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자현스님 '한국불교 비판에 대한 단상'

현각스님의 불교비판 중 앞쪽의 3개에는 한국문화에 대한 비판이라면, 뒤쪽의 3개는 한국불교에 대한 지적이다. 이는 각각 ‘④기복祈福주의·⑤스님과 신도의 차등·⑥외국승려는 장식품’이다. 이 3가지는 다시금 ④⑤의 한국불교에 대한 것과 ⑥의 외국스님들에 관한 내용으로 나누어질 수 있다. 이 중 본고에서는 ④⑤에 대한 내용만을 다루어 보고자 한다.

흔히 기복주의가 나쁘다고 말하지만, 사실 종교학적으로 볼 때 기복주의야말로 종교의 가장 내밀한 시원이다. 즉 절대자나 절대적인 힘이 나를 보호해 주기를 바라는 기복이야말로 종교의 기원인 것이다. 기복이 종교의 시작이라는 것은, 이것이 가장 강렬한 생명력을 가졌다는 것을 의미이다. 실제로 한국불교가 조선 500년의 숭유억불시기를 넘을 수 있었던 원동력은, ‘화려한 교학(敎)’도 ‘빛나는 정신문화(禪)’도 아닌 바로 ‘기복’이었다. 이는 우리가 오늘날까지 조석으로 하는 <예불문>의 ‘명훈가피’라는 단어로 유전되고 있다.

내 말은 기복이 반드시 정당하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종교에서 기복은 핵심적인 요소이며, 현재도 모든 종교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나쁜 측면은 아니라는 말이다. 실제로 불교와 함께 세계종교로 평가받는 이슬람과 기독교는, 신에 대한 기복이 핵심으로 자리 잡고 있지 않은가! 즉 기복이야말로 종교의 시원에서부터 오늘날의 세계종교에 이르기까지 전 종교를 관통하는 키워드인 셈이다.

물론 현각스님의 지적은 ‘기복=돈’이라는 의미였다. 즉 한국불교가 너무 돈을 밝힌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그럴까? 2015년 총 수입이 가장 많은 사찰은, 강남 봉은사로 210억 8700만원이었다. 210억이면 언 듯 많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순수입이 아니며, 봉은사는 수조원의 자산 가치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시쳇말로 봉은사 주차장에 빌딩만 올려도 임대료가 이것보다 많이 나오는 상황이라는 말이다. 여의도 순복음교회의 1년 수익규모가 수천억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도 이 정도 금액으로 한국불교가 기복으로 돈을 밝힌다고 비판할 수 있을까? 단언컨대 한국 종교 중 불교는 가장 이익추구가 적은 청정한 종교이다. 즉 현각스님의 비판은 한국불교의 현실을 도외시한 관견管見에 불과한 것이다.

다음으로 스님과 신도의 차등에 대해서 살펴보자. 이 세상에 제사장이 다스리던 시대부터 지금까지 성직자와 신도가 완전 평등한 종교가 존재했는가? 이에 대해서 붓다는 어떻게 생각했을까? 붓다 역시 승가(출가)와 재가를 엄격히 구분했다. 요즘 간간히 나오는, 승가가 4부 대중을 가리키는 말이라는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내가 율장으로 박사학위를 가진 승려로서 말하건 데, 붓다의 승가는 비구(사미)·비구니(사미니·식차마나니)의 2부승가일 뿐이다.

또 출가와 재가에 대한 가르침도 달랐다. 출가자에게는 4성제·8정도·3과설을 주로 가르치셨다면, 재가인에게는 보시·지계·생천의 3론이 일반적인 가르침이었다. 또 보시에 의한 공덕도 재가인보다 출가인에게 하는 것이 더 많으며, 4향4과의 깨침을 얻은 분들이라면 더 크다고 하셨다. 즉 붓다에게서도 승려와 신도의 차등은 존재했던 것이다.

성직자와 신도는 인도자와 인도되는 사람의 관계이다. 이런 점에서 평등이 될 수 없다. 어떻게 선생님이 학생과 평등할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평등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은, 인간의 본성으로서의 평등이라는 의미이다. 마치 우리 모두는 인간이라는 점에서는 평등하지만, 각각의 생김새는 모두가 다른 것처럼 말이다. 이런 점에서 현각스님의 차등에 대한 비판은 불교를 올바로 이해하지 못한 단견斷見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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