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저래 짤라놨노” 불호령

“니를 살릴라 캤는데 미안타” 

염화실(拈華室)로 올라가는 입구에는 맹종죽(孟宗竹)이란 왕대나무 숲이 있다. 바람이 불적마다 사각사각 소리를 낸다. 큰스님이 계신 염화실로 올라가는 계단 초입에 굵은 가시가 난 엄나무가 한 그루 있어 왕대나무 숲의 수문장 노릇을 톡톡히 했다.

하루는 큰스님께서 염화실로 올라가다가 엄나무가 너무 높이 자란 것을 보았다. 즉시 원주 스님을 불러 이렇게 일렀다. “봄에 엄나무 순을 딸라카모 손이 안 자래서 나무를 좀 치야 되겠다.” 며칠 뒤, 큰스님이 출타하셨다. 큰스님이 안 계신 때를 틈타 원주 스님이 나무 등걸만 남겨 놓고 가지를 거의 잘라버렸다. 나무에 손이 닿도록 하느라고 위쪽의 가지를 다 잘라버려 밑에 있는 큰 가지만 서너 개 남겨 놓았던 것이다. 나무에 대해 잘 모르지만 저건 너무 많이 자른 게 아닌가라는 의구심이 들긴 들었다.

아닌 게 아니라 큰스님은 절에 돌아 오시자마자, 불같이 화를 내셨다. 잘려나가 오뚝이처럼 뭉뚝하게 서있는 나무를 보았기 때문이다. “누가 저래 짤라 놨노.” 나무를 잘라낸 원주 스님은 겁이 나 어디로 숨어버렸고 남은 대중들은 죄도 짓지 않았는데 벌벌 떨기만 했다. 다행이 큰스님은 두 번 거론하는 성격이 아니라서 그냥 넘어갔다. 그 뒤로 큰스님은 엄나무를 볼 때마다 내년에 싹이 나오려는지 모르겠다며 매우 걱정을 하셨다.

“누가 그르큼 자를 줄 알았나. 내가 지키고 있으민서 자르라고 할 낀데.” 미안한 마음으로 엄나무 앞에서 위로의 말을 건넸다. 큰스님은 화가 나더라도 그 시간만 지나면 두 번 다시 거듭해서 말씀하시는 일은 없었다. 다행히 원주 스님은 그 자리를 피했기 때문에 아무 일없이 지나갔지만,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엄나무 둘레를 빙 둘러 파고 물도 주고 퇴비도 주는 걸 보면….

이듬해, 모두가 싹이 트기를 바랐건만 엄나무는 아무런 소식도 보내지 않았다. 시커먼 둥치만 남아 있는 엄나무는 봄이 다가도록 싹이 돋아나지 않았다. 기다린 보람도 없이 영영 떠나버린 것이다. 잘라버리기가 아까워 일 년을 더 두고 보았으나 싹이 나올 기미를 전혀 보여주지 않았다. 결국은 밑동만 남기고 싹둑 베어버렸다.

큰스님은 남아 있는 그루터기를 보며 안쓰러운지 한마디 하셨다. “니를 살릴라 캤는데 미안타. 해마다 맛있는 순을 따서 많이 무겄는데….” 그 뒤로도 지나다니면서 ‘미안하다’며 머리를 숙이곤 하셨다.

[불교신문3213호/2016년6월2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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