⑫ 군산 동국사

현존 국내 유일 일본식 사찰

1956년 동국사로 사명 개칭

일본 조동종 과거 참회 사과

한일 양국의 화해 공간 ‘승화’

일제강점기, 해방, 한국전쟁 등 근현대 격동의 세월을 고스란히 간직한 군산 동국사의 지금 모습. 왼쪽 건물부터 대웅전, 요사 및 종무소, 향적당.일제강점기인 1934년 군산 동국사 모습. 당시 절 이름은 금강사였으며, 대웅전에는 ‘월명산’이란 편액이 걸려 있다.

현존하는 국내 유일의 일본식 사찰인 군산 동국사. 1909년 일본 승려 우치다붓칸(內田佛觀)이 포교소를 개설하면서 동국사(東國寺)의 역사는 시작됐다. 본래 사명(寺名)은 금강선사(錦江禪寺). 일제강점기에 세워져 해방, 한국전쟁을 거쳐 지금까지 근현대 격동기의 풍상(風霜)을 온몸으로 겪은 역사적 공간이다. 일본 제국주의의 침탈 기지에서 이제는 한일 과거사를 청산하고, 화합과 상생의 도량으로 거듭나고 있는 군산 동국사(주지 종걸스님)를 지난 20일 찾았다. 

뙤약볕이 총알처럼 빗발치는 무더운 날씨에도 동국사를 찾는 불자들과 일반인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근대역사의 생생한 자취를 간직한 건물과 거리가 남아 있는 군산은 방학을 맞은 대학생을 비롯해 관광객들이 ‘특별한 여행’을 오는 도시이다. 조선은행 군산지점, 적산가옥, 남조선전기주식회사, 미즈카페 등 과거의 역사를 보여주는 건물을 쉽게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식 사찰의 모습을 오롯이 간직한 동국사는 ‘한국속 일본사찰’의 색다른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장점이 있어, 관광객들이 빼놓지 않고 들리는 명소다. 대전에서 왔다는 이영신(25)씨는 “군산에 오니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조부모님이나 부모님이 살던 시대로 온 색다른 느낌을 받는다”면서 “한눈에 봐도 한국 절과 다른 양식의 일본식 사찰을 보니 신기하다”고 동국사 방문 소감을 밝혔다. 

동국사 대웅전 삼존불. 왼쪽부터 아난존자, 석가모니불, 가섭존자. 보물 1718호.

동국사는 한일강제병합 1년 전인 1909년 6일 일본 승려 우치다가 군산 일조통(一條通)에 포교소를 개설하면서 역사가 시작됐다. 처음 이름은 금강선사(錦江禪寺)였으며, 1913년 지금의 자리(군산시 금광동 135)로 이전해 1945년 8월 해방될 때 까지 일본인들이 운영했다. 조선총독부가 동국사의 전신에 해당하는 조동종 군산포교소로 인가한 것은 1916년이다. 금강선사는 금강사라고 줄여서 불렸는데, 금강(錦江)이란 사명(寺名)은 군산 앞바다로 흘러가는 금강에서 유래했다.

금강사는 해방이 되어 일본인이 물러간 후 미군정을 거쳐 정부에서 관리했다. 해방직후에는 일본인들이 다수 머물며 귀국을 기다렸으며, 한국전쟁 당시에는 인민군이 군산을 점령하면서 북한 군대의 숙소로 잠시 이용됐다.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으로 인민군이 퇴각한 뒤에는 미군이 사용하는 등 한국의 현대사를 고스란히 감당한 역사적 공간이다.

동국사(東國寺)라는 이름은 1956년 재단법인 전북불교교원에서 인수할 당시 전북종무원장 남곡스님이 ‘우리나라(東國) 절(寺)’이라는 뜻으로 지었다.

일본 제국주의의 조선침탈의 중요한 거점이었던 군산에는 일본인들이 상당수 거주했다. 이들은 금강사를 중심으로 신행활동은 물론 불교식 혼례, 장례 등을 치렀다. 소위 대동아전쟁에 참전해 전사한 일본 군인 가운데 군산과 연고 있는 자들의 위패와 유골을 봉안했다. 대웅전 뒷벽에 있던 봉안당은 해방 후에 철거했으며, 유골은 절차를 거쳐 서해 앞바다에 수장(水葬)했다. 지금은 대웅전 뒤쪽에 시멘트 기단만 남아 옛일을 소리 없이 전하고 있다.

동국사에는 일본 조동종이 과거사를 참회하며 건립한 참사문비(뒤)와 제국주의 재발 방지와 세계평화를 기원하는 평화의 소녀상(앞)이 있다.

동국사 입구에는 두 개의 돌기둥이 서 있다. 한국 사찰에서는 보기 어려운 구조물이다. 그 가운데 하나에는 왼쪽에 ‘소화(昭和) 9년 길상일(吉祥日)’이라고 음각되어 있었다. 일본식 연호인 소화는 해방 후에 지워졌다. 오른쪽에는 ‘조동종(曹洞宗) 금강사(錦江寺)’ 명패가 새겨져 있었는데, 일본 종단인 조동종 명칭 역시 지워진 채 흔적만 전한다. 또한 ‘차문불문(此門不門)’이란 목판이 걸려 있다. ‘이 문은 문이 아니다’는 뜻으로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문’이란 의미다. 이 글씨가 언제 새겨졌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군산 출신으로 중학교에 다닐 때 동국사를 자주 찾았던 고은 시인이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고은 시인은 1951년 당시 동국사 주지인 혜초스님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

