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불과 다도불의 만남

사진출처=문화재청

두 명의 부처님이 나란히 앉아 있는 그림이나 불상을 가리켜 이불병좌(二佛竝座)라고 한다. 함께 있는 두 부처님은 석가여래와 다보여래인데, <묘법연화경> ‘견보탑품(見寶塔品)’에서 유래를 찾을 수 있다. 불교미술에서는 두 부처님이 나란히 앉아 있는 부조나 조각, 탑 안에 석가여래와 다보여래가 함께 앉은 모습으로도 표현된다.

‘견보탑품’과 연관된 성보문화재를 보면 불국사 다보탑과 석가탑, 보물 제1711호 영축총림 통도사 영산전 벽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1714년부터 1716년 사이 중창된 영산전에는 약 50여 점의 그림이 남아 있는데, 서벽에 ‘견보탑품변상도’<사진>가 있다. 이 그림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견보탑품을 그린 벽화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그림 속 보탑은 11층 높이로 구름에 쌓여 있는데 갖가지 장식으로 장엄됐다. 상륜부에는 장식이 길게 드리워져 있고 탑신에는 색색의 영락이 주렁주렁 달렸다. 기와까지 표현된 지붕에는 풍경이 있다. 보탑 주변에는 구름 위에 서 있는 보살과 제자들이 있다. 탑 중앙에는 활짝 문을 연 감실 안에서 석가여래와 다보여래가 합장한 한 채 있다. 견보탑품 좌우에는 협시청중들이 있는데 보살과 제자, 용왕과 용녀, 금강 등이 구름 사이에 좌우 대칭으로 서 있다. 세로 400cm×가로 230cm 크기의 벽화에는 ‘견보탑품’의 내용이 충실히 담겨 있다.

<법화경>에서는 이렇게 전한다. “과거 보정(寶淨)이라는 나라에 다보라는 이름의 부처님이 계셨는데 ‘내가 성불해 멸도한 후 시방국토에 <법화경>을 설하는 곳이 있으면 나의 탑이 그 앞에 나타나 증명하고 찬양하겠다’는 원을 세웠다”는 것이다.

<법화경>을 설할 때 높이 500유순, 너비 250유순의 탑이 땅으로부터 솟아났다. 유순은 인도에서 사용하던 단위인데, 무장한 장수가 하루 동안 걷는 거리라고 하니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경전에 묘사된 구절을 보면 탑은 “한량없이 많은 당번으로 장엄하고, 보배 영락을 드리우고 보배 풍경을 그 위에 수없이 달았다”고 한다. 또 “모든 번개(幡蓋)는 금·은·유리·차거·마노·진주·매괴 등 칠보를 모아 이루니, 그 탑의 꼭대기는 사천왕궁에까지 이르렀다”고 할 정도로 높았다.

높고 화려한 보탑 안에는 다보여래가 앉아 있다. 다보불을 친견하는 것에 대해서 부처님은 “ 이 부처의 모든 분신 부처가 시방세계에서 설법을 다하고 한 곳에 돌아온 뒤에야 보일 것”이라고 말씀했다. 시방제불이 다 모여 사자좌에 앉자 석가모니부처님이 오른손으로 칠보탑의 문을 열었다. 그 때 보배탑 가운데 계신 다보불이 자리를 반으로 나눠 석가모니불께 앉기를 청했다. 탑 가운데로 들어간 석가모니불은 반으로 나눈 자리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이를 본 대중들이 부처님 계신 자리가 높고 머니 신통력으로 허공에 머물 수 있게 해달라고 하자, 석가모니불이 대중들을 허공으로 이끌었다. 구름 속에 서 있는 사부대중의 모습이 이를 상징한 것이다. 이처럼 영산전 벽화는 경전의 내용을 충실히 표현하고 있어 의미가 깊다.

[불교신문3213호/2016년6월2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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