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담순호선사 평전

방남수 임병화 지음/ 화남

 

일제강점기 왜색불교에 맞서

한국불교 청정가풍 복원한

정화불사로 종단기틀 다져

 

초인적 수행과 자비 실천한

‘인욕보살’로 불렸던 청담스님

해방 이후, 불교의 터를 닦은 분으로 청담스님을 빼놓고는 역사가 기록되지 않는다. 청담스님은 일제강점기로 인해 민중들의 마음과 불교가 피폐된 상황에서 “한국불교를 다시 일으켜 세워 대중의 길잡이로, 버팀목이 되어야 한다”며 정화운동을 펼쳤다.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에서 청담스님의 마음사상과 선사상 세계를 연구해 온 방남수, 임병화 씨가 청담스님 평전을 펴냈다.

정화를 일단락한 청담스님(오른쪽)이 조계종 총무원장에 선출된 뒤 취임사를 하고 있는 모습. 청담스님은 근대 불교의 기틀을 다진 행정가이면서 포교와 수행을 한시도 소홀히 하지 않은 인욕보살로 불린다.

 

“위대한 사람의 발자취는 세상과 따로 가지 않는다. 그들은 언제나 아프고 어려운 사람들 곁을 찾아가고, 아직 답이 없는 문제에 답을 찾으며, 막힌 곳에 길을 내어 세상을 이끈다. 그래서 위대한 인물의 삶을 들여다보면 우리는 그곳에서 역사와 시대정신을 찾을 수 있다.”

방남수 씨는 현재 평택 청담고등학교 교장으로 있다. 임병화 씨는 불교신문 편집국장을 역임하고, 현재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들은 “역사의 굴곡에서 세상과 사람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일을 나서서 해내는 사람, 그런 이들을 우리는 위인이나 어른이라고 부르며 존경하고 기억한다”며 “조계종의 터전을 닦은 청담스님은 불교계 뿐 아니라 혼란기 우리 사회를 이끈 어른”이라고 평가한다.

평전은 청담스님이 1902년 경남 진주에서 출생한 때부터 삶의 여정을 따라간다. 젊은 시절, 불법에 뜻을 두고 일본에서 공부를 하며 출가했지만, 출가 이후 청담스님의 눈에 비친 불교는 “민중을 이끌고 보듬을 역량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였다. 많은 승려들이 부인과 자식을 두고 재물을 모으며 술과 고기를 먹는 등 계율을 지키지 않는 대처승(帶妻僧)이었다. 역사와 전통을 가진 큰 사찰들도 일제의 탄압으로 쇠락하거나 대처승들의 손에 들어가 있었다.

청담스님은 어려운 현실 속에서 불교가 제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승려부터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부처님께서 설한 그대로 계율을 지키고, 참선과 수행으로 몸과 마음을 닦으며 깨달음을 얻어야만 중생들에게도 바른 길을 알려줄 수 있다고 여겼다.

이런 폐단을 지켜봐야 했던 청담스님은 해방 이후 불교정화 운동에 뛰어든다. <청담순호선사 평전>은 당시의 기록, 청담스님의 후학들을 비롯해 함께 활동한 수많은 이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그 모든 과정을 생생하게 되살려내고 있다.

하지만 청담스님의 면모를 정화운동에만 집중해서는 큰 어른의 바른 면모를 보지 못한다. 무장한 북한군을 설법으로 물러가게 했던 일화, 꼿꼿한 성정이면서도 화를 내는 법이 없어 인욕(忍辱)보살로 불렸던 풍모도 제자들의 술회를 통해 되살아난다. 사회 지도자들과 함께 1080배 절을 올리면서 그들을 감화시킨 일화도 스님의 면모다. 또한 만공스님에게 이어진 선맥을 유지하며 끊임없이 정진한 선사이기도 하다. 임병화 씨는 “청담 대종사에 관해 가능한 모든 것을 사실을 통해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때로 제자들이 보기에는 좀 서운한 부분도 있겠지만 사실을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한다.

청담스님에 대한 기록은 또한 근대기 한국불교의 역사이기도 하다. 한국불교의 정화, 봉암사 결사, 봉은사 땅 문제 등 군부정권의 탄압으로 제대로 알려지지 못했던 근현대사 속 진실 역시 실증과 함께 기록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청담스님의 모습은 ‘수행자’였다는 점이다. 행정에 워낙 밝아 많은 일을 하다보니 자칫 이 부분을 소홀히 여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스님은 누구보다 계행에 철저한 수행자였다. 법천스님은 청담스님에 대해 이렇게 회고했다.

“지방출장을 가게 돼 어쩌다 여관에서 주무시게 되는 경우에도 예불시간이 되면 108참회를 하셨어요. 스님은 새벽 4시 정확하게 일어나 가사 장삼을 수하시고, 몸에 지니고 다니는 회중시계에 딸려 있는 나침반으로 도선사 석불전 방향을 파악한 다음 108참회를 하셨지요. 그리고 불공을 드리는 신도는 물론, 무엇이든 발원을 하고 싶은 신도들에게는 3000배로 불공기도를 하도록 포교를 하셨습니다.”

청담스님은 경전 간행과 포교·교육사업, 복지사업과 불교신문 설립 등 수많은 분야에서 비전을 세우고 시스템을 구축했다. 입적하는 때까지 하루 8~9회에 이르는 대학 강연과 포교활동에 소홀히 한 적이 없는 스님이다. 저자들은 “청담스님의 삶은 우리에게 바른 삶이 무엇이며,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 표상을 제시한다”고 말한다.

방남수 씨는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에서 시(詩)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에서 불교문예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시집으로 <보탕>이 있다. 임병화 씨는 동국대에서 선학을 전공하고,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에서 불교문예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한국평화문학 시 부문 신인상으로 등단해 문단활동을 하고 있다.

[불교신문3229호/2016년8월3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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