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몇 년 전만도 평일 낮 도심사찰에는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이 도량 곳곳에서 한가한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바쁘게 움직일 일 없고, 서울 한복판에 가볼만한 공원도 마땅찮은 노인들이 점심 한나절 보내기에 사찰만한 곳이 없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도심 속 천년고찰의 점심풍경이 이채롭다. 젊은 직장인들 이른바 ‘넥타이 부대’들이 북적이는 추세다. 빽빽한 빌딩숲 콘크리트 건물에 갇혀있다시피 한 직장인들은 점심 한때라도 가벼운 산책, 짧은 명상을 통해 잠시나마 마음에 휴식을 주기 위해서다.

서울 조계사 인근도 예전과 달리 고층빌딩이 앞다퉈 생기면서 직장인들도 늘어나 조계사를 휴식처로 삼는 직장인들이 갈수록 많아지는 형국이다. 한국의 뉴요커들이라 불리는 강남파 직장인들도 예외는 아니다. 봉은사에는 아예 점심을 사찰에서 해결하고 ‘봉은사표 커피’를 마시며 포행하는 이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 실정이다. 조계사 봉은사 뿐만 아니다. 법정스님은 물론, 백석 시인의 러브스토리로 유명한 길상사도 차 마시고 포행하는 직장인들과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들로 점심시간이 분주하고, 깊은 산사의 정취가 만연한 서울 화계사 역시 업무와 더위에 지친 직장인들의 쉼터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도심사찰의 이같은 변모와 더불어 전국 유명 사찰이나 총림, 교구본사에도 주말이면 종교를 떠나서 가족들과 산책하고 연인과 데이트하기 위한 목적으로 도량을 찾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불공을 드리거나 기도하고 수행하기 위한 명확한 이유가 없더라도, 그저 사찰에서 거닐고 사진 찍고 차 한잔 마시기 위해서 사찰을 찾는 것이다. 이들이 사찰에 소속된 신도나 불교를 잘 아는 불자가 아니라는 것에 착안한다면, 사찰이나 스님이 이들에게 해줄만한 ‘서비스’는 무궁무진하다. 사찰음식을 맛보거나 차 한잔을 음미할만한 프로그램이 구비된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실제로는 이들이 쉬다 갈만한 공간조차 턱없이 부족한 현실이다. 유모차를 끌고 온 젊은 부부들이 아이를 눕혀놓고 다리 뻗고 쉴만한 ‘사랑채’, 연인들이 웃고 떠들면서 편안하게 대화를 나눌만한 벤치, 직장인들이 잠시 앉아 고요한 명상이라도 즐길 수 있는 ‘명상처’ 등이 절실하다. 이왕이면 명상을 지도하거나 차 한잔 내려줄 스님이 자리를 잡고 있거나, 불교를 잘 모르는 이들도 손쉽게 참여할 수 있는 불교문화 프로그램까지 가동된다면 금상첨화다.

본지 취재에서 만난 강남의 한 직장인이 “절은 신도들만 들어가는 곳인 줄 알았는데, 일반인도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다”고 말했다. 사찰과 스님들이 어떠한 포교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사무치게 만드는 대목이다.

[불교신문3214호/2016년7월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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