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 천은사 템플스테이

‘걸어라 마음아’ 주제 ‘힐링’

 

계곡물 탁족…야생화 방긋

앞만 보고 뛴 내게 주는 휴식

“물건을 잘 활용하려면 사용설명서를 알아야 합니다. 내 몸과 마음에도 사용설명서가 있습니다. 소나무 숲길을 걸으면서 잊고 있었던 ‘나’라는 사용설명서를 찾아보세요.” 지리산으로 둘러싸인 구례 천은사(주지 성문스님) 템플스테이 ‘걸어라 마음아’가 주목받고 있다. 천은사에 다녀오면 누구나 몸과 마음이 힐링되기 때문이다.

지난 17일, 장마철에 잠깐 햇살이 비친 초복날. 절 바깥에서는 삶에 지친 이들이 허덕이는데 천은사 입구 수홍문 아래에 밀짚모자를 쓴 ‘한량’들이 모였다. 천은사 금강송 숲길을 걷기 위해서다. 산행에 앞서 지도법사 법제스님은 그동안 잊었던 ‘내 몸과 마음의 사용설명서를 만들어 볼 것’을 제안했다. 숲길은 천은사를 가운데 두고 빙 둘러있는 포행길로 경사가 급하지 않아 좋다. 길 양편으로 쭉쭉 뻗은 소나무가 ‘어쩜 저리도 이쁠까’라는 감탄을 자아내고 보는 것만으로도 시원함을 준다.

“땅에 떨어진 솔잎이 양탄자같이 푹신해요.” 서울에서 온 구순옥 씨가 숲길을 걷는 내내 탄성을 지른다. 얼마쯤 숲길을 걷자, 길을 안내하던 동현 템플스테이 팀장이 신발 벗기를 제안한다. “흙과 나뭇잎으로 발바닥이 아플 것 같죠? 그래도 양말까지 벗어보세요. 오히려 편안해 질 것입니다.” 신발을 벗어 들고 걷는 숲길은 생각보다 힘들지 않다. 몇 걸음 걷자 흙과 나뭇잎의 촉감이 느껴진다. 발바닥이 땅에 닿는 순간 세상의 온갖 시름이 다 사라지는 듯하다.

한참을 걸어 소나무 밭을 지나자 계곡이 나온다.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보니 옛 선비들이 무더위에 즐겼다는 ‘탁족(濯足, 발을 씻음)’이다. 함께 숲길을 걸어온 도반들과 도란도란 담소를 나누다보니 계곡 물소리도 친구가 된다. 주지 성문스님은 “옛부터 지리산에는 천은사에서 화엄사를 거쳐 연곡사-칠불암까지 이어지는 산길뿐 아니라 수많은 수행길이 있었다”며 “앞으로 지리산 수행길을 복원해 ‘수행길 템플스테이’를 진행하겠다”고 한다.

천은사 템플스테이 ‘걸어라 마음아’는 1박 2일 체험형이다. 마음이 마음을 쓰니 수고로움만 늘어갈 뿐이다. 마음을 쉬기 위해 차(茶)와 요가, 소금 만다라, 호흡명상이 곁들어진다. 이들 프로그램은 방장선원(方丈禪院)에서 진행한다. 출가 수행자들이 정진하는 선방은 문고리만 잡아도 성불한다는 명당이다. 화엄사, 쌍계사와 더불어 지리산 3대 수행처로 불리는 천은사 선원이 방장선원이다. 몇해 전부터 방장선원이 일반인에게 개방됐다. 이런 길지에서 먹고, 자고, 쉴 수 있다는 것은 살아생전에 누릴 수 있는 복 중의 복이다.

탁족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 낮게 깔린 야생차 밭이 반긴다. 앞만 보고 뛰느라 애쓴 마음, 천천히 숨 쉬며 걷다보니 마음마저 탁 트이는 듯하다. 그렇게 몇 걸음 더 옮기면 천은사 도량에 들어선다. 천은사 숲길 걷기는 천천히 걸어도 30~40분이면 족하다. 딸과 아들을 데리고 숲길을 걸은 남양호(대전)씨가 도량 곳곳을 참배하며 합장한다. “아이들에게 부처님과의 인연을 심어주려고 템플스테이에 참가했는데 도리어 내 몸 사용설명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갑니다. 소나무 숲길과 계곡물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힐링입니다.”

[불교신문3220호/2016년7월2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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