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해사 조실 혜인 큰스님께서 원적에 드셨습니다. 원력의 한 생애를 다 마치시고 호기롭게 스님은 떠나셨습니다. 두려울 것 없다, 무엇이 두려우냐 하며 스님은 훠이훠이 가셨습니다. 떠나는 길이 어찌 그리 호기로운지 그 힘찬 발걸음을 나는 한참이나 되새겨야 했습니다.

스님은 몸져 누우시고 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 몸이 병들었으니 이제 이 세상에 남아 있어야 할 일이 없다.” 스님의 삶은 원력을 실천하기 위한 삶이었지 살기위한 삶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생명이 붙어 있으니 산다는 말은 스님에게는 의미가 없는 말이었습니다. 스님은 스스로 곡기를 끊으셨습니다. 제자들에게 곡기를 들이지 말라 말씀하시고 스스로 고통과 주검을 마주보는 일에 전념하셨습니다. 그래도 염려스러워 죽이라도 끓여오는 제자를 향해 싸늘한 눈빛을 던지며 거부하셨습니다.

열반을 얼마 앞두고 부터는 말씀도 닫으셨습니다. 제자들은 이제 스님께서 말씀을 할 기력조차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보살님 한 분이 허겁지겁 달려와 스님을 붙잡고 엉엉 울며 스님, 스님, 하고 외치자 스님은 눈을 번쩍 뜨고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울지마라. 내 앞에서 울지마라.” 말씀을 잃었다고 생각했던 제자도 놀라고 울며 매달리던 보살님도 깜짝 놀라고야 말았습니다. 그리고 스님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눈을 감으셨습니다.

나는 오래 전 스님의 법문을 들으며 스님은 참 난만하신 분이다, 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말씀의 그 우렁참 그리고 진실해 투명한 어투들이 때로는 웃음으로 때로는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임종에 즈음한 스님의 모습에서는 그 난만함이 선사의 거침없는 기개로 변해버렸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앞에 죽음이 어찌 장애로 남을 수가 있겠습니까.

“병원에 데리고 가지 마라. 병원에 가 나을 병이 아니다.” 의연함. 그리고 제자와 보살을 놀라게 하던 그 기개. 죽음인들 어찌 스님에게 공손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하늘에서 스님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습니다.

[불교신문3217호/2016년7월13일자]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