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일까요

유자효 지음/ 인간과문학사

 

“햇빛은 말한다/ 여위어라/ 여위고 여위어/ 점으로 남으면/ 그 점이 더욱 여위어/ 사라지지 않으면/ 사라지지 않으면/ 단단하리라”(‘정釘’ 전문)

태양은 생명의 근원이다. 하지만 때론 시련의 상징이기도 하다. 쇠를 녹여버릴 듯 이글거리기도 하고, 따사롭게 생명을 키워내기도 한다. 그 햇살이 말한다. 시련을 피하지 말고 그 안에서 견디고 다져지라고, 그렇게 단련이 되고 나면 단단한 못처럼, 삶도 단단해지지 않겠느냐고.

고희를 맞은 유자효 시인이 그동안의 시 가운데 70편을 추려 <어디일까요>를 펴냈다. 방송인으로, ‘당당한 월급쟁이’로 살면서 ‘어엿한 집과 승용차와 저금통의 잔고를 저울질 할 줄도 아는 잘 훈련된 감성을 지닌’ 사회인으로 살았던 유 시인이다. 그가 지난 세월을 때론 기록하고, 때론 회상하며 쓴 시에는 우리 삶의 여러 모습이 들어 있다.

“시내버스 안에서/ 초라한 행색의 한 벙어리 소년이/ 땀을 흘리며/ 꾸역꾸역 울고 있었다…소년의 몸에서는 선향 냄새가 났고/ 울음의 가락은/ 상주의 것을 닮아 있었다/ 그리고 굳은 혀에서 새어 나오는/ ‘아바 아바’ 소리를/ 나는 들었다…”(‘어느 날의 울음이야기’ 중)

27살의 나이, 고속버스에서 시인은 초라한 소년을 만났다. 샌들에는 때꼽이 가득했고, 몸은 앙상하게 여윈, 벙어리 소년이었다. 그 소년이 목놓아 풀어놓은 소리는 ‘아빠’였다. 어머니의 부고 소식을 듣고 집으로 내려가는 버스에서 만난 소년에게 시인은 아무런 위로가 되지 못했다. 그 일은 70세에 이른 시인의 마음에 아직도 맺혀 있는 미안함이다. 시인은 그 소년을 향해 뒤늦은 고백을 전한다. “살아라. 살아라/ 비겁해도 좋고/ 비열해도 좋다/ 질기게, 질기게 살아라…우리는 절망을 극복할 순 없지만/ 절망이 한눈을 팔고 있을 때/ 그 순간, 순간들을/ 억세게, 억세게/ 목숨의 끈으로 이어가야 하는 것이다”라고.

시는 한 시인이 살아온 인생을 축약하면서, 개인의 일상에만 그치지 않는다. 방송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며 살았던 유자효 시인의 시선에는 다른 삶을 보듬으려는 마음이 곳곳에 남겨 있다. 때론 객관적 관찰자의 눈길로, 때론 주변을 향해 환하게 웃는 모습으로 다가서고 있다.

“늦가을 청량리/ 할머니 둘/ 버스를 기다리며 속삭인다// 꼭 신설동에서 청량리 온 것만 하지?”(‘인생’ 전문) 시인의 고백같은 시다.

문학평론가인 장경렬 서울대 영문과 교수는 “어찌보면 유 시인에게 시란 뉴스의 현장에서 자제해야 했던 따듯하고 밝은 마음을 환하게 펼치기 위해 찾는 성소와도 같은 곳이었다”고 해설하며 시집 <어디일까요>는 그런 시인의 마음을 읽는 공간이라고 평했다.

[불교신문3221호/2016년7월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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