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불상과 TV 속의 불상 중에서

어느 것이 붓다의 참모습인가?

이 작품을 보고 있으면,

으레 이러한 화두는

생기게 마련이다

또한 실제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비춰진

자신을 생각해 보게 된다

 

 

가끔 불상을 보면서 그 참모습에 대해 궁금할 때가 있다. 불상을 만든 사람들의 붓다에 대한 생각, 즉 불신관(佛身觀)이 어떻게 투영되었을까 하는 것은 불상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한번쯤 생각해 봤을 것이다. 불신관이 변함에 따라 석가모니불, 미륵불, 아미타불, 비로자나불 등이 만들어졌으며, 지금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각자의 붓다가 존재한다는 관념까지 생겨나게 되었다. 그러나 불신관이 바뀐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그것을 조형적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올해는 고(故) 백남준(白南準, 1932~ 2006) 작가의 10주기다. 그를 추모하기 위해 서울시립미술관에서는 백남준 10주기 추모전 ‘백남준∞플럭서스’가 열리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그는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으며, 그를 생각하면 화려한 색감과 아름다운 조형이 복잡하게 뒤엉켜 있는 작품을 연상하게 한다. 아니 텔레비전을 포개어 쌓아올린 모습이 더 익숙하게 기억된다. 이 전시는 그가 비디오 아트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는데 중요한 영향을 미쳤던 국제적인 전위예술운동인 플럭서스(Fluxus)를 조명한 것이다.

백남준이 남긴 비디오 아트 중에서 최고의 걸작은 동양정신의 축인 불교와 붓다를 주제로 한 ‘TV부처’다. 1968년 뉴욕 보니노(Bonino) 갤러리에서 처음 출품한 이 작품이 서양 사람들의 극찬을 받으면서 이후 ‘TV를 위한 선’ 등 붓다를 주제로 한 작품이 시리즈로 나왔다. 심지어 1974년 독일의 쾰른현대미술관에서 열렸던 전시에서 그는 법의를 걸치고 붓다를 대신하여 전시실 중앙에 앉아 있었다. 즉 살아 있는 붓다라는 불신관을 가지고 자신이 붓다를 대신한 것이다. 물론 그가 스스로 붓다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며, 사람들의 마음속에 각자의 붓다가 존재한다는 불신관을 행위예술로 연출한 것이다.

‘TV부처’에 대한 여러 가지 해석이 있지만, 나는 이 작품이야말로 백남준의 불신관을 가장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TV부처는 직사각형의 큼직한 좌대 위에 올려놓은 실제의 불상과 폐쇄회로를 통해 텔레비전 브라운관에 비춰진 그 불상을 서로 마주보게 배치한 것이다. 작품에 사용된 재료(오브제)라고는 불상, TV 브라운관, 캠코더, 좌대가 전부다.

TV부처에서는 일반적으로 그의 작품에서 연상되는 현란함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으며 정적인 분위기만 나타난다. 어두운 색감의 불상과 차가운 느낌의 텔레비전이 주는 적막한 분위기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불상이 미술관이 아니라 고즈넉한 산사에 봉안되어 있는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키게 한다.

불상이 실제로 선정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브라운관에 나타난 그의 모습을 단순히 시청하고만 있는 것인가? 실제 불상과 TV 속의 불상 중에서 어느 것이 붓다의 참모습인가? 이 작품을 보고 있으면, 으레 이러한 화두는 생기게 마련이다. 또한 실제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비춰진 자신을 생각해 보게 된다. 그리고 백남준과 그의 불신관도 기억하게 한다.

[불교신문3214호/2016년7월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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