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암

남지심 지음민족사

 

한암선사는 1876년 화천에서 출생해 1897년 금강산 장안사에서 출가수행자의 길을 걸었다. 일제강점기, 나라의 비운을 바라봐야 했던 선사는 “내 차라리 천고에 자취를 감춘 학이 될 지언정, 춘삼월에 말 잘하는 앵무새 재주는 배우지 않겠다”며 오대산 월정사로 들어가 후학을 지도했다. 조계종 초대 종정을 역임한 한암선사는 “혼탁한 시대에 치열한 수행을 통해 선교를 겸비하고 한국불교의 초석을 놓은 분”으로 추앙받고 있다.

소설가 남지심 작가가 한암선사의 일대기를 소설로 재구성했다. “늦가을 찬바람이 소매 속으로 파고든다. 등에 맨 걸망에도 바람이 휘날린 낙엽이 얹혀 있다. 한암스님은 걸음을 옮기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지금까지 걸어왔던 50년의 생애, 오고감이 남지 않는 자유의 길이다. 그러나 조선불교를 지키는 길은 시절인연의 길이었기에 때로 말과 행동이 따라야 했다. 그 길을 침묵속에서 걸었다. 어느 한순간도 그 길을 포기하거나 외면하지 않았다.”

소설 <한암>은 50세가 되던 해 봉은사 조실 자리를 내놓고 서울을 떠나 오대산으로 들어가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당시 불교는 숭유억불 정책을 폈던 조선과 일제 식민지배를 겪으면서 피폐할대로 피폐해졌다. 스님은 조선불교를 지키는 길을 고민하며 발을 오대산으로 옮겼다.

남지심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한암스님의 인간적인 모습을 조명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여러 학술자료와 기록을 바탕으로 한암선사의 삶을 재구성하면서 제자들과, 다른 스님들과 교류하면서 보여준 인간적 고뇌, 따스한 마음에 집중했다. 또 일본인에게도 경계를 두지 않았으면서 권력자에게 냉정했던 모습도 담았다.

“밤새도록 사륵사륵 내린 눈이 상원사 앞뜰을 하얗게 덮고 있다. 좌복에 앉아서 용맹 정진하던 스님들은 죽비소리를 듣고 저마다의 방법으로 몸을 풀었다. 가볍게 몸을 푼 스님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온 천지가 순백으로 변해 있었다. 병인년 새해가 서설과 함께 찾아왔다. 해가 바뀌는 날이라 스님들은 용맹정진으로 밤을 새웠다. 스님들은 새벽예불을 드리고 곧바로 조실로 갔다. 한암스님께 세배를 드리기 위해서였다. ‘우리가 중으로 살고 있는 것은 부처님 지혜에 다가가기 위함일 테니, 공부가 익어가도록 노력하기 바라네.’ 한암스님은 합장으로 세배를 받으며 간곡하게 당부했다.”

일제는 한암선사에게 여러 가지 요구를 했다. 태평양전쟁이 반발하자 물자를 수탈해갔는데 사찰도 예외가 아니었다. 한암스님은 그 와중에 불교를 지키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언제나 불교와 수행을 묻는 사람이 있으면 친절한 답글을 보내며 격려했다.

비바람만 겨우 피할 수 있게 나무를 엮은 토굴에서 수행하고, 온몸으로 한국불교를 세웠던 한암스님은 1951년 한국전쟁 당시 가부좌를 한 채로 열반에 들었다. 흰 광목천으로 몸을 감싼 스님의 법구에 불이 들어갔다. 상좌인 희찬 희섭스님을 비롯해 수많은 군중과의 숭고한 작별이었다.

한암스님의 일대기를 통해 우리의 근현대 불교사를 돌아보며, 수행자란 어떤 존재인가 되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불교신문3205호/2016년6월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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