군산 동국사의 중심은 대웅전이다. 정면 5칸, 측면 5칸의 정방형 단층 팔작 지붕으로 일본 에도(江戶)시대 건축양식을 따르고 있다. 75도의 급경사를 이룬 대웅전 지붕과 다수의 창문이 있고, 용마루가 일직선을 하고 있다. 대웅전과 요사가 복도로 연결되어 있는 등 전형적인 일본 사찰 형식을 보이고 있다. 지금의 대웅전은 1935년 개축한 건물이다. 법당을 지을 당시 대다수 목재는 일본에서 삼나무를 들여 왔는데, 대들보는 백두산 금강송(金剛松)을 사용했다. 일제강점기에는 ‘月明山(월명산)’이란 편액이 걸려 있었는데, 군산을 상징하는 월명산에 사찰이 자리하고 있기에 그런 것이다.

대웅전에는 진흙으로 조성한 석가여래삼존상이 모셔져 있다. 가운데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왼쪽에 아난존자, 오른쪽에 가섭존자가 시립(侍立)하고 있다. 조선 효종 1년(1650년) 응매스님이 조성한 삼존불상은 시주자와 시주물목, 발원문 등이 복장에서 나와 조선 후기 불상연구는 물론 복장 의식과 사원경제를 짐작하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보물 1718호로 지정된 소중한 성보문화재이다. 본래 김제 금산사에 봉안되어 있었는데, 해방 후에 동국사로 이운했다.

대웅전을 바라보며 왼쪽 마당에는 일본식 종각(鐘閣)이 눈길을 끈다. 국내 유일의 일본 전통 양식의 종각으로, 1919년 일본 교토(京都)에서 제작한 범종이 달려 있다. 일제강점기는 물론 해방 이후까지 군산 시민들에게 매일 시간을 알려주는 역할을 수행했다. 지금처럼 시계가 흔하지 않았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본래 종각이 있던 자리는 대웅전 앞마당보다 높은 언덕이었는데, 텃밭을 조성하면서 턱을 낮추었다. 1932년 대웅전 옆에 있는 야산을 허물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동국사에는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석조 33관세음보살상과 석조 12지본존불상도 있다. 1919년에 만들어진 불상들이다. 보살상에는 일본인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는데, 해방 이후 철거되어 민가의 주춧돌로 사용한 이력이 있어 그을림 자욱이 보인다.

일제강점기의 거친 세월의 흔적을 증언하는 공간도 있다. 방공호(防空壕)이다. 연합국 비행기의 공습을 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대웅전 뒤편 대나무 숲에 2개의 방공호를 조성했다. 그 가운데 하나는 무너져 내려 폐쇄했고, 나머지 하나는 토굴식 창고로 사용하고 있다.

1945년 해방 후 동국사 대웅전에서 열린 결혼식 모습.

한편 종각 옆에는 한국과 일본의 비극이 재발하지 않기를 염원하는 상징물이 있다. 하나는 참사문비(懺謝文碑)이고, 또 하나는 평화의 소녀상이다. 참사문비는 제국주의 첨병 역할을 참회하고 용서를 구하는 의미에서 일본 조동종 스님들이 세웠다. 제막식은 2012년 9월16일 동국사 창건 104주년을 맞이해 일제강점기 희생자 합동위령재를 겸해 봉행됐다. 과거의 잘못을 참회하고 다시는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한일 양국 불교계의 염원이 모아졌다. 참사문은 20여 년 전 일본 조동종이 발표한 내용으로 일본어 원문과 한국어 번역문을 함께 새겼다. 비문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 아시아인들의 인권 침해, 문화멸시, 일본 문화 강요, 존엄성 훼손 행위가 불교적 교의에도 어긋나며, 석가세존과 역대 조사의 이름으로 행해 왔던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행위이며 진심으로 사죄하며 참회한다. 특히 명성황후 시해 폭거, 창씨 개명으로 국가와 민족을 말살해 버렸는데, 조동종은 그 첨병이었다. 불법을 세속법에 예속시키고, 타민족의 존엄성과 정체성을 침탈하는 잘못을 범한 것이다. 우리는 맹세한다. 두 번 다시 잘못을 범하지 않겠다.”

참사문비 앞에는 한복을 입은 단발머리 차림의 ‘평화의 소녀상’이 서 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인권과 명예회복을 위해 불교계를 비롯한 종교계, 학계, 경제계, 여성계, 시민단체가 추진위원회를 만들어 광복 70주년인 2015년 8월12일 건립했다. 소녀상은 일본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소녀상 앞의 연못은 한국과 일본 사이에 있는 대한해협을 상징적으로 표현해 놓았다.

군산 동국사 주지 종걸스님은 “근현대 격변의 시대 수많은 사연을 안고 있는 도량”이라면서 “사찰로서 본연의 자세인 수행과 포교는 당연히 해야 할 덕목”이라고 밝혔다. 이어 종걸스님은 “이와 함께 동국사가 한국과 일본 양국의 과거를 참회하고 향후 화해의 장으로 거듭나는 상징적인 공간이 되도록 하겠다”고 발원했다. “아픈 과거사를 교훈으로 삼아 한일불교 교류를 활성화하고, 언젠가는 같은 종교를 가진 불교인의 입장에서 협력 화해할 수 있는 역사의 장이 되도록 가꿔야 겠습니다.”

[불교신문3221호/2016년7월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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