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백운암 상도선원장 미산스님

“스무살도 못 넘길 팔자” 아이

‘소년수좌’로 참선정진 몰두

노스님 죽음, 폐결핵 등으로

직ㆍ간법 생사 경계 넘나들다

 

수행을 진짜 잘하기 위한

이론과 실제 정리 필요성 절감

英옥스퍼드대 美하버드대 등

기나긴 여정 끝에

‘하트스마일 명상’ 개발 보급

 

‘하트스마일 33배’로 시작

수용 · 감사 명상, 따기온스

소리명상, 미소의 사회화 등

간편한 5단계 수행으로 이뤄져

 

“평소 불필요한 잡념 많고

대인관계로 고통받는 이에게

추천할만한 돌파구…”

지난 7월17일 상도선원에서 만난 미산스님. 스님은 “불교의 근본정신은 자비”라며 “자비를 일상에서 발현할 수 있는 방법이 하트스마일명상”이라고 역설했다.

무당은 모질었다. “아들이 스무 살도 못 넘기고 죽을 팔자”라는 말에 어머니의 얼굴은 파랗게 질렸다. 전주가 고향이었던 아이는 할머니의 손을 잡고 절에 자주 갔다. ‘옴마니반메훔’도 외고 참선도 흉내내며 자랐다. 그녀는 부처님이 자식의 운명을 바꿔줄 수 있으리라 믿었다. 초등학교를 갓 졸업한 금지옥엽을 절에 맡겼다. 고불총림 백양사. 1968년 어느 봄날 아버지 친구를 따라나섰다. 자신의 운명을 모르는 아들은 그래서 즐거웠다. 그러나 막상 절 입구의 무섭게 생긴 사천왕상을 보자 그만 울음을 터뜨렸다. 울음 속으로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폭풍의 몸통으로 파고들었다. 지금도 기억의 원형질에는 외로움이 도사리고 있다.

또래의 동자승들과 함께 새벽예불을 하고 공양간 일을 돕던 어느 날이었다. 어른 스님의 심부름으로 주지 스님 처소에 갔다. 평소 위암을 앓고 있던 스님은 반듯하게 누워있었다. 방 안의 적막과 스님의 몸에서 스며나오는 한기에, 아이의 몸도 얼어붙었다. 눈앞에서 죽음을 목격한 것이다. 가까스로 되돌아 나와 대중에게 부음을 알리고 지대방으로 숨어들었다. ‘스무 살도 안 되어 내게 닥친다는 죽음이 바로 저런 것이었구나!’ 특별하게 지독했던 사춘기를 앓던 소년에게 한 스님이 다가왔다. “생사문제를 해결하는 게 참선이지.” 그 스님은 서울대 농대 출신이었는데 주로 선방만 다녔다. 그렇게 백양사를 나와 처음 찾아간 선방이 문경 김용사였다. 이후 소년은 전국 방방곡곡 수행처를 돌아다니는 어린 수좌가 됐다.

한참 정진을 하고 있는데, 큰절에서 ‘편지가 한 뭉치 와있으니 가져가라’는 기별이 왔다. 선생님과 친구들의 요구는 같았다. “모두가 너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초등학교 중학교 내내 전교 1등을 한 번도 놓치지 않은 아이였다. 그러나 어린 나이에 눈앞에서 겪은 죽음의 경험은, 살아서의 모든 경험을 우습게 만들었다. 세간의 공부가 아닌 출세간의 공부에 더욱 몰입하던 중 조계종 종정을 지낸 서암스님을 만났다. 당신은 “수행을 잘 하려면 먼저 겸손해져야 한다”며 공양주 소임을 맡겼다. 하루는 밥 지을 불씨를 살리려고 아궁이에 연방 입김을 불어넣는데 서암스님이 와서 옆구리를 푹 찔렀다. “화두 들고 있지?” ‘분명 매순간 무엇을 하든 간에 보고 듣고 숨 쉬는 자가 있는데, 이것이 과연 무엇일까?’ 문틈 사이로 죽음의 진실이 조금씩 자취를 드러내던 시절이다.

문경 원적암을 떠나 봉암사로 왔다. 여느 때처럼 공양주 일을 하면서 참선을 했다. 하루 14시간 가행정진을 하는 사찰이 있다는 소식에 내쳐 조계총림 송광사로 달렸다. 방장이었던 구산스님은 나이를 걸고 넘어졌다. “너는 너무 어려서 가행정진은 어렵다. 좀 더 크면 다시 오거라.” “큰스님, 생사일대사가 급합니다!” “그놈 참 당돌하네. 그래 받아주마!” 당분간 8시간 정진을 하다가 제법 한다 싶으면 14시간 정진방에 넣어주겠다는 조건이었다. 아쉽게도 송광사에서의 수행은 오래 가지 못했다. 폐결핵 3기 판정. 백양사로 돌아온 상좌를 은사 스님은 손수 약초를 뜯어다 먹이며 극진히 간호했다. 병은 6개월 만에 나았다. 다시 선방에 가겠다는 걸 은사 스님과 부모님이 겨우 눌러 앉혔다.

