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통일 염원 담긴 ‘비보사찰’

한반도 지도와 흡사한 사찰 터 

신라말 도선국사(道詵國師, 827~898)는 풍수음양설의 대가이다. 배산역수(背山逆水)의 땅에 절을 세우고 불상을 앉히면 진안국가(鎭安國家)하고 국조(國祚)번영할 것이라는 비보설을 주창한 분이다. 특히 도선국사의 ‘삼암사 비보설(三巖寺 裨補說)’은 유명하다.

고려 제찰사(提察使) 박전지(朴全之, 1250-1325)가 찬한 <영봉산 용암사 중창기>(靈鳳山龍岩寺重創記)에 따르면, 도선국사는 지리산 성모천왕(聖母天王)으로부터, “삼암사를 창건하면 삼한이 합쳐져 일국(一國)이 되고 자연히 전쟁이 종식되리라”하는 비기(秘記)를 은밀히 부촉받았다고 한다. 이에 따라 신라 헌강왕(875~884) 연간에 도선국사가 직접 삼암사를 창건하였으니, 그 삼암사란 지금의 ①순천 조계산 선암사 ②광양 백계산 운암사 ③진주 영봉산 용암사가 그곳이다. 특히 진주 이반성면 용암사는 절집이 100칸이나 되고, 대장경 인영본 600상자를 대장전에 봉안했으며, 천태종 무외국통(無畏國統)이 하산소(下山所)로 지정받은 큰 절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1100여 년이 지난 오늘날 3암사를 돌아보면, 선암사, 운암사는 아직도 절이 건재하고 있지만, ‘영봉산 용암사’는 흔적 없이 사라지고 없다, 절터는 용암마을과 넓은 밭으로 변해 있다. 이는 마치 솥의 발이 하나 결손된 것과 같이 한쪽으로 기울어져 ‘삼암사 비보설’이 결손 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한반도는 남과 북이 갈려 있고, 북한은 최근 무수단 미사일 발사에 성공, 기고만장하다. 우리 정부는 외교적, 군사적으로 그들의 도발을 억제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독재자의 마음을 잡기에는 부족한 것이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종교적 대응과 풍수설의 비법까지 총동원해야 될 것으로 본다. 불교계 일각에서는 그 옛날 도선국사의 삼암사 비보설에 입각해, 용암사를 중창하고 훼손되어 있는 문화재도 정비하고 보호하자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북한이 아무리 강성으로 나온다 할지라도 부처님의 위신력 앞에서는 스스로 물러 설 것이다.

현재 진주시 이반성면 영봉산(390m) 용암사지 현황을 살펴보면, 큰 절터는 형상변경 금지구역의 넓은 밭으로 되어 있다. 큰 절터에서 400m 떨어진 암자 터에는, ①보물 제372호 용암사지 승탑(부도), ②경남지방유형문화재 제4호 영암사지 석불좌상, ③비지정문화재 영암사지 비석 귀부 및 이수, 용암사지 석등 부재 용암사지 5층 망배탑 기단과 석재 등이 남아 있어 번창했던 용암사의 옛날을 말해주고 있다. 반면 귀중한 문화재가 있는 암자 터는 주변 환경이 불결하기 그지없고, 관리도 소홀함이 발견되고 있어 많은 분들의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이 절터들은 임진왜란 시 북관대첩(北關大捷)으로 유명한 정문부(鄭文孚1565~1624) 장군 후손들의 세거지가 되면서 해주 정씨 문중 소유가 되었다. 암자 터에는 장덕재(藏德齋)라는 재실까지 건립되어 있다. 이 암자터 1931㎡(584평)의 지적도를 열람했더니 놀랍게도 한반도 지도와 똑같은 모양이 나타났다. 1000여 년 전 신라 때에 암자를 건립하면서 어찌 한반도와 똑 같은 모양의 터를 잡았단 말인가!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는 마치 부처님께서 용암사를 중창하라고 게시하는 것만 같아 용암사를 중창하고 싶은 사명감이 더욱 솟구친다.

비보사찰 용암사를 중창하여 남북통일을 기원하는 염불소리가 저 북쪽까지 울려 퍼지게 만들고 스님들이 거주하면서 귀중한 불교문화재도 보호하도록 만들자. 그것이 전쟁 없는 통일을 염원하는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필연적인 사명이라 생각한다. 여러 불자님들의 많은 관심 있으시기를 기대해 마지않는다.

[불교신문3216호/2016년7월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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