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본지 前 주필 유엽스님

선(禪)은 멋이요, 생활

선객이란 도인ㆍ멋쟁이

 

‘사구’는 제도에 얽매어

형식에 붙들린 생존형태

 

‘활구’는 시간ㆍ공간성에

잘 어울려 멋지게 창조해

생활해가는 것을 이른 말…

유엽스님은 선(禪)은 멋이라는 독특한 견해를 줄곧 주장했고 불교신문 주필을 역임하는 등 뛰어난 문장가이자 달변가로도 유명했다.

 

‘선(禪)에의 초대(招待)’

불교신문 1972년 11월 5일자 

일반적으로 ‘선(禪)’ 하면 매우 어려운 것으로 이해들을 하고 있다. 그러나 ‘선’은 그렇게 먼 곳에 감춰져 있거나 어느 깊숙한 곳에 파묻혀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주변에 가까이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연재하는 유엽(柳葉)스님의 ‘선(禪)에의 초대(招待)’는 우리에게 선(禪)에 대한 진면목을 보여줄 것이다. 

맨 먼저 선(禪)이란 낱말의 뜻부터 올바르게 알아 두어야 할 것이다. 이 선(禪)이란 낱말에 대하여 온갖 풀이가 많지만 모두가 다 어긋난 수작들이다. 오죽해야 선(禪)을 닦아 가는데 열 가지 병까지 있다고 추켜들고 나서는 패거리들도 있으니 어지간히 으르대고 있음을 짐작할 수가 있다.

선(禪)이라는 말을 인도말이라느니 이것을 중화말로 옮기면 정려(靜慮)니 또는 사유수(思惟修)니 해서 더 어렵게만 풀이를 해 놓고 도리어 미궁(迷宮)으로 몰고 들어간다. 쾌도난마(快刀亂麻)격으로 우리말 속에서 찾아보면 선(禪)은 바로 ‘멋’이요 ‘멋’을 알아듣기 쉽게 풀이하자면 잘 어울린(調和된) 살림살이(生活)란 말이다

우리말에 서투른 패들은 살림살이라고 하면 얼핏 가산도구(家産道具)로 알기 쉽지만 따져보면 생활(生活)이란 말이다. 짐승들은 본능(本能)에 얽매어 목숨을 이어가는 노릇에만 그치어 이른바 생존(生存)에 머무르고 있으나 사람들은 그 본능을 발하시어 시간성(時間性)과 공간성(空間性)에 맞도록 창조(創造)해가며 생활하고 있다. 짐승과 사람과 다른 데는 짐승은 생존하고 있는 것과 사람은 생활을 벌리고 가는데 있다. 그러므로 짐승들은 된대로 주어진대로 살고 있으나 사람들은 길(道)을 만들어 길로 다니고 있다. 길로 다니는 게 사람이요 길 없이 다니는 게 짐승이다. 그러매 사람들은 살림살이(生活)를 꾸려가며 제도(制度)·문물(文物)을 창조(創造)해 가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제도문물은 변천발전(變遷發展)돼 가고 있다. 이것이 멋이며 생활(生活)이며 선(禪)이다.

선승(禪僧)들이 흔히 사구(死句)니 활구(活句)니 하는 말들을 뱉고 있다. 사구(死句)는 제도문물에 얽매어 공식화(公式化)되고 형식에 붙들린 침체(沈滯)된 생존형태(生存形態)를 이른 말이요 활구(活句)는 시간성(時間性)과 공간성(空間性)에 잘 어울리어 멋지게 창조(創造)해서 생활해 가는 것을 나눈 말이다. 이러한 쪽에서 볼 때 사람은 누구나 이미 생활해가도록 도(道)를 닦아가게 돼 있다. 사람은 누구나 다 도인(道人)이다.

요사이 종교인(宗敎人)이란 말이 생겨났으나 종교인(宗敎人)이란 말이 바로 도인(道人)이란 말이다. 도인이란 말이 바로 선객(禪客)이요 멋쟁이다. 사람이면 바로 누구나 다 종교인이요 도인이요 선객이요 멋쟁이다. 비록 불교인(佛敎人)이거나 기독교인(基督敎人)이거나 회회교인(回回敎人)이거나 하는 특수(特殊) 종교인은 아닐지라도 공간성(空間性)인 개별적(個別的) 자신의 위치와 특히 시간성을 의식(意識)하고 장래에 사는 살림살이를 꾸려가는 창조에서 사는 사람들은 누구나 다 종교인이요 도인이요 선객이요 멋쟁이다.

