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 첫마음

박원자 지음/ 뜨란

 

 

20여 년 간 만난 스님들의

행자 시절 이야기를 통해

가장 뜨겁고 강렬했던 마음을

읽어보라, 내 삶이 충만해진다

 

일제시대에서 1980년대까지

시대따라 행자생활도 다르지만

하심하며 수행하는 마음은 같아

‘그간의 나는 무엇이었던가.’ 태어나서 처음 해본, 그 겨울 첫 새벽예불은 황홀했고, 나는 그 황홀함 속에서 마음을 굳혔다. ‘내가 갈 길은 이것이다.’ 스물 세 살때 였다. 물자가 넉넉하지 않았기에 감나무가 있는 암자에 올라가서 홍시가 다 된 감을 따먹거나, 채마밭에서 무를 뽑아 먹는 낭만도 있었고, 떨어진 양말을 기워 신는 검소함도 함께 있었다. 종정을 지내셨던 서암스님은 코 푼 휴지를 볕에 말려두었다가 뒷간에 갈 때 한번 더 쓰시곤 했다.

그렇게 출가 초기의 어느날, 나이가 어린 사미 스님이 내가 데워놓은 물을 다 써버리고는 다시 길어오라며 일방적으로 시키는게 아닌가. 나는 그만 분이 나서 대들었다. “왜 남의 물을 씁니까?” 이어 그를 한차례 치고 말았다. 날카롭고 급한 성격이 순식간에 튀어 나온 것이다. 행자에게 맞고 가만히 있을 스님이 어디 있겠는가. 그 스님은 곧바로 강원으로 뛰어가 “갱두가 나를 때렸다”고 전했다. 그러자 학인 스님들이 쫒아나오며 소리쳤다. “저 놈 잡아라.”

행자는 엉겁결에 무조건 도망을 쳤다. 그런데 한참 후 택시 한 대가 달려와 멈춰섰다. 원주 스님이었다. “한 행자. 만약 다른 절로 갈 것 같으면 나와 함께 돌아가자.” 결국 그 일은 참회를 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그 일을 계기로 하심하지 못하던 성격이 바뀌었으며, 설사 누가 욕을 해도 참을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사미계를 받은 다음 가사장삼을 입고 은사 스님께 인사를 올렸다. “이 한 생은 태어나지 않은 셈치고 중노릇 잘해라.”

조계종 고시위원장 지안스님의 출가 시절 이야기다.

출가수행을 발심하고 사찰에 든 행자시절, 힘들고 고된 생활이지만 마음은 어느 때보다 뜨겁고, 강직하다. 지난 20여 년간, 제방의 스님들을 만나 <해인>지에 출가이야기를 연재해 온 박원자 씨가 스님들의 출가이야기를 묶어 단행본으로 출간했다. 전 봉은사 조실 석주스님, 전 수덕사 방장 원담스님, 대강백 범어사 무비스님 등 일제강점기를 겪으면서 질곡의 한국사를 몸소 체험한 스님들을 비롯해 운문사 승가대학장 일진스님, 미황사 주지 금강스님까지 다양한 스님들을 만나 출가 초기의 이야기를 담은 것이다.

지난 7월22일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일진스님은 “박원자 선생님과 15년 전 잠깐 인터뷰를 했던 기억이 난다. 다시 글을 읽어보니 행자 시절이 그리 멀지 않았던 때 같은데, 벌써 이 나이가 됐구나 생각이 든다”며 “행자 시절 발심을 잃지 않고 바른 수행의 길을 가라는 경책으로 이 책을 간직하겠다”고 말했다.

사미계를 받기 전 삼보일배 수행을 하는 행자들. 불교신문 자료사진

2004년 입적한 석주스님이 출가한 때는 일제강점기였다. 신학문을 공부하려고 무작정 서울에 왔지만 생활을 이어가기도 만만치 않았다. 이를 안쓰럽게 여긴 필방 사장이 남전스님에게 가면 공부를 할 수 있다고 권해 선학원을 찾아갔던 것이 출가로 이어졌다.

당시 선학원에는 남전 석두 도봉 만해스님이 주석하고 있었는데 “시집살이도 보통 매운 시집살이가 아니었다”고 회고한다. 행자만 6년을 했다. 배운 것은 <부모은중경>이 전부였는데 어느날 은사 남전스님이 6개월 정도 선학원을 비우게 됐다. 석주스님은 “이 때다”하고 종로의 야학을 찾아 한글을 배우고, 밤늦도록 동대문의 스케이트장을, 서점가를 누비고 다녔다. 그리고 얼마 후 범어사 강원에 들어가기 전 사미계를 받을 수 있었다.

박원자 씨가 소개한 48명의 스님 가운데 가장 젊은 스님이 미황사 주지 금강스님이다. 스님은 1982년 출가를 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육조단경>을 배우면서 출가를 꿈꿨다. 집을 나와 대흥사로 들어간 스님은 “하루라도 빨리 도를 공부하고 싶어” 절에서 학교를 다녔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장 해인사에 들어갔다. 스님은 해인사 강원에서 어머니의 편지를 받았다. 그리고 혼자 펑펑 울었다. 다음에는 어머니의 부고장을 받아들어야 했다. 그때를 회고하면서 금강스님은 “아름다운 삶은 무엇인가. 2500년 전 이 세상에 오신 선각자를 따라 길을 걷는 것, 매순간 그 분이 보여주신 가르침대로 사는 것이 올바른 삶이 아닐까”라며 다음 생에도 출가자의 길을 서원하고 있다.

책에는 비구니 명성스님을 비롯해 많은 스님들의 출가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가운데 많은 스님은 이미 다른 세계로 떠나가고 없지만, 출가 초기의 정진력과 일화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무엇보다 “자신의 삶을 사랑한 사람”이라는 점이다. 진정한 행복을 찾아 출가를 한 스님들은 일반인의 생활보다 훨씬 혹독하고 치열한 생활을 기꺼이 감내했다. 그 시간을 통해 하심을 배우고 나서야 계를 받고 승복을 입을 수 있었다.

출가에 대해 부모님이 반대를 한 것만은 아니다. 세 자매가 출가한 운문사 승가대학장 일진스님, 초대 전국비구니선원 선문회 회장을 역임한 영운스님 등은 불심이 깊으셨던 어머니가 오히려 출가를 격려했다. 또 공부를 하러 떠나는 상좌를 위해 미음을 끓여 병에 담고, 식지 않게 겹겹의 수건으로 싸 건네던 은사 스님은 행자 시절을 이겨내도록 만드는 힘이기도 했다.

“지금 새롭고 충만하게 살고 싶다면, 수행자들의 초발심을 만나봐라. 그 어떤 드라마보다 극적인 감동을 선사받을 것이다.” 저자의 말이다.

[불교신문3223호/2016년8월1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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