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교구 관음사 허운스님

관음사 주지 허운스님은 한국불교문화사업단 사무국장과 총무원장 신도시포교종책 특별보좌관 등 종단 주요 소임을 역임했다. 이같은 스님의 종무행정 능력을 바탕으로 교구운영 원칙과 철학이 잘 어우러져 관음사가 보다 안정적인 교구로 거듭날 것으로 보인다.

지난 3월 조계종 23교구장으로 취임한 제주 관음사 주지 허운스님은 “지금 한창 ‘교구장’이라는 옷을 입는 중”이라고 했다. “제대로 실행하지 못하고 선언만 하는 ‘양치기 소년’같은 주지가 되고 싶지 않다”며 아직 시작 단계인 여러가지 교구 현안에 대해 성급하게 거론하지 않았다. 주지로 임명되기 두달여 전인 1월 말 제주도에 ‘걸망’을 푼 스님은 오자마자 ‘폭설운력’에 여념이 없었고 설 명절 쇠고 진산식 하고 초파일 치렀더니 지금에 이르렀다고 했다. 스님의 교구운영 원칙은 명료했다. 종헌종법 테두리 안에서 대중공의를 거쳐 대중합의를 통해 결정한다는 것. 스님은 “슈퍼맨 같은 주지는 의미없다”며 “우유부단해 보이고 우왕좌왕 할지언정 주지와 국장 스님들, 그리고 신도조직이 각자의 자리에서 소신껏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5월17일 만난 허운스님은 무심한 듯 하면서도, “지금 제주엔 달달한 귤꽃향이 가장 좋을 때”라며 정겹고 편안한 말도 아끼지 않았다. 종무실에서 만난 국장 스님들은 한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들 말을 아주 많이 들어주세요. 일할 맛이 난다고 할까요?” 

-교구의 운영에 있어 가장 중요한 원칙은 무엇인가.

“무엇이든 대중공의를 여법하게 얻어내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관건이다. 교구종회나 운영위원회, 임회와 같은 기구를 통해서 대중적 합의를 거쳐야 한다. 물론 종헌종법의 울타리 안에서 총무원이 지향하는 사회적 활동에도 발맞춰 가고, 제주도라는 지역 특유의 입장도 고려하면서 말이다. 관음사는 최근 몇 년간 송사에 휘말리면서 각종 불미스러운 사건도 많았다. 앞선 선배 스님들이 굉장히 많은 사안을 잘 수습했지만, 아직도 해야 할 숙제가 많이 남아있다.”

-풀어야 할 과제 중 ‘교구화합’이 제일 우선돼야 할 것 같다.

“하루아침에 확 달라질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은 빠른 정상화를 원한다. 서두를 것 없이 조금 더 기다려주고 서로간에 관용을 베풀고 화합한다면 무엇을 이루지 못하겠나. 교구장으로서 대중 스님들과 신도들을 보듬어서 같이 부둥켜 안고 가겠다. 과거를 헐뜯고 비판하면 무엇하나. 이어달리기를 한다는 심정으로 여법하고 충실하게 4년을 이끌어가고 싶다.”

-일부 신도들은 관음사에 대한 불신도 없지 않을 것 같다.

“신도들 요구사항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살펴보고, 불교의 가르침에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면 잘 받아 안을 작정이다.”

-교구장으로서 남다른 소신이 있는지 궁금하다.

“연습없이 이제 막 실전에 들어온 사람이다. 교구장 역할엔 이미 앞선 어른 스님들께서 토대를 닦아놓은 ‘지침’이 있다고 본다. 그 지침을 몸에 익혀나가야 할 것 같다. 지금 한창 그 옷을 입고 있는 중이다. 지금까지 본사의 주지 스님들은 어떻게 살아왔나, 교구운영에 관한 종헌종법은 어떻게 규정되어 있고 지역 도지사나 기관장들은 우리 교구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 여러가지 살피면서 총무원에 행정자문도 구하고 오랜 신도님들을 만나 살림운영에 대한 자문도 구하고 있다. 멀리 가려면 함께 가야 한다는 원칙에 공감한다.”

-지난 3월 취임 진산식에서 만백 종호스님을 조실로 모셨다.

“관음사가 본사의 사격(寺格)을 갖추기 위해 오랫동안 계획한 일이다. 교구의 어른인 조실 스님이 자리잡고 계시면 본사의 결이 살고 어른 스님으로부터 지혜를 배울 수 있다. ‘경험이 장로고 경험이 원로’라는 소신을 갖고 있다. 어른을 모시는 것이 관음사에는 더 큰 축복이다. 조실 스님의 자비와 지혜가 관음사 발전에 좋은 거름이 되리라 확신한다.”

-관음사가 다른 본사에 비해 규모가 작다.