이런데 세상에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어떠한 특수종교 하나만을 추켜들고 거기에 종사하는 패거리들만을 종교인이라고 하는 편견(偏見)이 지배적(支配的)이다. 사람들이 이러한 편견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모두들 저만 옳다고 우기고 그 통에 세상은 시끄럽다. 그리고 나아가서는 전쟁도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참으로 엄밀하게 따져서 이 세상의 전쟁범죄자(戰爭犯罪者)를 색출고발(索出告發)하자면 그 편견에 붙들린 특수종교인들을 골라낼 수밖에 없다.

우리 불교에서는 일찍이 이러한 편견에 붙들린 패거리들을 몰아 놓고 구십육종외도(九十六種外道)라고 놓고 지적했다. 이 구십육종외도 가운데에는 불교도 그 어떠한 주장과 견해를 세워 놓는다면 또한 외도의 하나가 되고 만다. 불교도 불교라고 하면 벌써 하나의 외도(外道)다. 선(禪)을 흔히 불교의 전매특허(專賣特許)처럼 지껄이는 패도 생겨났다. 그 자도 외도다. 그자들 말대로 하면 선이 바로 생활인만큼 생활이 불교인들에게만 있는 것처럼 우기는 꼴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어찌 생활이 불교인 독점이 될 수 있으랴.

또 요사이 선을 전문으로 닦는다는 특수층(特殊層)도 생겨났다. 또 그 특수층 가운데는 깨쳤다는 도깨비도 나타났다. 이 도깨비들이 약간의 재주를 익혀가지고 곡마단(曲馬團)들이 아슬아슬한 재주를 팔고 다니듯이 망건 쓰고 귀 안 뺀 축들을 속여먹고 있다. 이것들도 또한 외도들이다.

선은 멋이다. 살림살이다. 이 누리로 더불어 한풀이 돼 멋지게 어울려 살아가는 노릇이다. 그야말로 제멋대로 걸림이 없이 누리가 나요 내가 누리로서 누리의 생각이 누리의 생각으로서 어떠한 공식이 있거나 방법이 따로 있지도 않고 곳과 때를 가릴 것도 없이 거기에 어울려 한풀이 될 수 있도록 허공처럼 가슴이 넓고 비어버린 그거다.

정려(靜慮)이니 사유수(思惟修)니 하는 억지로 끌어 붙일 수작이 다 무어냐 말이다. 정려라고 하니까 적정처(寂靜處)로 기어드는 병신들이 생기고 사유수라니까 철학한다는 정신병자들도 생긴다. 선은 멋이요, 살림살이다.

오른쪽은 불교신문 전신 <대한불교> 1972년 11월5일자 479호에 실린 유엽스님의 글.

 

유엽스님은

1902년 10월 전북 전주시 완산동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유성안(柳聖安) 선생, 모친은 김성희(金聖喜) 여사. 본관은 문화(文化). 3남3녀의 장남으로 속명은 유춘섭(柳春燮)이다. 전주 신흥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와세다(早稻田) 대학을 다니다 도쿄(東京) 대지진으로 졸업 1년 전에 귀국했다.

조선에 돌아온 후 만해스님이 발행하는 잡지 <불교(佛敎)>사에 입사했으며, 시(詩)동인지 <금성(金星)>의 간행에 참여하는 등 뛰어난 문필로 명성을 떨쳤다. 1925년 만해스님의 소개로 금강산 신계사 보운암에서 석두(石頭)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효봉(曉峰)스님의 사제(師弟)이다. 이후 장안사 지장암, 해인사 퇴설당 선원에서 교(敎)와 선(禪)을 배워 1927년 해인사 강원 강사로 후학을 지도했으며 1935년에는 금강산 신계사 봉래암에서 은사 석두스님을 모시고 정진했다. 해방 후인 1945년 8월18일 조선불교혁신준비대회에 참여, 같은 달 20일 건국청년당원 40여명과 함께 조선불교 조계종 종무원의 이종욱 종무총장을 방문해 종단 운영권을 인수했으며 1946년에는 불교중앙총무원 교무부장에 취임하기도 했다. 또한 신탁통치반대운동에도 앞장, 독립노동당의 외무위원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불교신문 서울신문 국제신보 주필, 총무원 교무부장과 해인대학(지금의 경남대) 교수 등을 지냈다. <민족문화(民族文化)>를 간행한 것은 물론 <화봉섬어(華峯蟾語)> <멋으로 가는 길> 등의 저서를 비롯해 다수의 시와 수필을 남겼다.

1975년 11월21일(양력) 새벽1시 서울 사간동 법련사에서 법랍 51세, 세수 74세로 원적에 들었다. 장례는 2일장으로 엄수됐고, 49재는 1976년 1월8일(음력 12월8일) 조계총림 송광사에서 거행됐다. 스님의 부도와 비는 조계총림 송광사에, 진영은 통영 미래사에 봉안돼 있다.

[불교신문3220호/2016년7월2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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