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선지식구법여행…박문호 박사 ‘불교와 자연과학 세상’ 강연

다음은 이날 강연 내용을 요약, 정리한 것이다.

이 자리는 <화엄경> 입법계품을 모티브로 해서 공부를 조금 더 먼저 시작한 사람으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공부하는 시간이다. 화엄경은 선재동자가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켜 53선지식을 찾아 구도를 하는 것이 핵심내용인데, 바꿔 말하면 공부와 자신이 아무런 갭이 없는 상태, 이것저것 재지 말고 순수하게 공부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걸 공부해서 도움이 될까 이런 생각을 하면 공부라고 할 수 없다. 자신이 한 번도 접해 본적 없는 분야에 대해 아무 생각 없이 미친 듯이 공부해야 한다. 공부를 한다는 것은 머리가 지끈지끈 하고 신경이 쓰이는 것이다. 주말연속극 볼 때 아무 생각 없이 보는 것처럼 별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분야는 공부가 아니다.

여기 모인 여러분들은 모두 선재동자들이다. 20년 전 대승기신론을 공부하고 이후 자연과학을 공부하면서 다시 대승기신론을 공부했는데 정말 탁월한 가르침이라고 생각한다. 대승기신론의 구조를 보면 심생멸문(心生滅門)과 심진여문(心眞如門)이 완벽한 대칭관계를 이루고 있다. 심생멸문에서 심, 의식이 출현하면서 중생이 삼세에 휘둘리는 것이다.

지금까지 무수하게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호모 사피엔스에 와서 일차식과 고차식이 출현했다. 고차식이 되어야 시간과 의식, 순차에 대한 개념이 출현하게 되고 현재와 미래가 구분된다. 과거 기억을 참조해서 미래를 상정하는 즉 시간이 흘러간다는 착각이 출현한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간다는 것도 착각 중의 하나일 수 있다. (대승기신론처럼) 입자물리학에서도 과거와 현재 구분은 없고 완벽한 대칭이다. 입자물리학에 들어가 살펴보면 엄밀하게 시간의 방향이 없다. 일부 이론가들에 따르면 시간은 흘러간다기보다는 얼어붙은 강에 가깝다고 말한다. 시간이 흘러간다는 것은 과거가 분명히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사실은 두터운 현재의 층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딛고 있는 일시적인 징검다리를 영원이라고 믿어야 우리는 편안하다.

40년 이상 암석을 연구한 한 교수가 최근 새로운 이론을 제시했다. 이 사람이 쓴 책은 국내에도 번역됐다. 평생을 바쳐 암석을 연구한 지질학자이다. 이 사람에 따르면 현재 지구상에는 4500종의 광물이 존재한다. 그런데 지구 초기부터 4500종이나 되는 광물이 있었을까에 대해 물음을 던지고 있다. 광물도 진화한다. 혜성의 광물 종류에 대한 연구가 많이 이뤄졌다. 지난 50년 사이 연구 결과 250종을 넘어가지 않는다고 한다. 화성의 광물은 몇 종류인지 알고 있나. 지구와 상당히 비슷한 화성의 경우 광물이 500종을 넘지 않는다. 그런데 행성 지구에 광물 숫자가 4500종이나 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보는 것이 바로 화강암이다. 하지만 이 화강암이라는 종류의 암석은 지구 이외의 지구형 행성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고 한다. 금성에도 없고 화성에도 없다. 바로 이것이 싸이언스다.

우리가 매일 접하는 화강암도 태양계 전체를 놓고 보면 굉장히 희귀하다. 화강암이 존재하려면 액체 상태의 바다가 있어야 한다. 화강암이 어떻게 생기나면 해양 지각들은 다 현무암이다. 바다 깊이가 대략 4000m인데 지구 표면에 50% 해당되는 면적이 현무암으로 되어 있다. 지구초기에 해당되는 45억년에서 35억년 사이에 엄청나게 많은 운석이 떨어졌는데, 그 운석이 바닷물을 통과해 현무암과 충돌한 순간 바닷물이 들어가고 온도와 압력이 더해져 화강암이 만들어졌다. 화강암이 출현하는 곳에는 반드시 바다가 있어야 한다. 지구 초기에는 대략 60종류의 광물밖에 없었다. 

