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았다고 떵떵거리며 큰소리

그날밤 고함에 비명소리까지

저녁 무렵, 어느 선원에서 온 스님이 큰스님을 뵙겠다고 찾아왔다. 본인이 공부하다가 깨달았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큰스님과 법거량을 하겠다고 온 셈이다. 큰스님은 그 스님이 들어올 때부터 벌써 알아차리셨다. 제 딴에는 알았다고 잔뜩 벼르고 왔다는 것을. 주위에 아무도 얼씬거리지 말라는 엄명을 내리고 들어오라고 했다.

그 스님이 조실채에서 내려간 뒤, 큰스님께선 허탈한 너털웃음을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알기는 뭘 알아. 아무것도 아인 걸 붙들고 알았다카이 내 참 기가 매키서.” 공부는 제대로 하지도 않고 알음알이가 생긴 것을 가지고 알았다고 우긴 모양이다. 큰스님에게 호되게 혼나고 내려간 것은 물론이다. 하도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며 우기기에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몇 대 때려 억지로 내려 보냈다고 하셨다.

깨달았다고 떵떵거리며 큰소리를 쳤으나 영 아무 것도 아니었던 것이다. 말해보니 정말로 맹탕이어서 큰스님은 맥이 빠진 표정을 하고 계셨다. 행여나 하는 일말의 기대감이 그대로 무너진 데서 오는 허무함이 밀려온 것이다. 이런 일로 찾아오는 스님들을 종종 보아온 터라 그리 새롭지는 않았다. 대부분 본전도 못 건지고 돌아가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에도 그랬다. 거의가 다 기가 죽어 얌전하게 돌아가기 때문에 그날도 그러려니 여겼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조실채는 선방하고 좀 떨어져 있어 여간해서는 아래쪽에서 나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밤이 깊어져 도량이 조용해지면 작은 소리까지도 들려온다. 한밤중이었다. 갑자기 고함소리와 함께 비명소리가 큰스님 방까지 들려왔다.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밤 열한시가 지났으니 주위가 고요해 더 잘 들린 것이다. 후다닥거리며 원주 스님이 올라오더니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큰스님, 객스님들이 각목으로 서로 때려 한사람은 입술이 터져 이가 부러지고, 또 한사람은 머리가 터졌습니다. 급히 택시를 불러 병원으로 보냈습니다. 선방에서 스님 두 분이 따라 갔으니 염려 마십시오.”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큰스님에게 제대로 대답 한마디도 못한 채, 방망이만 맞고 내려간 스님이 객실로 자러갔다. 그 방에는 다른 객스님이 또 한사람 와 있었다. 처음에는 주거니 받거니 말싸움으로 시작되었다. 말인즉슨 둘이 다 서로 깨달았다고 내가 옳으니 네가 그르니 하다가 급기야는 서로 멱살을 잡고 밖으로 나오기까지에 이르렀다. 창고에 세워둔 각목이 눈에 띠자 하나씩 들고 서로 때린 것이다.

‘깨달음의 해프닝’은 일단락되었지만 왠지 뒤끝이 씁쓸했다. ‘공부를 잘못하면 저렇게 되는구나’하는 생각을 하니 정신이 바짝 들었다. 바르게 정진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새삼 깨닫게 해주는 사건이었다.

[불교신문3221호/2016년7월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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