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량에 나무와 꽃을 살피다 보면 저마다 성품이 다르다. 전문가도 아닌 내가 나무와 꽃의 성품을 논하기는 어렵지만 몇 해를 살피다 보니 관심이 조금씩 깊어지고 있다. 나무의 수종마다 가지치기는 언제 하며 식목은 언제 해야 나무가 뿌리를 잘 내릴 수 있는지와 병충해를 어떤 방법으로 막아야 하는지, 거름은 언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등의 관심이 생겨나고 있다. 도량에 함께 살아가는 꽃과 나무에도 색과 향기가 고운 꽃과 튼실한 열매를 위해 이렇게 적잖은 관심이 필요한 일인데 하물며 사람이면 오죽하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특히 평생을 부처님 제자로 살겠다고 승가공동체로 출가한 구성원들에게는 더 할 말이 필요하겠는가 싶다. 부처님 제자를 자청하며 한 가정의 구성원에서 벗어나 승가공동체의 구성원이 됐다는 것은 그 서원이나 역할의 범위가 지역사회나 국가를 벗어나 인류가 대상이기 때문이다. 출재가자들이 공동으로 독송하며 원을 세우고 있는 사홍서원의 내용을 봐도 그렇다.

승가동동체로 처음 출가하는 이들을 어린 나무에 비교해 본다. 아무리 나이를 많이 먹고 어떤 이력을 갖추고 왔더라도 그것을 따지지 말라는 불문율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세상의 잣대로 어떤 이력을 갖추었던, 못 갖추었던 출가하는 순간부터 평등하게 출발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수행자로서의 기본 틀을 잘 갖추게 하는 곳이 기본교육기관의 역할이다.

출가자에게 나무의 기본 토양이나 지형의 조건이 되어주는 역할이 바로 종단과 교육기관일 것이다. 거름과 빛, 수분의 역할은 바로 은사와 스승들의 역할이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 종단으로 출가하는 예비승려들에게 우리 종단과 교육기관은 그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일까? 스승과 은사는 상좌나 제자가 수행자로서 인류의 스승이 될 수 있도록 밑거름 역할을 잘하고 있는 것일까? 이미 밑거름이 돼야 하는 은사의 역할이 눈앞에 있는 세월의 무게감 앞에 무력해진다. 정치논리가 인류의 스승을 키우는 밑거름이 아닌 승가공동체의 수행논리가 건강한 밑거름이 되는 승단이길 바라며 다시 힘을 내어 본다.

[불교신문3205호/2016년6월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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