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배는 마음의 일보다

몸의 일에 가까운 수행이었다

겨우 108배나 해보던 내게

1만배가 너무도 아득했다…

마치 올림픽 예선을

겨우 통과할까 말까 할

선수에게 금메달을

요구하는 꼴이었다 

요즘 무릎 인대를 다쳐 절뚝 걸음 신세다. 후끈한 파스로 버텨보지만 뻐근한 통증이 가시질 않는다. 올여름도 여지없이 경계상(境界相)에 빠져 중생심의 바다에서 헤엄치다 자초한 꼴이었다. 당분간 동해의 깊고 푸른 바다를 다녀올 신체가 아닌지라 포기하지만, 깊이를 알 수 없는, 넓이를 헤아릴 수 없는 중생심의 바다에서 육근의 문을 활짝 열고, 바늘 한 땀 꽂을 수 없는 좁은 소견으로 살아볼 작정이다. 물바다가 아니라 불바다 팔열지옥에서 헤엄치는 꼴 일지라도…. 지금 서 있는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아 여름을 나 볼 참이다.

마음은 미풍에도 나부끼고, 다리는 통제를 벗어나 제 맘대로 절름거리다 보니 오래전 하루 1만배를 했을 때가 새삼 그리워진다. 24시간 안에 1만배를 성취한다는 것은 무모한 일이었다. 하지만 무심한 초발심의 힘은 등을 떠밀었다.

신심. 허나 마음 하나로 몸의 일을 이룰 수는 없었다. 1만배는 마음의 일보다는 몸의 일에 가까운 수행이었다. 하여 5000배를 미리 예행 연습했다. 사력을 다해 5000배를 경험해보니 겁이 덜컥 났다. 이것만 해도 포기하고 싶고,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수없이 번뜩였다. 겨우 108배나 해보던 나에게는 1만배가 너무도 아득하게 느껴졌다. 이것은 마치 올림픽 예선을 겨우 통과할까 말까 할 선수에게 금메달을 요구하는 꼴이었다.

여름에서 가을로 가는 길목의 계절이었다. 밤12시에 1배를 시작으로 1만배 수행에 돌입했다. 몸을 객관화하여 대면하기 위해서는 모진 절 수행만큼 좋은 것은 없었다.

1000배까지는 환희심에 취해 부처님 명호를 불러가며 잘도 절 수행 흉내를 낼 수 있었다. 그러나 오전6시, 3400배 즈음이 되자 아침밥을 김칫국에 말아 씹지 못하고, 그냥 목구멍으로 훌훌 넘겨야 했다. 4000배가 넘어가자 부처님은 온데간데없고, 몸을 조복시킨다는 서원 따위는 아예 자취를 감추었다. 5000배가 넘어가자, 이 무슨 미련한 수행인가 하는 간사한 타협심과 함께 줄행랑을 치고 싶었다. 그러나 어떤 힘에 의해 반 평밖에 되지 않는 좌복을 차마 벗어나지 못했다. 절하는 내내 난파된 좌복 쪼가리를 타고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기분이었다. 6000배가 되자 팔꿈치와 발가락에 물집이 잡히고, 8000배가 되자 자동차에 맨몸이 부딪친 것 같은 통증과 중환자의 신음이 저절로 새어 나왔다. 화장실을 가려면 엉덩이를 바닥에 질질 끌며 가야 했다.

밤11시45분, 23시간45분만에 1만배를 가까스로 마칠 수 있었다. 돌아보니 그토록 서원했던 부처님도 가족도 신심도 자취가 없었다. 그저 냉정한 흉물 덩어리, 몸뚱이뿐이었다.

호된 통증에 시달리며 스친 생각은 언어의 죄스러움이었다. 말과 글은 무력했고, 교묘한 관념의 왜곡으로 전도몽상하며 살아오지는 않았나 하는 의심이 들었다. 육신은 정직했다. 몸으로 노동으로 꾹꾹 다져진 소통만이 진심으로 세상 사는 방법이 아닐까 하는 자각심이 일었다.

1만배를 한 다음 날, 비칠비칠 절뚝 걸음을 걸어 다시 좌복 위에 섰다. 3000배를 해야 했다. ‘절로 인해 걷지 못하게 된 다리, 절로써만 풀 수 있다’는 피할 수 없는 사실이 나를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불교신문3227호/2016년8월24일자]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