⑤ 인도 부다가야

인도불교 4대 성지 중 으뜸

세계유산 마하보디사원 등

깨달음과 관련 유적지 다수

세계 각국의 불자들 맞이해

부다가야를 상징하는 높이 52m 규모의 마하보디 대탑.

 

부다가야는 인도 북동부에 위치한 비하르(Bihar)주 가야(Gaya)시에서 약 11km 떨어진 곳에 있다. 부처님께서는 구도의 일념으로 부귀영화를 버리고 출가한 이래 6년간 모진 고행을 하셨음에도 올바른 깨달음을 얻지 못하셨다. 육체를 괴롭히기보다는 육체를 맑게 함으로써 마음의 안정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부처님께서는 네란자라 강으로 내려가 목욕을 하고 수자타가 공양을 올린 유미죽으로 체력을 회복했다. 이후 보리수 아래서 앉아 선정에 들어 마침내 깨달음을 성취했다. “아! 번뇌는 모두 사라졌다. 번뇌의 흐름도 사라졌다. 이제 더 이상 태어남의 길을 밟지 않으리니, 이것을 번뇌의 마지막이라 말하리라.” 설산에서 6년 고행을 버리고 선정에 들어 싯다르타에서 붓다가 되신 부처님.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신 성불(成佛)의 땅, 그곳이 바로 부다가야다. 

부다가야의 상징은 부다가야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마하보디 사원과 대탑이다. 마하보디 사원은 기원전 3세기 경, 부처님 성지를 참배한 아쇼카 왕에 의해 세워졌다. 인도 통일을 이룬 아쇼카 왕은 통일을 이루기 위한 수많은 전쟁에서 많은 병사들을 죽였다. 야사라는 스님을 통해 모든 생명의 귀중함과 평등함을 깨닫게 됐고, 이후 참회의 마음을 담아 인도 전국에 8만4000기의 탑을 세우고, 부처님 성지마다 사원을 건립했다. 아쇼카 왕은 금강좌 위에 사원을 세웠는데 이 사원이 마하보디 사원의 시초다. 사원은 아쇼카왕 이후 5~6세기의 굽타왕조 시대를 거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 천축국으로 떠났던 중국 법현법사와 현장법사의 기록에 따르면 마하보디 사원은 409년과 637년 사이에 세워진 것으로 추측된다. 이후 1158년 인도를 침략한 이슬람 세력에 의해 마하보디 사원은 위기를 맞는다. 당시 이슬람 세력은 닥치는 대로 불교성지를 파괴했고, 사원 역시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하지만 사원을 파괴하라는 왕의 명령에 맞선 병사들의 지혜로 참화를 피할 수 있었다. 왕의 명령을 받은 이들은 마하보디 사원 주변에 흙을 쌓고, 대탑 앞에 벽을 만들어 건축물을 감춰버렸다. 이후에도 마하보디 대탑은 숱한 재난으로 고초를 겪다가 19세기 영국인들에 의해 재건됐다. 지난 2002년 사원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부처님께서 경행을 하자 연꽃이 피어올라 부처님 발을 받쳐주었다는 연꽃대좌.

마하보디 사원의 얼굴은 높이가 52m나 되는 마하보디 대탑이다. 피라미드형 9층탑인 대탑은 3km 떨어진 곳에서도 보이는 웅장한 규모를 자랑한다. 사면에는 대탑을 축소한 형태의 작은 탑이 사천왕처럼 위용을 뽐내고 있다. 남쪽면의 중앙에 탑 안으로 들어가는 내실이 있고 긴 복도를 지나면 부처님이 모셔진 불당이 있다. 현재 모셔진 불상은 13세기 경 작품으로 오른손을 늘어뜨린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다. 이는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기 직전 스스로의 인내력으로 마왕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손으로 땅을 가리키신 것을 형상화한 것이다.

마하보디 사원 서쪽 담장 곁에는 보리수가 위풍당당한 모습을 자랑하고 있다. 현장법사의 <대당서역기>에는 “해마다 여래의 열반일이 되면 나뭇잎이 모두 떨어지고 시일이 지나면 다시금 나뭇잎이 피어난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25m 정도 높이의 보리수는 부처님께서 정각을 이루실 당시 것이 아니라 보리수의 손자뻘 되는 나무다. 부다가야의 보리수가 이슬람의 박해로 잘려져 나가자 스리랑카 아누라다푸라에 있는 보리수 묘목을 옮겨다가 심은 것이다. 부처님 당시는 보리수는 아니지만 오늘날에도 많은 불교국가에서 온 수행자들과 불자들은 보리수 아래에서 수행하며 부처님의 길을 따르고 있다. 보리수 옆에는 부처님께서 앉아서 수행했다는 금강좌(金剛座)가 있다. 금강좌에는 아쇼카 시대의 양식을 전하는 기하학무늬가 조각돼 있다. 원래 금강좌는 마하보디 사원 내에 모셔져 있었고 현재 금강좌는 굽타왕조 초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마하보디 사원 복원 당시 금강좌 기단부에 새겨진 여러 형상들은 해체되고 그 좌대 부분만이 남아 전하고 있다. 부처님께서 금강좌에서 깨달음을 얻은 후 첫 발을 내딛었던 곳은 발자국이 남아 불족석(佛足石)이라는 이름으로 전해지고 있다.

용왕이 코브라를 시켜 부처님을 비로부터 보호했다는 무칠린다 연못.

이와 함께 마하보디 사원에는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신 후 49일간 선정에 잠기셨던 7선처(七善處)가 남아 있다. 부처님께서 천안통을 얻은 곳에 위치한 아니미샤 로차나 스투파와 시방세계의 모든 불·보살에게 화엄경을 설하셨던 보리도량, 보리수 바로 옆으로 부처님께서 경행(徑行)을 하자 연꽃이 피어올라 부처님 발을 받쳐주었다는 경행처의 18개 연꽃대좌, 오색광명이 보리수를 비추었다고 전해지는 라트나그라하 사당, 용왕이 코브라를 시켜 부처님을 비바람과 천둥으로부터 보호했다는 무칠린다 연못, 전법을 할 것인가를 고민했다는 라자야타나 나무와 선정에 드셨던 부처님께서 브라만에게 <법구경>을 설했다는 반얀(아자필라 니그로다) 나무 등 부처님께서 일곱 번 자리를 옮기시며 선정에 들었던 장소도 인파들로 붐비는 곳이다. 현재도 많은 수행자들과 불자들이 찾아와 다양한 언어와 수행법으로 치열하게 정진하며 부처님 진리를 새기고 있다.

이밖에도 부다가야에는 부처님의 깨달음과 관련된 유적지가 곳곳에 남아 있어 순례자들을 맞이하고 있다. 중국과 티베트, 태국 등 불교국가에서 건립한 수많은 사원과 부다가야 박물관을 비롯해 부처님께 유미죽을 공양했던 수자타 집터, 부처님께서 6년간 고행을 하셨던 전정각산(前正覺山), 부처님께서 그림자를 남겨두고 떠났다고 전해지는 유영굴(留影窟) 등 부다가야를 대표하는 다양한 불교 유적들을 만날 수 있다.

자료협조= 대승투어

[불교신문3213호/2016년6월2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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