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함께 배 타고 극락으로”

반야용선도. 사진출처=국립중앙박물관(www.museum.go.kr)

 

예나 지금이나 죽음은 두렵고 생소한 단어다. 정토사상이 유행하고 아미타불을 찾는 사람이 많았다는 것은 이에 대한 반증이다. <불설아미타경>에서 부처님께서는 “아미타불에 대한 설법을 듣고 일주일 동안 아미타불을 마음에 굳게 지니면 임종할 때에 아미타불이 여러 성중(聖衆)과 함께 그 앞에 나타나며 극락국토에 왕생할 것”이라고 설했다. 깨달음에 이르는 길이 어려웠던 장삼이사들에게는 반가운 법문이 아닐 수 없다. 내영도와 반야용선도는 아미타삼존불이 왕생자를 맞이한다는 <아미타경>의 내용을 그림으로 그린 것이다.

반야용선도는 선두에 용이 있는 배를 타고 많은 사람들이 극락으로 가는 모습을 표현한 불화다.<사진> 배 안에는 비구, 비구니 스님과 거사 등 재가신자와 동자가 타고 있고, 배 위에는 인로왕보살을 위시로 아미타부처님과 관음, 대세지, 지장보살 등이 보인다. 원광대 김지연 씨의 ‘조선후기 반야용선도 연구’에 따르면 “반야용선도는 고려시대 후기에 나타나 조선시대에 크게 성행했는데 이 무렵 나타난 새로운 도상”으로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한 명부신앙이 체계화되면서 반야용선도에 지장보살이 등장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전에는 반야용선이라는 명칭이 나타나진 않지만, 반야선(般若船)에 대한 구절을 확인할 수 있다. <법원주림> 제7권 ‘계욱부’에서는 염라대왕이 늙고 죽음과 병듦은 목격하면서도 육도윤회를 벗어나겠다는 생각조차 없이 선업을 쌓지 않은 중생을 꾸짖는다. 방일하게 산 이들을 지옥으로 보낸 뒤 염라대왕은 “진실에 돌아가서 모든 현상 관찰하고/ 비로소 허망한 통발임을 알았나니/ 괴로움의 바다가 깊으니 어디로 가야 하나/ 반야의 배에 오를 것을 생각하네”라는 게송을 읊었다. 또 강경원 홍익대 강사의 ‘조선 전기 불교회화에 보이는 ‘접인용선(接引龍船) 도상의 연원’을 참조하면 <인왕반야다라니석(仁王般若陀羅尼釋)>에서도 “반야선을 타고 많은 중생을 실어 무주열반의 언덕에 이른다”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아미타불과 보살이 인도하는 배를 타고 극락으로 향하는 그림은 언제부터 나타나기 시작했을까. 김지연 씨는 앞의 논문에서 “용선의 초기적 표현은 중국 쓰촨성 대족석굴 제245호굴 감실 ‘관무량수경변상’에서 확인할 수 있다”며 당말 중국의 영향을 받았다고 추정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후기인 1294년 제작돼 현재 일본 교토 묘만지(妙滿寺) 소장 <미륵하생경변상도>에서 반야용선이 등장했고, 15세기경에 제작된 일본 호린지(法輪寺) 소장 ‘관경십육관병상도’가 대표적이다. 조선후기에 들어서는 불화와 벽화로도 남아 있는데 보물 제1857호 은해사 염불왕생첩경도를 비롯해 경주 기림사, 완주 위봉사, 여수 흥국사, 제천 신륵사 등에 전해진다. 반야용선도가 그려진 배경으로는 조선후기 염불계가 성행하는 등 염불수행의 대중화를 꼽을 수 있다. 아미타불과 권속의 영접을 받고자 지극한 마음으로 수행하고 계를 지키겠다는 원력이 불화로 표현된 것이다.

[불교신문3229호/2016년8월3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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