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가수행자도 일종의 서비스업

교리적 법문보다 얼굴의 미소가

훨씬 더 큰 공감을 줄 수도 있어

내가 살고 있는 절에서는 신년이 되면 신앙의 주제를 정하고 정초기도 때 신도들에게 발표하고 있다. 아주 오래 전, 대만 불광사를 방문했을 때 그곳의 성운대사께서 매년마다 불자들을 위해서 사자성어로 신년법어를 공개하는 것이 참 인상적이어서 여기서도 그렇게 하자고 약속했다.

우리 절에서는 사자성어 대신에 세 가지의 단어를 선택하여 주제를 정하고 있다. 일전에 ‘3소 운동’을 전개하였는데 이른바 ‘미소’ ‘간소’ ‘검소’다. 이렇게 하니까 귀에 쏙쏙 들어오고 공감하는 부분도 많아서 신앙 주제로 적합하다는 평가도 받았다. 이런 주제를 중심으로 1년 동안 지속적인 신행운동으로 공유하면서 친목과 화합을 도모하는 편이다.

올해 신행주제는 ‘3절 운동’이다. 친절하고, 애절하게, 간절한 마음으로 살자는 취지다. 여기서 특히 강조해야 될 부분이 친절이다. 세계적인 불교지도자 달라이라마는 ‘불교는 미소와 친절’이라고 설명했다. 자비는 미소로 표현되어야 하며 지혜는 친절로 나타나야 한다. 따라서 불법수행을 하면서 친절하지 않고 미소에 인색하다면 그 사람은 불교와 멀리 떨어진 삶을 살고 있다 해도 과언 아니다.

이런 점에서 출가수행자는 그 어떤 종교인보다 친절해야 한다는 신념이다. 가끔 도반들끼리 사석에서 만나게 되면, 우리 스님들을 직업으로 분류할 때 ‘서비스업’에 해당된다는 농담을 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사찰 주지는 친절과 미소가 선행되지 않으면 신도와의 친밀도는 낮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교리적인 법문보다는 얼굴에 나타나는 미소가 훨씬 공감을 주는 법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절의 주지 스님이 냉담하다면 아마 신도들의 발걸음은 뜸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주지의 첫 번째 덕목은 친절이며 미소다. 신도 한 명이 절에 와서 적응하려고 하면 몇 달의 시간의 필요하지만 그 신도가 절에 나오지 않게 하는 것은 1분의 불친절이면 충분하다. 이렇게 친절과 불친절은 확연한 차이가 있다. 이 세상에 불친절을 경험하고 기분 좋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러하므로 친절과 멀어져 있는 수행은 사회적 공감을 얻기 어렵다는 뜻이다.

풋내기 시절부터 알고 지내는 스님이 공찰의 주지로 부임했다는 소식을 듣고 방문했던 적이 있다. 산중 벽촌의 암자라서 기존의 신도들이 몇 명 되지 않았고 임기를 마친 주지들도 드물었다. 신임 주지가 부임하는 날부터 절에 방문하는 모든 이들에게는 미소와 친절로 맞이해 주었단다. 등산객이든, 관광객이든 귀찮은 표정 없이 정성을 다하고 나니까 발걸음이 점점 늘어나더라는 것이다. 그 스님의 배웅을 받으며 하산하면서 머리 깎은 수행자라는 이유로 무표정하거나 쌀쌀맞은 행동을 하지 않았는지 살펴보는 계기가 되었다.

암자순례 할 때 어느 불자가 탑의 기단석에 걸터앉아 있었다. 내가 살며시 다가가서 귓속말하듯 조용하게 “보살님, 여기 앉으면 안 됩니다” 했더니 “아~” 하면서 일어났다. 그 상황은 누가 지적하거나 혼내는 것이 아니라 몰랐던 부분을 살짝 가르쳐주는 장면이었다. 이런 경우라면 서로 서로 기분 좋은 공감을 얻는 것이다. 지금의 마야사가 성장하기까지는 이러한 친절과 미소가 믿음의 원동력이 되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불교신문3212호/2016년6월25일자]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