이 무렵 변화가 찾아왔다. ‘수행이 물론 중요하지만 수행을 진짜 잘하기 위해서는 수행의 이론과 실제를 정리할 필요가 있겠다’ 생각했다. 부처님이 6년 고행을 그만두고 명상을 택하던 장면이 연상되는 대목이다. 미래를 기약하며 학생으로서의 본분에 충실했다. 다니던 고등학교 앞에서 가정교사 일도 했다. 방위복무를 마친 뒤 당시 종정이었던 서옹스님이 주석하던 서울 백운암 상도선원에 짐을 풀었다. 서옹스님을 모시는 틈틈이 입시를 준비해 동국대 선학과에 합격했다. 고익진 교수의 원시불교와 종교학 강의에 감명을 받았고 날마다 참선으로 스스로를 점검했다.

교학에 대한 자신감은 스리랑카 페라데니아대학, 인도 뿌나대학 그리고 영국 옥스퍼드대와 미국 하버드대까지 기나긴 여정의 출발점이었다. 어려서부터 드리워졌던 죽음의 그림자도 한 조각 한 조각 떨어져 나갔다. 삶은 목숨을 던져준 자가 아닌 스스로 살아가는 자의 몫일 것이다. 지난해 중앙승가대 교수직에서 물러난 미산스님은 종단의 모든 공직을 내려놓았다. 상도선원에서 시민들을 위한 전법에 전력투구하고 있다. 2007년 개원한 백운암 상도선원은 전통과 현대가 조화된 외양의 도심포교당이다. 약관(弱冠)에 단명하리라던 미산(彌山)스님은 여전히 잘 살고 있다.

불교는 단순한 지식이 아니다. 불교를 몰라도 사는 데 지장은 없다. 다만 불행할 뿐이다. 바꾸어 말해 불교를 공부해서 행복하지 않다면 이는 바른 공부가 아닐 것이다. 미산스님이 지향하는 불교 역시 실질적인 행복이다. ‘하트스마일명상(Heartsmile Meditation)’은 미산스님이 직접 개발한 자애미소명상의 새 이름이다. “자비는 불도의 근본이며 대비는 모든 불보살 공덕의 근본이다. 반야바라밀의 어머니이고 여러 부처님의 할머니다<대지도론>.” 현대인들의 어둡고 부산한 마음을 자비로 씻어 스스로와 세상을 변화시키자는 취지다.

하트스마일명상은 크게 다섯 가지 행법(行法)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는 하트스마일 33배. 지극한 마음으로 서른세 번 절을 하면서 온몸에 따스함과 훈훈함을 채우는 일이다. 얼굴은 미소로 채워야 한다. 두 팔로 하트를 크게 그리며 머리 위까지 올렸다가 합장을 하면서 오체투지를 지속하는 형식이다. “몸의 긴장은 이완되고 마음은 따뜻해지면서 알아차림과 깨어있음의 마음근육이 점차 커지게 된다”는 게 미산스님의 설명이다.

마음이 완전히 풀어지면 마음의 짐도 녹아내린다. 타인과 비교하지 않고 미래를 걱정하지 않고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수용 · 감사 명상’이 두 번째다. 세 번째 순서는 ‘따기온스.’ ‘따스한 기운이 온몸에 스미는 것’의 준말이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할 수도(좌법), 누워서 할 수도 있다(와법). 관건은 이완을 극대화해 자애의 느낌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것이다. 원리는 일견 간명하다. 몸이 힘들면 불평을 늘어놓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다. 불편한 마음이 쌓이면 분노가 되고 계속 쌓이면 살인을 유발한다. 반대로 몸과 마음이 편안하면 자비심은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법.

네 번째는 소리명상이다. ‘옴’을 길게 내뱉으면서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 집중력을 강화시키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다. 이런저런 생각과 감정, 곧 오감(五感)의 정보가 일시적으로 모두 사라진 순간에 무심과 무념의 상태가 오롯이 드러난다. 드디어 본명상. 입꼬리를 올려서 미소를 지으며 따스함과 훈훈함이 일정 시간 유지되도록 한다. ‘미소의 힘’은 본래 자기 안에 충만하게 내재돼 있는 자애심을 온몸으로 퍼뜨린다.

마지막 단계는 ‘미소의 사회화’다. 친밀한 대상부터 한 사람씩 떠올려서 가슴 속의 자애심을 선물한다. 그 다음은 무작위로 아무나에게, 궁극적으로는 미운 사람과 원한 맺힌 사람에게 용서와 화해의 에너지를 내민다. 하트스마일명상은 평소 불필요한 잡념이 많은 사람, 대인관계로 고통을 겪는 사람에게 추천할만한 돌파구다. 상도선원에서 진수를 맛볼 수 있다. 미산스님은 “일상적으로 가슴 속 깊이 자애심을 느끼고 그것을 자연스럽게 사회적인 실천으로 옮길 때 인간은 본래 지혜로 충만하고 자비로 무궁한 존재임을 자각하는 것. 그것이 부처님의 인간해방 선언”이라고 강조했다. 사실, 마음의 감옥엔 창살이 없다. 흔쾌히 마음만 열면, 언제든 나갈 수 있다.


■ 미산스님은…
 

창오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1972년 장성 백양사에서 서옹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1985년 부산 범어사에서 자운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동국대 선학과를 졸업했으며 1999년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동양학부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04년부터 2015년까지 중앙승가대 포교사회학과 교수를 지냈으며 미국 하버드대 세계종교연구소 선임연구원, 조계종 총무원 사회부장, 학교법인 동국대학교 교육이사 등을 역임했다.

[불교신문3228호/2016년8월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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