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예프 발레단의 경우는

나라의 안정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보여준 사례다

예술도 절대 현실을

벗어나지 못한다

정치가 안정되어야 경제가

발전하며, 그 경제를 바탕으로

공연 예술이 꽃을 피울 수 있다

정쟁이 심한 우리나라에서

특히 명심해야 할 일이다

 

아는 사람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키예프 발레단이 왔는데 구경하지 않겠느냐는 연락이었다. 아니 키예프 발레단이라니, 제정 러시아 시절 ‘러시아 오페라 하우스’로 불리던 국립극장의 전속 발레단이 아닌가? 키예프 극장은 그 당시 이미 모스크바의 볼쇼이 극장과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마린스키 극장과 함께 러시아를 대표하는 3대 극장이었다. 더욱이 위대한 건축가 쉬트롬에 의해 설계된 키예프 극장이 개관한 1867년 10월27일은 우크라이나 문화예술이 시작된 역사적인 날로 기억되고 있다. 전설적인 무용수이자 안무가 바슬라프 니진스키와 서지 니파가 활동했던 곳. 런던 국제 댄스 페스티벌 금상 수상, 프랑스 댄스 아카데미 최고상 수상에 빛나는 세계 최고 수준의 발레단. 키예프 발레단의 새해 첫 공연을 보기 위해 반 년 전에 표를 예매하고, 우크라이나의 키예프까지 날아가야 했던 곳. 그 키예프 발레단의 공연을 서울에서 본단 말인가? 나의 대답은 ‘예스’였다.

레퍼토리는 차이콥스키의 대표작 ‘백조의 호수’와 ‘잠자는 숲속의 미녀’였다. 그런데 공연장이 좀 의아했다. 키예프 국립 발레단의 한국 투어라면 당연히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이나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정도를 예상했는데, 서울의 구 단위 공연장과 지방 공연장이었다. 모스크바에서 차이콥스키 발레의 웅장한 규모를 직접 보았던 나로서는 과연 그 공연을 소화해낼 수 있을까 의문이 갔다.

공연장에 갔더니 역시나였다. 우선 오케스트라가 없었다. 오케스트라와 무용수가 완벽하게 호흡을 맞추어가며 펼쳐가야 하는 공연이 녹음에 의존하고 있었다. 사전 녹음된 음악에 무용수들이 쫓아가는 식으로 공연이 진행되었다.

무대 배경은 천에 그린 것을 걸어 놓았다. 그것도 무대가 좁으니 규모를 줄여 그린 것이었다. 좁아진 무대에서 평소 공연하던 대로 춤을 추니 자칫 다른 무용수와 충돌할 뻔한 아슬아슬한 풍경도 연출되었다. 무용수들의 사기가 떨어져서 였을까? 춤의 끝처리가 미숙해 비틀거리는 것도 눈에 띄었다.

세계 정상의 발레단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그들은 여비가 부족해 모텔에서 잤다고 한다. 그것도 한 방에 여러 명이 동숙했다고 한다. 그러니 제대로 된 컨디션이 유지될 수 있었겠는가? 서울은 좌석은 채웠지만 지방 공연은 자리를 많이 비운 채 막을 올려야 했다고 한다.

이유는 우크라이나의 경제 사정에 있다. 구(舊) 소련의 해체 이후 독립한 우크라이나는 정정불안이 이어졌고, 유가 하락 등으로 현재 경제 사정이 좋지 않다. 국내에서 흥행이 어려워지자 키예프 발레단은 해외 투어로 어려움을 타개해 나가고자 했다. 그러나 모셔가는 것과 자진해서 가고자하는 것은 그 경우가 다르다. 엄격한 시장의 논리가 적용되는 공연 예술에서 수요와 홍보가 따르지 않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의상은 훌륭했다. 우크라이나 공연 때와 똑같은 의상은 제정 러시아 시대 궁정의 화려함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또한 무용수들은 아름답고 황홀했다. 부족했던 광고에도 용케 알고 찾아온 서울의 관객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로 무용수들을 격려했다. 관객들이 해줄 것은 그것밖에 없었다.

키예프 발레단의 경우는 나라의 안정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보여준 사례이기도 했다. 예술도 절대 현실을 벗어나지 못한다. 정치가 안정되어야 경제가 발전하며, 그 경제를 바탕으로 공연 예술이 꽃을 피울 수 있다. 정쟁이 심한 우리나라에서 특히 명심해야 할 일이다.

[불교신문3213호/2016년6월2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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