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는 좌복, 법사는 법상에서

숨 거두겠다는 정신으로 살아야”

 

제주 약천사, 단양 광덕사 창건

암수술 4일 만에 법문해 주목…

 

 

혜인스님 임종게

무로지처부진명(無路之處孵眞命)

무시무종어차법(無始無從於此法)

혹건혹파천당옥(或建惑破天堂獄)

시이름등삼계주(是以凛騰三界主)

약몰심멱감천칙(若沒尋覓甘泉則)

여마니주격천장(與摩尼主隔千丈)

시십마(是什麽).

 

제10교구본사 은해사 조실 포산당(包山堂) 혜인(慧印)스님이 지난 23일 원적에 들었다. 법랍 62년, 세수 75세. 하안거를 맞아 은해사 기기암선원에서 수선안거 중 원적에 든 스님은 “길 없는 곳에서 참 생명의 길을 만들어 내며 무시무종으로 이 법에서 지옥 천당을 건설하고 혹 쳐부수기도 하면서 당당히 대 우주의 주인공이 되나니, 결코 마르지 않는 샘을 발견하지 못하면 여의주의 주인이 되지 못하리라! 이뭣고”라는 임종게를 남겼다.

1943년 제주에서 태어난 스님은 수차례 부모님을 설득한 끝에 13세에 출가, 동화사 선원에서 일타스님을 만나 상좌의 연을 맺고 사미계를 받았다. 이후 해인사 승가대학에서 경전을 공부하고 자운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받았다.

1980년 고향인 제주로 돌아간 스님은 제주불교중흥회 회장을 맡으면서 불교 발전에 헌신했다. 제주도에 내세울 만한 가람이 없는 것을 안타까워하던 스님은 서귀포시에 부지를 매입, 약천사 대작불사를 시작해 16년 만에 현재의 대가람을 완공했다. 이후 뉴질랜드 오클랜드에 환희정사를 창건하고, 단양 광덕사에 주석하면서 백만불전 건립 불사를 했다. 사찰 불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자 스님은 다시 본분납자로 돌아갔다. 2006년 덕숭총림 수덕사 정혜선원 안거를 시작으로 수행에만 전념했던 혜인스님은 2007년 조계종 계단위원과 2012년 은해사 조실로 추대됐다. 이후 2014년 은해사 기기암 선원에서 정진하면서 안거철에는 선원에서, 해제철에는 제방 사찰에서 법문을 했다. 특히 2014년에는 “암 수술 4일 만에 관악산 호압사에서 대중법문”을 할 정도로 중생교화에 매진했다.

당시 스님은 법문을 만류하는 대중에게 “선(禪)을 하는 사람은 좌복 위에서 죽기를 서원해야 하고, 법사는 법상에서 숨을 거두겠다는 정신으로 살아야 한다”며 후학들에게 늘 정진과 전법도생의 길을 갈 것을 당부했다. 전국 어디서든 법을 청하는 곳이 있으면 마다하지 않고 발걸음을 해 부처님 가르침을 전했던 혜인스님은 특히 재가불자들에게 <부모은중경>을 중심으로 불심과 효사상에 대한 법문을 널리 폈다.

임종을 앞두고 염불을 하던 혜인스님은 “일생 동안 살면서 단 한사람에게 마음 아픈 일을 하지 말고, 미워하는 마음도 가지지 말라”고 당부하며 “열심히 정진해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샘을 찾아내서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삶을 살으라”고 간곡히 이르고 ‘나무아미타불’을 염송하다 원적에 들었다.

<신심> <원력> <행복을 여는 부처님의 가르침> 등의 저서, <범망경 보살계 법문> <칠월백중법문> <부모은중경법문> 등 수십 종의 육성 법문을 남겼다.

[불교신문3213호/2016년6월2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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