⑩ 함백산 일출

일출 대표 명소 함백산

아름다운 야생화 가득

 

진신사리 모신 정암사엔

자장율사 이야기 전해져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 간다는 주목 나무가 함백산 정상에 군락을 이루고 있다. 안개가 가득 낀 함백산 일출 모습.

자동차 헤드라이트를 끄니 암흑이 찾아왔다.

지난 17일 일출을 보기 위해 함백산을 찾았다. 산으로 오르는 길이 있는 만항재에 주차를 하고 작은 렌턴을 밝히고 산행을 시작한다. 정상에는 방송국 중계소가 있어 시멘트 포장이 되어있다. 2km 남짓 거리를 작은 불빛을 앞세워 걷기 시작한다. 바람에 나뭇잎이 살짝 흔들려도 흠칫 놀란다. ‘괜히 혼자 왔나’ 하는 생각은 시간이 지나 몸이 거친 숨소리를 뿜으며 열이 나기 시작하자 사라진다. 20여 분 걸었을까. 사람소리가 들린다. 내려오는 일행을 만났다. 사진을 찍으러 온 사람들인지 삼각대와 카메라 가방을 메고 있다. 해도 안 떴는데 왜 이렇게 빨리 내려오냐 물으니 “안개 때문에 정상에서는 한 치 앞도 안보여요” “바람도 너무 많이 불고요” 라고 답한다.

함백산 정상 표지석.

‘아 안개가 있었구나’ 그저 일기예보의 맑음을 보고 일정을 잡았는데 안개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도 ‘일출보자고 여기까지 왔는데 내려갈순 없겠지.’ 마음을 다잡고 다시 오르기 시작한다. 함백산은 설악산, 오대산, 태백산과 함께 백두대간의 대표적인 고봉 중 하나다.

이웃하고 있는 태백산의 유명세에 밀리긴 하지만 1573m로 1567m인 태백산보다도 높다. 태백산(太白山)과 함백산(咸白山) 모두 ‘크게 밝다’는 뜻이다. 함백산은 차량으로 정상 가까이 접근이 가능하기 때문에 사진 찍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은 곳이기도 하다. 정상에 다다를 무렵 하늘이 환해진다. 일출 예정시각인 5시에 정상 표지석에 도착했다. 하지만 걱정했던대로 안개 때문에 해 뜨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바람은 순간 안개를 빠른 속도로 지운다. 하지만 다시 바람은 다른 안개를 데려온다. 해뜨기 전 정상은 생각보다 훨씬 추웠다. ‘한 번 와서 일출을 보려고 한 건 욕심이었구나.’ 욕심부린 벌을 받는지 추위에 떨며 해뜨기만을 기다렸다. 일출시간이 40분이 지나자 높은 곳에서 해가 모습을 나타낸다. 상상했던 높은 산에서 내려다보는 아름다운 일출과는 거리가 멀었다.

사진을 잘 찍지 못한 걱정을 가득 안고 산을 내려간다. 길가에 핀 함백꽃나무, 박새, 흰쥐오줌풀, 야광나무꽃 등 야생화들이 실망스러운 일출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준다. 야생화는 이름을 알고 만나면 훨씬 반갑다.

매년 여름 휴가철에 이 곳 함백산 만항재 ‘천상의 화원’에서 ‘고한 함백산 야생화 축제’가 열린다. 올해는 7월30일부터 8월7일까지 열린다. 굳이 그 때가 아니더라도 함백산 전나무 숲 속에 자리잡은 화원은 축제를 위해 인위적으로 조성한 곳이 아니기 때문에 봄부터 가을까지 언제든 ‘제철 야생화’를 감상할 수 있다.

①자장율사가 남긴 주장자와 적멸보궁

함백산에는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는 적멸보궁 정암사가 자리하고 있다.

신라 선덕여왕 14년(645)에 자장율사가 중국에서 사리를 모셔와 정암사 위쪽에 탑을 세우고 그 안에 봉안했다. 보물 제410호인 수마노탑이다. 당시 금탑 은탑도 같이 세웠는데 자장율사가 후세 중생들의 탐심을 우려하여 불심이 없는 중생들이 육안으로 볼 수 없게 만들었단다. 정암사 뒤에 함백산 봉우리와 연결된 백두대간 길에 금대봉과 은대봉이 있으니 아마도 그 곳에 금탑, 은탑이 있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적멸보궁을 찾아 인사를 올린다. 정암사 적멸보궁에는 부처님이 모셔져 있지 않다. 부처님 진신사리가 봉안돼 있는 탑이 있으니 다시 부처님을 모실 필요가 없는 까닭이다. 극락교를 지나 적멸보궁으로 향하는 길에 자장율사의 주장자였던 주목나무가 있다. 주장자였던 나무 안쪽에서 살아 있는 나무가 새로 자라나고 있다.

② 정암사 육화정사. 뒤로 보물 410호 수마노탑이 보인다.

<삼국유사>에는 자장율사와 정암사 창건 이야기가 비교적 상세히 나온다.

자장율사는 꿈에 문수보살이 태백산 갈반지(葛盤地)에서 기다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 곳에 찾아 석남원(石南院, 현재의 정암사)를 세운다. 문수보살을 기다리며 기도하고 있던 어느 날 늙은 거사(居士) 하나가 남루한 도포를 입고 칡으로 만든 삼태기에 죽은 강아지를 담아 메고 와서 시자에게 말했다. “자장을 보려고 왔다.” 말했다. “우리 스승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자를 보지 못했다. 너는 어떤 사람이기에 미친 말을 하는 게냐.” 거사가 말한다. “너는 너의 스승에게 아뢰기만 하면 된다.” 시자가 들어가서 고하자 자장도 깨닫지 못하고 말했다. “필연 미친 사람이겠지.” 시자가 나가서 그를 꾸짖어 쫓으니, 거사가 다시 말했다. “돌아가리라, 돌아가리라, 아상(我相)을 가진 자가 어찌 나를 볼 수 있겠느냐.” 말을 마치자 삼태기를 거꾸로 들고 터니 강아지가 변해서 사자보좌(獅子寶座)가 되고 그 위에 올라앉아서 빛을 내고는 가버렸다. 자장이 이 말을 듣고 그제야 위의(威儀)를 갖추고 빛을 찾아 재빨리 남쪽 고개에 올라갔으나 이미 아득해서 따라가지 못했다.

자장율사는 ‘아상(我相)’을 다 버리지 못해 문수보살을 친견하지 못하고 정암사에서 입적에 든다. 일연스님은 자장율사의 훌륭한 업적을 <삼국유사>에 길게 기록한다. 하지만 왜 마지막을 이렇게 서술했을까. ‘아상을 버리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인가….’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개의치 않는다’라고 말하듯이 자장율사가 남긴 주장자 속에서 자라난 주목나무가 넓게 팔을 벌리며 아침햇살을 맞고 있다.

함백산 산행 중에 만난 ③박새

 

④야광나무꽃

 

⑤흰쥐오줌풀

 

⑥함백꽃나무. 야생화는 이름을 알고 만나면 더 반갑다.

[불교신문3212호/2016년6월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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