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 정신문화의 명품 ‘간화선’

조계혜능 증법손 서당지장 ‘심인’

도의국사 종조…태고보우 중흥조

청허와 부휴 양 법맥 ‘계계승승’

“보조지눌 정혜결사로 선풍 일신”

대한불교조계종 종헌 제2장에서는 ‘본존(本尊), 기원(紀元) 및 사법(嗣法)’을 이렇게 명기하였다. “본종은 석가모니불을 본존불로 한다. (…) 본종은 신라 헌덕왕 5년에 조계 혜능조사의 증법손(曾法孫) 서당지장 선사에게서 심인을 받은 도의국사를 종조로 하고, 고려의 태고보우 국사를 중흥조로 하여 이하 청허와 부휴 양 법맥을 계계승승한다.”

선(禪)이 한국에 처음 전래된 것은 신라말경으로, 당나라에서 유학한 구법승들이 중국에서 선법을 받아와 이 땅에 전파하기 시작했다. 당시 신라는 교학불교가 침체한 상황이어서, 선은 새롭고 활기찬 불교로 받아들여졌다. 육조대사의 제자들에게서 직접 법을 받아온 신라 구법승들은 사자산문, 희양산문, 실상산문 등 구산선문(九山禪門)을 세웠다.

현 대한불교조계종은 구산선문을 창시한 선사들을 대표하여 가지산문을 연 도의국사를 종조로 받들어 모시고 있다. 도의국사는 784년 당나라로 건너가서 강서의 개원사(開元寺)에 주석하던 서당지장 선사의 문하에서 정진하여 법을 인가받았다. 육조혜능 대사의 증법손인 지장선사는 마치 돌 속에서 아름다운 옥을 고른 듯 기뻐하면서, “진실로 이런 사람에게 법을 전하지 않고 누구에게 전하랴?”하고 법명을 ‘도의(道義)’로 고쳐 주었다.

도의국사는 ‘청규’로 유명한 백장회해 선사를 찾아가 법요를 전해받으면서 “강서의 선맥이 모두 동국으로 가는구나”라는 찬사를 받았다. 국사는 821년 귀국하여 설악산 진전사에 주석하면서, 염거선사에게 법을 전했다.

이후 중국의 대혜종고 선사에 의해 제창된 간화선이 한국에 처음 전해진 것은 보조지눌 국사에 의해서다. 보조국사는 정혜결사를 조직하여 한반도의 선풍을 일신한 분으로, 화두 참구법을 자세히 소개한 <간화결의론> 등의 저술을 남겼다. 그의 제자 진각혜심 국사는 간화선을 본격적으로 수용하여, 한국 최초의 공안 모음집인 <선문염송>을 편찬했다.

간화선이 한국에 확고히 정착한 것은 고려 말의 태고보우, 나옹혜근, 백운경한 세 선사의 힘이 컸다. 이분들은 중국으로 들어가서 임제종 선사들에게서 직접 선법을 전해받고 고려로 돌아왔다. 이 중에서도 태고보우(1301~1381) 국사는 신라 이래 구산선문의 전통을 통합하면서 조계종의 중흥조로 추앙받고 있다. 보우국사는 1346년 원나라로 건너가서 임제의현 선사의 18대 법손인 석옥청공 선사로부터 법을 받고 돌아왔다. 간화선은 보우국사에 의해 정착되면서 한국불교의 주된 수행법으로 확고히 자리잡았다.

보우국사의 선맥은 청허휴정, 부휴선수 등의 선사들에 의해 이어져 왔으나, 조선왕조의 혹독한 억불정책으로 그 세력이 약해졌다. 하지만 근세에 와서 경허성우(1849~1912) 선사와 용성진종(1864~1940) 선사가 나와 간화선풍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이분들의 법제자들이 오늘날 한국 간화선의 법맥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조계종단은 현재 25교구 본사를 비롯한 전국의 3000여 사찰을 관할하고 있다. 그 동안 이 땅에서 고스란히 보존해온 간화선이야말로 우리나라가 세계에 내놓을 수 있는 최고의 정신문화 명품이다. 물질문명의 극심한 경쟁에 시달리고 있는 한국인들과 나아가 세계인들이 간화선 수행을 통해 무명을 밝히고, 보다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시절인연이 열리도록 조계의 적손(嫡孫)인 대한불교조계종은 더한층 분발해야 할 때다.

[불교신문3220호/2016년7월2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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