지구 역사 20억년 까지도 암석 개수는 1500개가 안 넘어갔다. 20억년 이후 박테리아가 출현하고 행성 지구에 대륙이 산화되기 시작하면서 3000종류의 암석이 출현했다. 이후 전체 45000종의 다양한 광물이 생겼기 때문에 다세포 동물이나 육상 동물이 출현할 수 있는 생태계가 형성된 것이다. 바로 광물과 살아있는 생물이 함께 진화했다(공진화)는 뜻이다. 생물이 진화한다는 사실은 배워서 다들 잘 알고 있지만 광물이 진화한다는 개념은 아직 우리 사회에 널리 알려지지 못했다.

지구의 4500종에 달하는 알려진 광물 대부분은 생명에 직간접적으로 책임이 있는 것같이 보인다. 새로운 광물 가운데 일부는 진화하는 생명체에게 새로운 환경의 생태적 지위와 새로운 화학에너지원을 제공했기 때문에 생명체는 계속해서 광물과 함께 공진화해온 것이다.

박테리아는 생명력이 가장 끈질긴 생물인데, 미국의 한 소금광산에서 2억5000만년이나 된 박테리아를 되살린 연구결과도 있다. 그 박테리아는 2억5000만년 동안 잠을 잔 것이다. 이 소식을 접하고 충격을 받았다. 죽는다는 것이 비정상적으로 느껴지기 까지 했다. 박테리아나 단세포 생물에게는 죽음이라는 것이 거의 없다. 다세포 생물들은 다세포 동물이 되면서 함께 죽기로 계약한 것이다. 다세포 생물이 죽음을 발명한 것이다. 인간의 언어, 나비의 날개 등은 죽음이 준 선물이다.

우리가 보는 바깥세상은 실재(리얼)이 아니다. 우리는 바깥을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든 세계의 모델을 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앞면 같았지만 뒷면이 앞면처럼 보이는 그림이 있는데, 이렇게 보이는 이유는 사람은 감각이 아닌 지각에 의지해 사물을 판단하기 때문이다. 지각으로 우리가 만들어낸 세계상을 보는 것이다. 우리는 바깥을 보는 것이 아니다. 우리 내부 기록을 보는 것이다. 우리는 왜 감각에 의지하지 않고 지각에 의해 사물을 인지하게 되는 것인가. 인간은 생존 확률을 높이기 위해 지각을 통해 세계상을 만들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상은 사실과 다를 수 있다.

선재동자가 발보리심 해서 구법여행을 하는 것은 지난한 과정이다. 끝까지 하는 것이다. 발보리심의 본질이 바로 이것이다. 오늘 제가 준비한 파워포인트 내용이 800장이 넘는다. 그런데 200장도 못 봤다. 저는 이런 800장정도 되는 파일을 500개 이상 갖고 있다. 적어도 선재동자나 화엄경 이야기를 하려면 이 정도의 정보를 핸들링 하고 만나야 한다. 화엄경의 핵심이 무엇인가. 중중무진의 연기,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무한 연기이다. 성기품의 불성현기(모든 중생이 불성을 갖추고 있음)라는 말도 무한한 인연으로 온다는 뜻이다. 무한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숨 막힐 정도의 내용과 정보를 만나봐야 한다. 그리고 하루 종일 다녀도 사람 하나 볼 수 없고 촛불 하나 없는 원초적인 자연 공간에 노출돼 봐야 한다.

지구에서 최고의 별 밤이 가능한 곳은 어디일까. 몽골사막, 히말라야 산맥, 남태평양의 무인도 등을 생각할 수 있다. 선택하라면 서호주를 꼭 한 번 가 보라고 말하고 싶다. 몽골을 실제로 두 번 탐사한 경험에 의하면 몽골 사막에도 구름이 많고, 히말라야 산맥도 산맥이 시야를 가리기 때문에 별의 최고 관측지는 아니다. 무인도도 바다의 습기로 시야의 투명도가 낮다. 결국 지상 최고의 별 밤은 단연코 서호주 사막이라 하겠다. 선재동자가 지금 있다면 단세포에서 척추동물까지 40억년 생명체의 진화과정을 주제로 순례를 하지 않았을까. 화엄경에서 이야기 하는 그런 세계가 아닌 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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