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물 길어 대나무 주는 정성

가장 즐겨 드셨던 죽순부침개

동화사를 나와 동대구역에서 월내 묘관음사로 가는 동해남부선기차를 탔다. 시자가 되어 큰스님 계시는 처소로 가는 길이다. 모든 것이 다 서툴다고 염려하시는 은사 스님을 뒤로 하고 떠났다. 아직 중물도 제대로 안 들었는데 비구처소로 데리고 가겠다는 큰스님 명을 따르긴 했지만 은사 스님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사미니계를 받은 지 한 달도 안 되었기 때문이다. 도착했을 때는 캄캄한 저녁이었다. 겨울이어서 여섯시가 조금 지났는데도 사방이 캄캄해져 어두웠다. 조실채로 올라가는 오른쪽에는 맹종죽(孟宗竹)이라는 왕대가 무성해 스산한 바람소리와 함께 대나무가 흔들릴 때마다 버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 무서움을 더 자아내었다.

이튿날 아침에 대나무 숲을 바라보았다. 절개를 자랑하듯 푸른 왕대나무가 싱싱하게 위로 쭉쭉 뻗어 있어 밤에 볼 때와는 달리 평온한 모습이었다. 그 후론 대숲을 무서워하지 않았고 대나무와 나는 점점 친해져 수시로 대숲을 들락거리게 되었다.

큰스님은 대나무에 공을 많이 들였다. 대나무는 소금기가 있어야 잘 자란다고 매년 월내 바다에서 바닷물을 길어다 대나무 숲에 주게 하셨다. 일꾼들 서너 명이 지게로 날라다 붓는 작업은 한나절이 걸리는 중노동이었다. 골고루 갖다 부어야 하기 때문에 큰스님은 끝날 때까지 일을 감독하셨다. 절이 바닷가하고 가까워 그나마 빨리 끝나 다행이었다. 그 이외에 김장김치 절였다가 나오는 소금물도 아낌없이 대숲에 갖다 부었다. 그래선지 대나무는 푸른 잎을 펼치고 키가 쑥쑥 자라 싱싱함을 자랑했다. 대나무가 소금을 좋아한다는 걸 처음 알고 무척 신기한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나 식물이나 정성을 들이고 늘 보살펴야 잘 자란다고 하며, 큰스님은 왕대나무 숲을 지날 때마다 애정 어린 눈빛을 보내셨다. 너무 촘촘하게 자란다 싶으면 베어주고 다른 잡초들이 자라나지 않게 풀을 뽑아주기도 했다. 대나무 숲에 유일하게 자라는 것은 머위였다. 그늘이라 그런지 크게 자라지는 않았다. 쓴 나물을 싫어하지만 어린 머위는 별로 쓰지 않아 이른 봄에 나오는 새싹으로 생절이를 해드리면 잘 드셨다.

봄이면 대숲의 여기저기서 죽순이 올라온다. 어디서 그런 힘이 샘솟는지 몰라도 하룻밤사이에 불쑥 올라온 걸 보면 생명의 신비가 느껴진다. 죽순껍질은 얼룩얼룩한 흑갈색의 반점이 있어 벗겨놓은 껍질을 버리기가 아까울 정도로 무늬가 멋있었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죽순껍질을 가지고 고급양갱의 포장지로 쓰기도 하고 음식을 담는 상자를 만들기도 한다. 묘관음사에서는 죽순에서 벗긴 껍질을 바짝 말려 땔감으로 썼지만.

죽순이 나기 시작하면 그것을 재료로 해 여러 가지 요리를 만들었다. 들깨를 갈아 넣은 죽순 찜, 죽순 부침개, 죽순 잡채 등이다. 큰스님은 그 중에서 어린 죽순으로 부친 부침개를 즐겨 드셨다. 큰스님께 드리기 위해 후원 보살님에게 배운 것을 적어본다. 죽순은 그냥 맹물에 삶으면 안 된다. 된장을 엷게 풀은 물에 삶아 내야 한다. 그래야만 죽순의 아리한 맛이 가시기 때문이다. 건져낸 죽순은 다시 맹물에 넣고 한나절 우려낸다. 죽순에 남아 있는 독한 성분을 없애기 위해서다. 부침개를 하려면 어리고 부드러운 죽순을 고른다. 뒷부분의 조금 도톰한 부분은 도마 위에다 칼등으로 통통 두드려 준다. 그런 다음 밀가루를 되직하게 풀어 부침개 반죽을 만든다. 이 때 소금만 조금 넣어 간을 맞춘다. 죽순을 걸쭉한 반죽에 넣어 옷을 입힌다. 철판에 노릇하게 부쳐내면 맛있는 죽순부침개가 완성되는 것이다. 부침개는 초고추장과 먹어야 제 맛이 난다. 식성에 따라 초간장도 만들어 곁들여 낸다.

그런 여러 가지 과정을 거쳐 만든 부침개를 갖다 큰스님께 드리곤 했다. 큰스님은 죽순 부침개를 드실 때마다 ‘참말로 맛있다’를 연발하셨다. 살아 계신다면, 왕대 숲을 둘러보고 ‘올해도 바닷물을 부어줘야 되겠네’라며 혼잣말을 하시겠지.

[불교신문3225호/2016년8월1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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