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조선인 역사, 그 너머의 역사

미즈노 나오키문경수 지음한승동 옮김삼천리

 

1945년 일본 패전 당시

징용된 200만 이상의 조선인

일본에서도 외국인으로

한국에서도 외국인으로

국가 보호없이 생존력으로 일군

그들의 경제 문화 역사…

국가는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 모든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국가로부터 생명과 인간답게 살 권리를 헌법에 의해 계약한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국가의 보호영역에 들어가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일제시대 강제로 이주 당한 조선인의 후손, 재일교포들이다. 광복 71주년을 맞아 재일조선인에서 재일교포까지. 100년간 해결되지 못한 역사를 돌아본 <재일조선인, 역사 그 너머의 역사>를 통해 근대사의 아픔을 짚어봤다.

 

징용된 조선인들이 거주했던 후쿠오카 하카다의 수상 판잣집. (1957년)

“1945년 8월 일본이 패전한 시점에서 조선인들이 내지에 얼마나 살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통계가 없다. 1944년 가을부터 미군기의 공습이 심해졌기 때문에 도심에서 농촌지역으로 소개하거나 조선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등 인구 이동이 격심해졌다. 또한 1945년 전반에는 징병된 조선인들이 ‘농경근무대’라는 명칭으로 각지에서 군용 식량확보를 위한 농사나 항공연료 원료로 썼던 소나무 뿌리 채취작업에 동원됐다. 200만명에서 210만명의 조선인이 내지에 거주하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1945년 해방이 됐지만, 일본에 거주하던 조선인 다수는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곳에서 자녀를 낳고 정착해야 했다. 그렇다고 일본 정부로부터 국민의 지위를 부여받지도 못했다. 일본은 1952년 재일조선인을 일률적으로 ‘외국인’으로 지위를 바꿨고, 조선인들은 지자체는 물론 국영철도나 우체국 같은 공공기관에 취직할 수 없었으며, 공영주택 입주를 비롯한 거의 모든 사회복지 제도에서 ‘국적 조항’에 걸려 배제됐다.

1958년 일본에서는 대규모 귀국운동이 전개됐다. 그 원인에 대해 학자들은 “일본 생활을 단념하고 귀국을 희망한 배경에는 무엇보다 구제하기 어려울 정도의 빈곤과 차별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럼 조선인의 도일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1897년 일본 규수의 탄광지대에 노동자가 부족하자 조자(長者)탄광 경영자가 조선에서 노동자를 데려와 일을 시킨 것이 그 시작이다. 230명의 조선 노동자들이 일을 했지만, 이는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경영자가 임금을 현금이 아니라 일종의 교환권으로 지불하고, 그나마 현금 교환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 이후 일본은 청일전쟁 이후 중국인 입국은 거부하지만 조선인은 입국을 허용해 부족한 노동력을 메꿨다. 그렇게 시작된 조선인 노동자들은 탄광과 토목공사 현장에서 노동에 시달리며 제대로 된 임금이나 보상을 받지 못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한일합방 이후로는 강제 이주도 자행됐다.

일본에 건너간 조선인들은 그곳에서 자녀를 낳고 재일교포 2세, 3세가 태어나면서 1925년에는 3만명이 넘게 참여한 재일조선노총을 결성해 경제적 평등 등을 내걸기도 했다. 또 소비조합을 결성하며 생활을 지키려는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해방을 맞았지만, 삶의 기반이 일본에 닦여 있었고, 가난한 나라 한국은 가족과 생계를 보장할 수 없는 곳이었다. 전후 재일조선인들은 김달수(1919년생)를 비롯해 작가모임을 결성해 일본 사회에 비판적으로 뛰어들기도 했으며, 이팔룡(후지모토 히데오, 일본 프로야구 선수)과 역도산(김신락) 등 스포츠에서 명성을 얻은 사람들도 생겨났다. 또 일본에서 자라는 동안 ‘황국신민’이 된 조선인도 있었다.

일본에서 불고기와 샌달, 고철업과 파친코 등을 생계수단으로 삼은 1세 자영업들은 다수가 세상을 떠났고, 2세와 3세 다수는 일본사회에 동화됐다. 그들은 1995년 일본의 침략전쟁을 반성한 무라야마 담화가 발표되고, 2000년 국적조항의 원칙이 철폐될 때까지 일본사회의 이방인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2008년 헌법재판소에 재외 한국인에 대한 선거권 제한이 위법으로 판정되기 전까지 외국인으로 분류돼 참정권도 부여받지 못했다.

21세기 들어 우리나라는 다문화사회로 변화를 시작했다. 많은 이주민들이 국내에서 거주하며 살고 있다. 하지만 힘없는 조선, 침략의 일본에 희생됐던 재일교포들은 양국 어디의 도움도, 보호도 받지 못한 채 70년 세월을 견뎌야 했다. 저자는 “이제 그들의 역사라도 제대로 기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자인 미즈노 나오키는 교토대학 인문과학연구소 교수로 근무하며 한국근대사를 연구하고 있다. 또 문경수 교수는 호세이대를 마치고 리쓰메이칸대 국제관계학부 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번역은 한겨레신문 문화부 선임기자인 한승동 기자가 맡았다.

[불교신문3227호/2016년8월2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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