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 반포 570주년 기념
‘불교와 한글, 한국어’ 세미나

숭유억불정책 시행하던 조선

훈민정음 보급위해 불경 번역

“불교, 민족의식이자 생활양식”

지난 19일 연세대 위당관 백주년기념홀에서 열린 ‘불교와 한글, 한국어 국제학술대회’.

 

한글과 불교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한글이 실담자, 부처님 말씀을 기록했던 산스크리트어의 영향을 받았고, 한글창제에 신미스님이 참여했으며, 한글을 보급하기 위해 다양한 불교경전 언해본이 발간됐음은 역사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유교를 앞세웠던 조선시대에 한글보급을 위해 불교경전을 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연세대 언어정보연구원(원장 서상규), 세종대왕기념사업회(회장 최홍식), 한국선학회(회장 신규탁)는 지난 18일과 19일 이틀간 훈민정음 반포 570주년 기념 ‘불교와 한글, 한국어’ 국제학술대회를 열고 훈민정음 대중화 과정에서 불교의 역할에 대해 조명했다.

정우영 동국대 교수는 ‘훈민정음 표기법과 불전언해’에서 세종이 훈민정음을 창제 반포한 후부터 중세국어 표기법으로 정착되기까지 자모운영 규정을 공시하고, 그것을 보급하기 위해 불교경전 언해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국어사학적 관점에서 조명했다. 15세기 중반부터 말까지 발간된 40여 종의 문헌 가운데 국어 표기법상에서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온 것은 불교경전 언해였다. 이는 3차에 걸쳐 이뤄진 훈민정음 자모 운용규정의 변화를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1461년 <능엄경언해>를 통해 순경음비읍 폐지를 알리고, 1465년 <원각경언해>를 통해 각자병서와 ‘ㆆ’ 폐지를 공유했다. 또 <육조법보단경언해>와 <진언권공 삼단시식문>을 통해 동국정운 한자음이 모두 조선 현실한자음으로 교체됐음을 보여줬다. 정 교수는 “표기법 개정을 공식적으로 드러낸 문헌은 분량이 큰 불전언해들”이었다며 “분량이 큰 불교경전에 적용해 제시한 것은 독자가 불전언해를 읽는 동안 훈민정음 규정도 학습하고 자연스럽게 불교교리를 깨닫게 하려는 제작자의 양면적 의도가 깔려 있는 것”으로 해석했다.

숭유억불정책을 시행했던 조선이 국가통치 이념인 유교경전이 아닌 불교경전을 훈민정음 보급에 활용한 배경은 무엇일까. 김슬옹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전문위원은 ‘불교를 통한 훈민정음 보급의 의미’에서 불교의 역사성과 대중성을 이유로 꼽았다.

김 전문위원은 “세종은 지배층과 피지배층 모두를 아우르는 교화를 이루고자 했다”며 “지배층의 새 문자에 대한 반발심도 잠재우고, 누구나 읽고 배울 수 있는 정음문헌이 필요했고, 그래서 불교문헌을 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불교는 우리 민족에게 종교로서 의미뿐만 아니라 뿌리 깊은 의식과 생활양식의 기제로 작동돼 왔다”며 “특정한 계층만의 종교도 아니고 단지 정치적 대상으로 한정시켜 논의할 대상도 아니기 때문”에 불경언해서 발간을 통해 훈민정음 보급을 추진했다는 것이다. 문종 때 기록을 보면 세종과 세조, 신미스님 등이 정음청을 중심으로 불교관련 연구나 발행을 적극적으로 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특히 “진언집류 불교문헌은 훈민정음 교육의 핵심인 한글 음절표 보급을 통해 훈민정음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며 “불경언해서가 불교전문가나 지식인 위주의 보급 역할을 했다면 진언집류는 일반 민간의 신도들을 중심으로 한글 저변확대에 기여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교경전이 불경보다 100년 뒤늦은 16세기 선조대에 언해본이 나온 것에 대해서는 유학을 신봉하는 지배층과 유교학자들의 극심한 반발에 부딪칠 것을 우려해 늦춘 것으로 추정했다.

[불교신문3227호/2016년8월24일자]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