“본사에 7직이 구비돼야 하는데, 현재 관음사는 7직 스님들이 있다고 해도 스님들 방사가 부족한 실정이다. 그렇다고 여러가지 일을 겸직하는 시스템은 바람직하지 않다. 스님들이 ‘전공’에 걸맞게 1개 직에 집중해서 수행하고, 주지는 이를 적극 외호해줘야 한다고 본다. 포교와 사회 분야가 당장 급해서 능력있는 스님들을 국장으로 모셨지만 아직 종무행정 시스템을 완벽하게 갖추지 못했다. 제주도 개발규제가 상당히 엄격하고, 제주도가 국제화됐다고 하루아침에 ‘국제적인 도량’이 되기도 어렵다. 큰 불사를 하고 많은 인원을 불러들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말사와 잘 협력해서 역할을 분담하고 종무행정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유지시키는 것이 더 시급하다고 본다.”

-이 시대 불교의 역할 내지 불법(佛法)의 필요성은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절집 바깥세상이 변화무쌍하게 달라지고 있다고 해도, 외면하거나 등한시해선 안된다. 스님들은 언제나 변화의 현장에서 변화의 중심에 서 있어야 한다. 대다수 스님들은 출가하면서 자비심과 구도심을 기본적으로 안고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세상과 소통하면서 시대정신이라는 그릇에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를 담아내야 하는 임무를 갖고 있다고 본다. 자비로운 몸짓으로 쉼없이 지혜로운 삶을 살다보면 중생들은 다가오기 마련이다.”

-제주도 불자들만의 독특한 성향이 있는가.

“대부분 교구본사들은 마을이나 도심과 떨어져 산속에 있다보니 물리적인 거리감이 있을 수밖에 없지만 관음사는 다르다. 차타고 5분 10분만 올라오면 관음사다. 그래서 제주도 분들은 절에 자주 올라온다. 오셔서도 많은 이야기를 한다. 신도들과 거리감이 없다보니 신행단체도 다양하게 운영되고 있고, 본사에서는 보기 힘든 합창단도 잘 가동되고 있다. 좋은 장점이다.”

-신도들을 위해 고안한 신행·포교 프로그램이 있다면.

“법회기획단을 꾸려서 흥미롭고 재밌는 대중법회를 만들어볼 계획이다. 스님 혼자 법상에 올라가서 훈화말씀같은 긴 법문을 하는 법회는 지양하고, ‘무한도전’이나 ‘1박2일’ 등 TV예능 프로그램처럼 신도들이 직접 주제를 정해서 밖에서 서성이는 불자들까지 끌어들이는 것이다. 이같은 법회기획단 운영과정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불자들이 무엇을 원하고 불교로부터 무슨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지도 파악할 수 있으리란 생각이다.”

허운스님은 “출가수행자인 스님이 이 시대 사람들에게 스승임은 분명하지만, ‘교주’나 ‘슈퍼맨’이어서는 곤란하다”고 거듭 말했다. “모르니까 자주 묻는 것이고, 능력이 안되니까 대중 스님들과 일을 나눠서 하자는 것”이라며 우스갯소리로 말하지만, 스님은 여법한 종무행정과 화합하는 대중살림이 교구장으로서 지켜야 할 원칙임을 줄곧 이야기했다.

제주 출신 아니면 텃세?

이젠 옛말…국제도시 변모 

“어디든 마찬가집니다. 새로운 주지가 오면 신도들은 호기심 반 경계심 반으로 봅니다.” 제주도 출신이 아니면 관음사 주지로 살기 힘들다는 말이 세간에 돈다고 하자, 스님은 이같이 말했다. “신도들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제주도에 친숙해져야 한다. 먼저 다가가서 자주 만나고 이야기도 들어보고….”

제주도 사람들이 비교적 무뚝뚝하고 육지 사람들을 불신한다는 얘기도 풍문일 뿐이다. 국제화 세계화의 한가운데 서 있는 제주도에 외국인들이 물밀 듯이 들어오고 그들로부터 얻는 경제적 효과도 만만치 않다. 친절하고 개방적일 뿐만 아니라 정치적 종교문화적으로 요구하는 기대치도 높다. 불교문화행사에도 관심이 많고 신행활동도 적극적이다.

“모든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고 문화적 삶을 갈구할 뿐만아니라, 새로운 문화에 대한 긍정적인 호기심도 많아요. 예전에는 관음사에 어떤 스님이 오느냐가 관심거리였는지 몰라도, 이제는 관음사에서 무엇을 하고 어떤 것을 받을 수 있을까에 관심이 많아진 것 같아요.” 제주에 조계종 사찰이 타종단에 비해 미약한 현황에 대해서도 허운스님은 “조계종에서 다른 종단으로 분파된 것이지 조계종이 애초부터 약했다고 보긴 어렵다”며 “제주 불자들이 자기가 다니는 절에 한 스님이 평생 동안 머물러 있는 타종단 문화에 익숙해져서 스님들이 오고가는 조계종 시스템을 불편해하는 측면도 있지만, 종무행정이 지속성 연속성만 갖는다면 문제없다”고 강조했다. 스님은 “불자가 법(法)을 중심으로 살아야지 사람 중심으로 살면 안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불교신문3213호/2016년6월2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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