨이라도 시험성적이 오른 기쁨과 친구에게 뜻밖의 선물을 받은 기쁨은 다르다. 같은 슬픔이라도 넘어져서 다친 후 느끼는 슬픔이 다르고, 아끼는 반려동물이 아플 때 느끼는 슬픔이 다르다.

글을 쓰는 고등학생들을 가르치며 그들과 이야기하는 시간이 많은데, 요즘 학생들의 감정 표현방식은 보다 간접적이고 은근하며 유니크한 부분이 있다. 특히 SNS에서 더욱 그렇다. 트위터에는 ‘대성통곡 봇’이 있다. 이 계정은 계속해서 우는 소리와 눈물 흘리는 이모티콘이 올라오는 계정이다. 슬프거나 짜증나는 일이 있을 때, SNS 유저들은 자신의 계정에 이 대성통곡 봇을 리트윗(공유)함으로서 자신의 슬픔이나 짜증을 표현한다. 이것은 원 감정에서 몇 단계를 돌아가는 간접적인 표현방식이다. 그냥 감정을 곧이곧대로 표현하면 될텐데 왜 이런 복잡한 방식을 택하는 것일까, 의아하기도 했다. 그러나 왜냐고 물어볼 필요도, 나쁘다고 배척할 필요도 없다. 그 형식이 지금 이 시대의 표현 방법인 것뿐이다.

감정과 언어는 절대적이거나 영원한 것이 아니라 시대와 맥락에 따라 다른 모습을 지니는 생물이다. 그래서 감정과 마음은 계속해서 새로 익혀야 하는 무엇이다. ‘물고기 연습’을 하는 마음이 그러할까. 물고기처럼 자신의 것이 아닌 감정들과 마음들을 알아가고 연습하여 이해하는 것. 그것은 감정과 마음의 스펙트럼을 더욱 넓혀가는 일이 될 것이다.

[불교신문3229호/2016년8월3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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