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함과 막막함이 선지식 찾게 만들어

화두가 타파되면 소나기 내린 뒤

먹구름 걷히고 하늘이 드러나듯

확연한 것이 시원하고 통쾌하다

깨달음은 언어의 길이 끊어지고 마음가는 곳이 소멸할 때 발생하므로, 깨달음에 대한 그 어떠한 논의도 실제로 깨닫게 해주지는 않는다. 어설픈 알음알이보다는 차라리 꽉 막혀서, 깨달음이 무엇인지 전혀 알 수 없는 것이 귀한 일이다. 옛 조사도 “모른다는 말이 가장 친절한 말이다”고 했다. 이때 혼자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답답함과 막막함이 선지식을 찾게 만들고, 선지식의 지도하에 활구 의심을 지어가서 종래에는 의단을 타파하고 돈오하는 시절인연을 맞게 되는 것이다.

막상 화두를 들고 일념만년 하다보면, 엄청난 방해가 일어날 수가 있다. 이런저런 경계 현상들은 모두 자기 업식이 스스로 지어낸 것이지만, 정작 본인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끄달려 가기 쉽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어떤 방해가 일어날지라도, 화두를 놓치면 안 된다는 사실이다. 간화선의 생명은 오로지 화두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화두가 성성(惺惺)하면, 잠도 사라지고 산란심도 끊어진다.

화두를 참구하는 것은 마치 여울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과 같다. 마음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마(魔)는 강하고 법은 약해서, 어떤 기운이 자꾸 앞을 가로막고 방해하는 역경계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화두를 참구할 때라면 천군만마 속을 단기필마로 죽기살기로 돌파하듯이 최선을 다해 싸울 수밖에 없다. 한편 맑고 고요해서 화두가 잘 들릴 때라도, 문득 일어나는 경계에 끄달리면 자칫 화두를 놓칠 수가 있다. 그리고 앉아서 자주 존다거나 고요함에 머물게 되면, 무기(無記)에 떨어지기 쉽다.

따라서 오히려 공부가 잘된다고 생각될 때, 더욱 조심해서 화두를 잡드려야 한다. 공부중에 일어나는 모든 병통은 화두에 집중하지 않는데서 오는 것이다. 간절하게 화두에 집중하는 것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는 유일한 길이다.

시절인연이 오면 순간적으로 의단을 타파하게 될 것이다. 마른하늘에 벼락 치듯, 매미 허물 벗듯, 무거운 짐을 내려놓듯, 홀연히 ‘댓돌 맞듯 맷돌 맞듯(築著著)’ 의단을 타파하게 될 것이다. 그 통쾌함은 직접 맛본 사람만이 안다. 큰일을 마치고 난 뒤에는 이 일단의 일을 알 수 없어 그렇게 갑갑하던 마음이 순식간에 텅 비게 된다. 온 몸과 마음이 새의 깃털보다 가볍고 앞뒤가 탁 끊어져 툭 터진 것이 탕탕 무애하니 끝 간 데가 없이 시원하다.

화두가 타파되면, 마치 소나기가 내린 뒤 먹구름이 걷히고 하늘이 몽땅 드러나듯 확연한 것이 시원하고 통쾌하다. 마치 꿈속에서 깨어난 듯 분명해진다. 그동안 알 수 없었던 공부상의 인연들이 드러나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대승불교의 꽃인 돈오를 맛보고, 불속에서 연꽃이 피는 화중생련(火中生蓮)의 도리를 온몸으로 체득한 것이다.

이런 체험을 하게 되었을 때는 곧바로 선지식을 찾아가서 점검을 받고 그 뒤의 일을 물어야 한다. 그리고 공부한 것까지도 내려놓고, 흐름에 맡겨 세월을 잘 보내야 한다. 선지식의 곁을 떠나지 않고 법 쓰는 법을 보고 배우며, 늘 부끄러움을 아는 수행자로서 남은 습기를 다스리다보면 보살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불교신문3228호/2016년8월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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