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SNS를 통해

수백명의 사람들을 상대로

부처님 법을 전할 수 있다는 것에

스스로 위로를 삼는다

 

근사한 사찰 주지는 아니고

유명한 스님도 아니지만

이만하면 승려가 되어

법을 펼치는데 부족함이 없다 

포교당에 살면서 비닐하우스 도량에는 매일 가게 된다. 행복이와 우리가 있어 사료를 챙겨줘야 할 뿐만 아니라 작은 집이라도 짓고 평생 살 도량인지라 땅을 밟아 줄 일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깨끗하고 쾌적한 환경을 선호하는 탓으로 도심의 삶을 원하지만, 나는 늘 시골이 좋다. 특히 비닐하우스 도량은 사방 5리 안에 인가가 없어, 한적하고 평화롭다. 한번씩 도량에 가서 예초기로 풀을 치고 난 뒤, 땀에 흠뻑 젖은 몸을 밖에서 발가벗고 씻어도 흉볼 이 하나 없다. 밖에 푸성귀를 가꾸다가 아랫배가 살살 아프면 삽 한 자루 들고 산으로 가서 일을 보아도 거리낌 없으니 좋다.

물론 불편한 점도 있다. 우선, 비닐하우스 도량은 마을과 멀어 전기선은 들어오지만 전화선이 안 들어온다. 그러니 인터넷선도 들어올 리 없다. 전화국에 몇 번을 요청했지만, 전신주를 따로 세워야하기 때문에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인터넷선을 연결해 줄 수가 없다고 한다. 그러니 휴대용 무선 와이파이를 써서 메일도 보내고, 간단한 인터넷 검색이나 SNS((Social Network Service) 포교를 하게 된다.

누군가 비닐하우스에 사람이 산다고 신고를 하는 바람에 도량에서 쫓겨나다시피 지금의 포교당을 개원했지만, 곧 비닐하우스 도량 자리에 작은 요사채를 지을 참인지라 여전히 느려터진 무선 와이파이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을 하며 살고 있다.

포교당이 면 단위의 작은 시골인지라 찾아오는 불자님이 없다. 하루 종일 있어도 예불과 기도를 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 외에는 딱히 시간 보낼 거리가 없다. 그래도 SNS를 통해 하루에 수백 명의 사람들을 상대로 부처님 법을 전할 수 있다는 것에 스스로 위로를 삼는다. 내 글에 ‘좋아요’를 눌러주는 사람만 하루에 수백 명이기 때문이다.

인터넷이 일상화된 시대에 살면서 국내외를 아울러 하루에 수백 명의 사람들이 공감하는 글을 통해 불법(佛法)을 전하는 이는 여전히 드물다. 그러고 보면 나는 이미 세계에서 가장 큰 법당을 가진 법사다. 외형적으로 근사한 사찰의 주지는 아니고, 수십 명을 대동하고 다니는 유명한 스님도 아니지만, 이만하면 승려가 되어 법을 펼치는데 부족함이 없다. 오히려 차고 넘치는 SNS세계를 가진 것이리라.

세계에서 수십 명의 불자님들이 부처님오신날 등을 달고, 기도에 동참해주시니, 늘 감격스러운 신심을 맛보기도 한다. 여기에 큰 외형적 불사의 욕심마저 갖는다면 아마 진짜 욕심이 될 것이다. 그러니 자연과 벗 삼아 착한 심성 닦으며, 전할 수만 있어도 출가한 승려 시인으로서의 역할은 하고 사는 일일 것이다.

시골의 일상 하나를 소개하면 이렇다. 매일 비닐하우스 도량으로 차를 몰아 가다보면 일차선 농로에서 자주 만나는 게 경운기다. 마을에 노부부의 경운기를 만날 때가 있다. 할아버지께서 경운기를 운전하고, 할머니는 뒤에 앉아 함께 밭으로 간다. 느리기는 이루 말할 수 없지만, 이럴 때는 경운기를 앞질러 갈 생각이 없다. 경적도 울리지 않고 시골길을 조용히 뒤따라간다. 혹시나 차 때문에 갓길로 경운기를 피해주려다 사고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작정 1㎞든, 2㎞든 탈탈거리는 경운기를 따라가다 보면 느리게 간다는 것이 더없이 정겹다. 토막잠 같던 피곤한 삶이 느긋한 휴식을 끝낸 뒤 산새소리 들으며 기지개를 펴는 듯싶다.

[불교신문3213호/2016년6월2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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